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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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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과 연대회의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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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11.29. 연대회의 관련 <한겨레> 기사



19901013일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의 두려움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 헌법상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외근 경찰들은 전면 무장했다. 총부리는 조직폭력배를 향했으나 실효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다. 한편 사회에 두려움을 유포하는 무리가 또 있었으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이다. 노동자를 향한 정권의 탄압은 극에 달했고 급기야 시위대를 향해 쇠파이프를 들었다. 다음해 4, 대학 1학년 강경대 학생은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고 구속되었던 박창수 한진중공업노조 위원장은 시신으로 돌아왔다.

 

수련회를 하고 유인물을 돌렸다고 구속이라니!

1991210일 의정부 다락원 수련원에 경찰 병력이 들이닥쳐 67명을 연행했다. 대우조선노조 파업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연대를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 회의(연대회의)소속 노조 간부들이었다. 그 중에 7명이 구속되었다. 죄목은 제3자 개입금지 조항 위반이었다. 대우조선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정문 앞에서 연대회의 이름으로 옥포만에 더 이상 굴욕은 없다는 파업 지지 유인물을 내고, 모여 회의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선포 이유를 볼 때 이 과한 대응은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전노협 출범과 905월 총파업은 대기업 노조에 민주화 바람을 일으켰다. 90년 여름을 지나며 치러진 위원장 선거에서 민주파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가 많았다. 87년 노동자대투쟁 바람을 타고 대공장에 민주노조 깃발이 세워졌지만 그 지도력은 불안정했고 직권조인, 위원장 자진사퇴가 여러 곳에서 발생했다. 양심과 열정으로 노조 위원장이 되었지만 집중 탄압 앞에 굴복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를 극복하며 등장한 대기업 민주노조들은 협의체를 구성했다.

16개 대기업 노조 대표들이 1990129일 경주 보문단지 도투락월드에서 연대를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 회의를 구성했다. 상임의장에 백순환 대우조선노조 위원장이 선출되었다. 연대회의 소속 노조는 현대중공업, 현대정공울산공장, 현대중전기, 대우조선, ()통일, 기아기공, 현대정공창원공장, 한진중공업, 대우정밀, 포항제철, 풍산금속안강공장, 금호타이어, 아시아자동차, 대우자동차, 서울지하철, 태평양화학 등 16개 노조였다. 이 중 전노협 가입 노조는 6개였고 2개 노조가 가입 의사를 갖고 있었다. 연대회의 내부에는 정권의 강경탄압과 경단협 결성 등에 공동 대응해야 하는 조건을 인정하면서도 연대회의와 전노협의 관계, 노동운동에서의 위치와 조직적 전망 등에 관해 의견이 갈렸다. 전노협 결합 전망을 주장하는 그룹과 전노협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독자적으로 운영할 것을 강조하는 그룹으로 나뉘어 논란이 있었다. 출범 당시 연대회의는 전노협과 지원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어쨌든 연대회의는 1991년 투쟁의 해를 예고했고 그 시작은 대우조선이었다.

 

연대회의 붕괴

연대회의 소속 노조 위원장 대거 구속의 발단이었던 대우조선노조 파업(1991.2.8.~2.13.)은 지도부가 6개월을 버티겠다는 각오로 식량을 짊어지고 골리앗에 올라갔으나 6일 만에 협상 타결로 마무리되었다. 외국에 있던 김우중 회장이 한달음에 달려와 상여금 인상 등 많은 부분을 양보하면서 합의안이 도출된 것이다.

한편 연대회의를 박살내겠다는 정권의 의지는 확고했다. 대우정밀노조에 경찰이 난입해 노조간부 등 10명을 연행, 2명을 구속했고, 대우조선노조·대우자동차노조 침탈이 이어졌으며, 현대정공 노조간부가 연행되었다. “단체협약 갱신과 관련하여 발생된 모든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막론하고 민·형사상의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았던 대우조선노조 백순환 위원장도 구속되었다. 결국 집중된 탄압 속에 활동도 못 해보고 연대회의는 붕괴되었다.

당시 연대회의 소속 노조들은 집행부의 지지 기반이 튼튼하지 못했다. 위원장 선거에서 민주파가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대의원 수를 확보하지 못해 어용 세력과의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지하철노조처럼 안기부 직원이 아예 현장에 상주하며 노조를 감시하니 조합원들이 위축된 경우도 있었다. 이러니 포항제철노조처럼 탄압이 시작되자 노조 탈퇴가 줄을 잇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조합원 수 2만이었던 포철노조는 붕괴되어 이후로도 제대로 된 노조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자본은 노동자들의 연대를 막기 위해 계급 분할 방법을 꾸준히 연구한다. 이를 간파하고 넘어설 수 있는 지도력과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높이지 못한다면 조직의 규모가 아무리 커도 그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며 민주집행부를 세웠다 해도 사상누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