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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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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투쟁이 남긴 과제

이제 노동운동 전체가 받아 안아야

 

김태연(전 쌍용차범대위 상황실장)대표


 

정리해고 10년 만에 쌍용차 해고자 복직이 합의되었다. 그런데 합의가 발표되던 914,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의 노사정위원회가 잔칫상에 젓가락 올려놓듯 합의석 한자리를 차지하고서, 민주노총을 노사정위원회에 끌어들이려는 얄팍한 속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1998IMF 외환위기 때 민주노총을 노사정위원회에 끌어들여 정리해고 합의를 한 후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의 고통에 신음했던가? 급기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로 30명이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그런데 10년간의 고통과 투쟁으로 이룬 쌍용차 해고자 복직 합의 석상을 저들은 다른 잔칫상으로 삼고자 했다. 20년 전에 민주노총을 노사정위원회로 끌어들여 고용유연화를 요리했다면, 이번에는 임금유연화를 요리하려는 모양이다.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쌍용차 해고자 복직 합의 석상에서 저들은 구린내와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정리해고 반대를 사회적 요구로 부활시킨 쌍용차 투쟁

불청객이 슬그머니 올려놓은 젓가락 때문에 잔칫상이 뒤집어질 수는 없다. 쌍용차 투쟁 10년의 의미는 해고자 전원복직 그 이상이다. 신자유주의 공세 하에서 한국노동운동이 겪은 수많은 패배 중 가장 뼈아픈 것이 바로 정리해고 법제화다. 정리해고제 공세를 받자마자 이미 시민운동은 물론이고 노동운동 내부의 절반이 무너졌다. 정리해고제가 관철된 후 정리해고 철폐는 한국노동운동의 사문화된 요구로 전락했다. 그런 상황에서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이 옥쇄파업으로 정리해고에 정면으로 저항했다. 감히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자들의 뿌리를 뽑고야 말겠다는 듯 정권은 무지막지한 탄압을 자행했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간의 공장 점거파업은 수많은 부상자와 구속자를 내면서 패배했다. 만약 투쟁이 여기서 끝났다면 쌍용차 투쟁은 일단의 영웅적인 투쟁 또는 패배한 맹동주의로 역사의 한 줄에 기록된 채 잊혀져 갔을지도 모른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2010년 마힌드라 매각을 계기로 산업은행 앞에서 투쟁으로 나섰다. 그리고 201222번째 희생자의 죽음을 계기로 대한문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온 한상균 지부장 등이 공장 앞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정리해고의 고통 속에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줄을 잇는 가운데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멈추지 않고 투쟁해 나갔다. 그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투쟁했다. 그러자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연대투쟁으로 나섰다. 그들을 잇는 공통된 목소리는 해고는 살인이다였다. 정리해고의 폐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한국사회에서 쌍용차 투쟁을 계기로 정리해고 반대가 사회적 요구로 부활한 것이다.

 

연대투쟁의 진일보를 가져온 쌍용차 투쟁

10년간의 쌍용차 투쟁은 한국사회 연대투쟁의 폭과 깊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노동자 투쟁에 단순 참가하거나 상층 차원의 여론사업을 넘어서서 각계각층의 특성에 따른 자기실천을 발전시켜 나간 연대였고, 반짝하다 꺼지는 일시적인 연대가 아니라 수년간 끈질기게 지속된 연대투쟁이었다.

역사적으로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노동탄압을 경유한 한국노동운동에서 종교계의 영향력은 큰 편이다. 그런 영향인지는 모르나 쌍용차 투쟁에서도 종교계의 적극적인 연대가 이루어졌다. 개별 종단별 연대도 이루어졌지만, 때로는 5대 종단이 연대하여 쌍용차 투쟁에 함께했다. 그런데 종교계의 연대는 단지 해고된 노동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았다. 자본의 이윤을 위한 정리해고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종교계가 노동자와 함께 냈다는 점에서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차 투쟁의 연대는 폭만 넓어진 것이 아니라 내용도 깊어졌다.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림, , 소설, 음악, 공연, 영화, 방송 등 각자의 문화예술로 연대의 내용을 풍성하게 했고 쌍용차 투쟁에 대한 공감의 폭과 깊이를 더했다. 노동인권 변호사들을 비롯한 법률가들이 가세하여 자본과 정권의 회계조작과 경찰폭력 등 불법행위를 낱낱이 밝혀냈다. 대한문 농성장을 중심으로 미조직 시민들의 연대가 발전하는 계기도 되었다.

 

노동운동의 몫이 된 남은 과제

늦어도 내년까지는 남아있는 해고자 전원이 복직될 것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기쁨과 함께 또 하나의 부담을 지고 공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공장에서 밀려나 싸운 지난 10년간 쌍용차지부는 민주노조의 깃발을 거리에서 지켰다. 그 깃발을 가지고 공장으로 돌아가는 그들은 공장 안에 민주노조의 깃발을 우뚝 세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0년간의 쌍용차 투쟁으로 정리해고 철폐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경찰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폭력적인 노동탄압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손배가압류의 문제점도 다시 한 번 사회적으로 환기시켰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이제 민주노총을 비롯한 한국노동운동이 이 투쟁과제를 안고 가야 한다. 민주노총은 정리해고 철폐 요구를 정식화하고 투쟁으로 나서야 한다. 국가폭력과 손배가압류를 근절할 제도 쟁취를 위한 투쟁으로 나서야 한다. 지난 10년간의 쌍용차 투쟁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여러모로 노력하기도 했지만, 쌍용차 정리해고 저지를 위한 노동자총파업 등 노동자계급다운 투쟁을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노사정위원회 같은 허방에서 발을 빼고 쌍용차 투쟁이 남긴 과제를 안고 노동자계급답게 투쟁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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