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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이 금융위기를 만났을 때

 

송준호기관지위원회

 


월 스트리트 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뒤흔든 지 10년이 되었다. 수백만이 일자리를 잃었고, 집에서 내몰렸으며 가정은 파괴되었다. 이토록 치명적인 경제위기는 헐리우드의 화려한 은막에도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 되어줄 수는 있다. 다음은 2008년 금융위기를 각기 다른 시각에서 다룬 네 편의 영화다.


 

금융위기에 대한 모범적인 교과서 <인사이드 잡

감독: 찰스 퍼거슨 | 2010 | 108| 출연: 조지 부시, 앨런 그리스펀, 맷 데이먼 등

금융위기의 A부터 Z까지 원한다면 ★★★★☆

 

영화의 제목인 인사이드 잡Inside Job은 내부자에 의한 범죄를 일컫는 말이다.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 불러온 내부자들은 누굴까? 이 영화는 2001년부터 2007년에 걸친 거품경제의 주역과 그를 막으려 했던 사람들을 폭넓게 인터뷰하며 관객을 하나의 진실로 이끈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까지 왔지?”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영화는 일반투자자에게 부실상품을 안전한 상품인 양 속여 팔면서 뒤로는 그 부실상품이 폭락할 경우에 베팅하여 이득을 챙기는 금융사, 그런 금융사의 돈을 받고 부실상품에 최고등급을 매긴 신용평가회사, 거대자본에 매수된 학계, 금융인을 요직에 앉히는 정부를 차례차례 카메라에 담는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인터뷰는 분명한 대답을 관객에게 던진다. 미국의 엘리트 집단이 그 내부자라고. 그 사이사이 삽입되는 그래프와 영화배우 맷 데이먼의 해설은 다소 불친절할 수 있는 편집을 효과적으로 보완한다.

2007,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한 <끝이 안보인다>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는 찰스 퍼거슨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2011년 아카데미 장편다큐멘터리 영화상 등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행과정을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첫 순위에 두어야 하는 영화다.

 





정직한 노동의 대가를 말한다 <더 컴퍼니 맨

감독: 존 웰스 | 2010 | 104| 출연: 토미 리 존스, 벤 애플렉, 크리스 쿠퍼 등

실물경제는 희망을 싣고 ★★★☆☆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튿날부터 몰아치는 정리해고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그 매서운 칼날을 들이댄다. 조선업을 기반으로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GTX12년차 중견사원 바비(벤 애플렉 ), 말단 용접공부터 시작해 중역까지 오른 필(크리스 쿠퍼 ), 창립멤버이자 대주주인 부사장 진(토미 리 존스 )은 차례로 회사에서 잘린다.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띠는 조선업 주식을 반등시키기 위해서다.

영화는 진의 회고처럼, 바비의 땀방울처럼, “실제로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것을 노동의 가장 윗자리에 올려놓는다. 그 반대편에는 주가하락을 막아 자신의 자산 가치를 높이고, 공장을 폐쇄하여 수천 명의 노동자를 자르고도 새로운 빌딩을 짓는 데 몰두하는 사장 짐이 있다.

해고 이후 그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흔들린다. 공사판의 노동자가 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가정을 외면하거나. 우리는 현장에서 그리도 자주 외쳤던 말을 이 영화에서 새삼 발견하게 된다: “해고는 살인이다.”

현실은 영화의 희망찬 결말처럼 녹록치 않다. 순진한 감상, 환상에 가까운 바람으로 빠진 후반부는 다소 아쉬운 지점이다.

 





미묘한 줄타기 또는 자기기만 <빅 쇼트>  

감독: 아담 맥케이 | 2015 | 130| 출연: 크리스찬 베일, 브래드 피트, 스티브 카렐 등

뇌리에 박히는 해설 ★★★★☆

 

영화는 금융저널리스트이면서 논픽션 작가인 마이클 루이스의 2010년작 <빅 숏: 패닉 이후, 시장의 승리자들은 무엇을 보는가>를 원작으로 삼았다. 쇼트Short는 공매도를 뜻하는 금융용어이면서, 네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벌이는 한판 승부를 나타낸다.

네 주인공은 모두 남들보다 몇 년 앞서 부동산 거품을 알아채고, 이 파생상품의 몰락에 투자한 금융인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몸담은 금융계를 혐오하거나 불신한다는 또 다른 공통점을 지닌다.

금융시장을 경멸하는 펀드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 세상에 대한 불신에 찬 회의론자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 )는 자신들의 거래로 거대은행들이 피해를 보는 것에 일종의 정의감을 느끼는 한편, 그로 인한 이익에 대해서는 죄의식과 자괴감을 느낀다. 사리사욕이 최우선인 자레트(라이언 고슬링 )조차도 제도의 어리석음을 상수로 여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미묘한 도덕적 줄타기 또는 자기기만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그러나 영화가 이 윤리적 림보Limbo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개인의 마음속에만 간직한 죄의식은 아무 힘도 가지지 못한다.

화려한 출연진과 세련된 연출로 무장한 <빅 쇼트>는 속도감 있는 편집과 시의적절한 설명으로 네 명의 주요 등장인물 사이에서 자칫 산만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적절히 연결한다. <인사이드 잡>이 어려웠던 관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땅을 밟고 사는 우리의 현실 <라스트 홈

감독: 라민 바흐러니 | 2014 | 112| 출연: 앤드류 가필드, 마이클 섀넌 등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미시경제학 ★★★☆☆

 

<99 Homes>라는 원제가 말하듯, 1%의 소수가 누리는 이익 때문에 직장을 잃고 집에서 쫓겨나는 건 99%의 민중이다. 하지만 그 99%의 집안 사정은 다 같지 않다. 머지않아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계층이 생긴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이 거대한 구조의 쓰나미 앞에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주택융자를 갚지 못해 하루아침에 강제퇴거 당한 주인공 데니스(앤드류 가필드 )는 자신의 집을 되찾기 위해 퇴거전문 부동산브로커 리처드 카버(마이클 섀넌 )의 밑에서 일하게 되면서 점점 그의 몰인정하고 속물적인 모습을 닮아간다. 돈을 벌면 벌수록 이웃과 가족의 비난은 더욱 거세지고, 데니스는 시스템의 피해자이면서 부역자이기도 한 딜레마 상황에 처한다.

앞서 소개한 <인사이드 잡>이나 <빅 쇼트>와 달리 단일한 주인공을 따라가는 이야기 구조를 지닌 덕분에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사람들에 미친 영향을 이처럼 직접적으로 담고 있는 영화도 드물다. 라민 바흐러니 감독은 실제로 집을 잃은 사람들과 강제 집행하는 보안관 등을 섭외해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월 가의 화려한 숫자놀이에 신물이 난다면, 빼앗는 자와 뺏기는 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데니스의 선택을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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