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변혁정치

> 변혁정치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선 

결기 있는 투쟁이 필요하다

 

정원현울산

 



현중 자본은 지난 4년 동안 분사, 아웃소싱, 희망퇴직을 강행했고 3만여 명의 비정규직을 정리해고했다. 여성 사무직의 희망퇴직부터 시작한 정규직 인력구조조정은 일반직에 이어 생산직으로 확대되었고 해양과 일렉트릭 조합원 중심의 4차 인력구조조정(희망퇴직)이 끝난 현재, 현대중공업지부(이하 현중지부’)의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현중 자본은 수주물량 세계1위를 탈환했으면서도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가랑비에 속옷 젖다

현중지부도 사측의 4년간의 공세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매번 구조조정이 있을 때마다 부분파업과 한시적 파업으로 맞섰다. 하지만 사측의 공세를 꺾을 위력적인 총파업은 조직하지 않았다. 장기간 집권한 어용노조에 실망한 조합원들의 열망 속에 민주노조로 재탄생했지만, 87년의 투쟁 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진 듯 했다. 조선산업 위기를 등에 업은 사측은 분사, 아웃소싱, 희망퇴직 등 온갖 구조조정을 총동원해 새롭게 등장한 민주노조 깨기에 열을 올렸지만, 현중지부는 적당한 선에서의 투쟁을 배치하는 것에 머물면서 오히려 위기로 치닫고 있다.

민주노조재건 초창기 회사와 어용노조에 분노한 조합원들은 무쟁의 19년 역사를 깨고 총파업에 대거 동참했다. 당시 총파업에 동참한 6~7천 명의 젊은 조합원과 고참 조합원은 새로운 가능성에 환호했고, 이는 사측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현중노조의 영웅적 투쟁을 만들었고 오욕의 어용노조 시기를 버텨낸 고참 조합원들에게 젊은 조합원들은 존경을 표했고, 고참들 역시 19년간의 무쟁의 시기를 딛고 일어선 젊은 조합원들의 분노와 활동성을 높이 평가했다. 세대를 초월한 조합원 사이의 유대는 어느 노동조합보다 높았다.

그러나 지도부의 구조조정 저지투쟁에 대한 소극적 대처는 조합원들을 투쟁대오에서 꾸준히 이탈시켰다. 당장 수주가 회복되고 있던 8월의 해양 일렉트릭 희망퇴직 저지투쟁, 그리고 기준미달 휴업수당 저지투쟁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1천명 안팎으로 축소된 상황이다. 투쟁 참여 인원의 축소뿐만 아니라 조합원 사이의 유대도 크게 약화됐다. 1·2·3·4차 구조조정 저지투쟁에서의 패배는 가랑비에 속옷 젖듯 현장 조직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전망 찾기

이런 상황에서 현중지부는 현대중공업판 노사정위원회에 적극적으로 매달렸고, 현장에서는 반격을 시도하기 위한 조합원들의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운동<노동자 함성>이 주최한 쌍용차 투쟁으로 바라본 현중 노동운동의 과제라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강연회를 조직했다. 현중판 노사정위원회는 가동 중이지만 어떤 성과도 없이 차수만 늘렸고, 하물며 조합원들에게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암울한 시간만 흘러갔다. 전망 찾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현중 활동가들은 한상균 강연회로 대거 몰렸다.

무엇보다도 사측의 구조조정에 맞서 전면적 총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 해야만 한다 비정규직 조직화를 말로 아닌 행동으로 즉각 해야 한다.”는 한상균 전 위원장의 메시지는 전망을 찾는 동지들에게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현중지부는 왜 전면적 총파업을 하지 않았을까?’, ‘사내하청 조직화는?’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했으니 말이다.

온갖 현장 탄압과 부당징계 해고, 3차례의 임단협, 4차에 걸친 구조조정에도 전면적 총파업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 노동조합을 살리고 민주노조를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87~94년 같은 전면적 총파업과 쌍용차 정리해고 저지투쟁 같은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현중지부 스스로 전면적 총파업을 배제한 결과 현중 자본의 파상공세를 막아낼 도리가 없었고, 패배를 거듭한 조합원은 지부로부터 멀어져 갔다. 현중지부 집행부의 전면적 총파업 배제 기조는 뿌리 깊다. 현중지부와 현자지부를 비교하며 적당히 타협 - 정리해고 최소화 등으로 국가폭력에 맞서 투쟁하기보다 우회를 택한 - 해온 현자지부의 생존전략이 맞았다는 정치적 평가에, 최근 10년간의 쌍용차지부 정리해고 저지투쟁에 대한 평가까지! 이 족쇄를 풀지 않고서는 현중 자본을 상대로 의미 있는 투쟁을 할 수 없거니와 민주노조의 안착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사내하청 족쇄 풀기

절대 다수의 사내하청 조직화를 위해 정병모 집행부 때 1차 조직화 사업, 백형록 집행부의 11노조 규약개정이 있었고, 박근태 집행부의 대대적인 2차 조직화 사업을 이제 목전에 두고 있다. 어느 때보다 조직화의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로 길거리에 나앉고, 깎인 기성금으로 인한 임금삭감, 체불임금에 시달려 오면서 정규직의 구조조정을 두 눈으로 다 봤다. 정규직조차 고용과 임금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봐온 사내하청노동자들, 3만 명의 사내하청이 해고될 때 정규직만 살자고 무관심했던 과정을 지켜본 사내하청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단순히 “11노조 됐으니 노조에 가입합시다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이 사회를 현장 확대경으로 보면 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사내하청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제 사유화한 이윤(사내유보금 등)을 저들로부터 탈환해 사내하청의 직접고용을 제기하며 투쟁에 나서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