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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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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뒤에 오는 전쟁 같은 이야기 (2)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가족 납치에 실패한 그들, 악당들은 이번에는 시신을 납치해 재빨리 장례를 치르려고 했다. 그러나 악당들에게 늘상 당해 왔던 하청노동자들의 빠른 대처로 그것은 실패했다. 그럼에도, 사측의 주장으로 열사의 시신이 부검 당했고, 크레인에 올라가서 농성을 한 하청노동자 3명이 수십 명의 회사 경비대에 의해 5시간 동안 입에 재갈이 물리고 무릎과 팔이 꺾여 질질 끌려 내려오는 전쟁을 한바탕 치렀다. 그리고 나서야 울산대 병원에 영안실을 차리고 천막농성장이 만들어 투쟁거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박일수 생전에 그렇게 하기 힘들었던 하청노동자들의 노조 공개 활동 선언도 이어졌다. 전국의 노동운동의 시선이 이곳을 향하기 시작했고, 박일수열사정신계승대회는 영남권노동자집회로 확대됐다. 박일수 분신 후 10여 일이 지난 때였다.

 

그들은 늘 달랐다

영남권노동자집회가 있던 그날 밤. 비가 내렸다. 전경, 사측 경비대, 직영노동자, 소위 3종세트 악당들이 농성장에 난입한다. 이날 낮의 대규모 집회에 대한 분풀이를 하듯 전쟁터를 방불케 한 폭력이 자행됐다. 그러고 난 후 공개 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한 하청노동자 2명을 해고했다. 비오는 밤 행패가 벌어졌던 날로부터 사흘 뒤, 직영노동자 대의원과 회사 경비대로 꾸려진 150여 명의 대오가 이번에는 영안실로 들이닥쳤다. 온갖 쌍욕을 내뱉으면서 농성장 플랑카드를 걷어내고 천막을 부쉈다. 이날 사건으로 하청노조는 직영노조를 회사와 똑같은 집단으로 여겼다. 그러나 공동대책위는 생각이 달랐다. 열사투쟁이 빨리 끝나야 한다는 명분으로 하청노조의 반대에도 직영노조를 못 끊어냈다. 한발 더 나아가 대책위는 회사-직영노조-민주노총울산본부가 참여하는 ‘3자 교섭테이블을 제안하고 나섰다.

어느새 박일수의 분신은 비정규직 문제를 우리 사회에 전면적으로 알려내는 도화선이 되어가고 있었다. 분신 한 달여 뒤 전국노동자대회도 치러졌다(313일 비정규직철폐 박일수열사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그러나 막상 울산은 현중직영노조를 제명해야 한다교섭의 주요 파트너다로 맞서고 있었다. 이 둘은 전국노동자대회 2주 후에 열린 영남권집중대회를 아예 따로 꾸렸다. 어떻게 하든 실질적으로 빠르게 교섭을 이끌어내고 싶은 대책위는 평화기조로, 열사정신선봉대를 조직해서 전국의 사업장을 도는 순회투쟁을 제안한 하청노조는 강한 투쟁기조로 집회를 꾸렸다. 이후 열사투쟁의 기운은 급격히 가라앉았다. 투쟁은 하청노조 집행부만의 노숙투쟁, 단식농성으로 고립되어 갔다.

그 와중에 대책위의 협상이 재개됐다. 받아들일 수 없는 안들만 난무한 가운데 대책위 위원장과 회사만의 단독 교섭이 이루어졌다. 잠정합의안이 도출됐다. 그러나 그것은 하청노동자에게는 백퍼센트 공수표 합의안이었다. 하청노동자들은 합의안에 완강히 반대했으나 결국 전제조건을 달고 수용했다. 끝까지 합의를 반대한 하청노동자들만이 현중 정문 앞에서 농성투쟁을 계속 이어갔다. 합의안 수용 후 빠르게 장례식을 향해 갔다. 56일 만에 장례식을 치렀다. 열사의 관은 민주노총 휘장으로 휘감았으나, 민주노총 휘장보다 더 중요했던 노제路祭는 하지 못했다. 약속된 노제가 왜 안됐는지 아무도 모른 채, 열사는 땅속에 묻혔다.

아직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잠정합의 바로 전날, 하청노동자들은 이 합의안을 속보 형태로 울산 시내에 알렸다. 그러나 회사가 합의안과 다르다며 대책위에 강력히 항의했다. 뭐가 어떻게 다른지 노동자들은 몰랐다. 노동조합 보장, 노제 보장, 열사 칭호, 장례비 보전 등 잠정합의안에 나온 그대로를 알렸을 뿐이다. 그러나 대책위는 달랐다. 부랴부랴 유인물을 수거했고, 회사에 사과까지 했다. 회사는 너희가 합의안을 어겼으니 다 무효다라고 길길이 뛰었다. 뭘 합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장례가 끝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회사-직영노조-대책위가 직접 사인한 잠정합의안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합의서에는 조합활동 보장이 아니라 허용이 있었고, 박일수라는 이름도 열사라는 칭호도 없었다. 노제는 그래서 안 된 것이었다. 이 해 가을 현중직영노조는 민주노총에서 제명된다. 또 하나의 잠정합의안을 만든 대책위의 그 누군가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도 없었다. <유언>은 여기서 끝난다.

 

그는 없다

박일수 열사 분신 10여 년 후, 현중직영노조는 민주노조로 다시 섰다. 그러나 박일수 열사는 분신한 그 자리에서 툴툴 털고 일어나 자신이 일했던 현장을 가로질러 동료들과 눈인사를 나눌 수 없다. 고단한 일상으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해준 하루의 노동도 다시는 할 수 없다. 하청노조의 문을 열고 들어가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박카스 한 박스를 내미는 그 작은 일도 할 수 없다. 다시는 그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할 수도, 그가 보고 싶은 누군가의 곁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