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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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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12.03 09:19

신장을 다스리는 법

 

박석준한의사(흙살림동일한의원장, 동의과학연구소장)

 


신장을 다스리는 약 중에서 비교적 잘 알려진 것은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이라는 약일 것이다. 그냥 육미六味라고도 하는데, 이 처방은 북송北宋 시대의 전을錢乙이 편찬한 <소아약증직결小兒藥證直訣>에 처음 소개된 이래로 <동의보감>이나 <방약합편>에도 실려 지금까지 애용되는 처방이며 여기에 몇 가지를 더 넣고 빼어 다양한 변방(變方. 변화된 처방)을 만들기도 하는 등 쓰임새가 많다.

백석白石은 이를 시로 남기기도 했다. 다음은 백석의 <탕약>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루 위에 곱돌탕관에 약이 끓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육미탕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끓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옛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아진다

 

시인은 어떻게 약을 먹으면서 그 약을 처음 만든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앞에서 육미라는 약은 전을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했지만 사실 그 처방은 한나라 때의 장중경이라는 사람이 만든 팔미지황환八味地黃丸이라는 처방에서 육계와 부자를 뺀 것이다. 물론 장중경 역시 그 이전에 누군가가 팔미지황환의 전신격인 어떤 처방을 냈을 수 있고 장중경이 거기에 가감했을 수도 있다. 정확한 연원을 알기는 어렵지만 어느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처방을 냈음은 분명하다. 그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 또 그 방법은 어떤 것일까.

 

신수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육미가 좋다

육미는 신장의 신수腎水가 부족하고 음이 허한 것을 치료한다. 신장은 정을 저장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정이 지나치게 줄어들면 신수가 부족하게 된다. 증상은 허리가 시큰거리고 몹시 피로하며 어지럼증, 이명(귀 울음), 유정(자기도 모르게 정이 새어나오는 것), 조설(早泄. 너무 일찍 정이 나오는 것)이 있고 입이 마르며 목구멍이 아프고 손발바닥에 열감이 있으면서 가슴에 번열이 나고 오후에는 조열(潮熱. 올랐다 내렸다 하는 열)이 있다.

이것만이 아니라 자다가 땀이 많이 나거나 뼛속 깊은 곳에서 열이 나는 듯하며 치아가 흔들리기도 하고 소변이 찔끔찔끔 나오면서 탁하기도 하다. 이때 혀를 보면 전체적으로 붉은 색이면서 약간의 혀이끼가 껴있다.

그런데 이 처방은 원래 소아를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신장의 기가 허약하여 소리가 잘 나오지 못하는 아이, 숫구멍이 닫히지 않는 아이, 정신적 발달이 늦은 아이(지능은 신장의 정이 없으면 발휘되지 못한다), 눈의 검은자위가 작은 아이 등을 치료하기 위해서 만든 처방이다.

그런데 어린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양기陽氣가 많은 반면 음기는 적다. 양기는 잘 움직이고 높이 올라가려 하고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는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음기다. 그것도 소아의 발육에 필수적인 정이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병이 없더라도 소아에게는 음기를 보하는 육미가 좋은 약이 된다. 비교적 장기적으로 복용해도 별 해가 없다.

이에 비해 아이들에게 인삼이나 홍삼을 장기적으로 복용하게 하는 것은 큰 해가 된다. 인삼이나 홍삼은 양기를 올리는 대표적인 약이다. 양기 덩어리인 아이에게 양기를 더하니 큰 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육미는 이후 소아만이 아니라 어른의 신수부족에도 널리 활용되었다. 아마도 백석이 이 시를 쓸 때쯤 해서 몸이 많이 약해졌던 모양이다. 자기에게 잘 맞는 약은, 다른 사람은 쓰다고 싫어할지 모르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달게 여긴다. 어찌 보면 달큼하고 구수하며 향기로운내음이 나는 약을 받아들었을 때, 그 약을 낸 사람을 생각해내고 감사하는 것이 마땅한 일 아닐까.

백석의 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당시에 적어도 지식인들은 자신이 먹는 약이 어떤 약이고 무슨 약재로 이루어졌는지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약을 먹고 그 약은 어떤 약이라는 것까지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몸을 다스려주는 약을 먹는 환자의 자세는 백석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백석의 시를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과연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한 번이라도 그 음식을 만들어 낸 옛사람을 떠올린 적이 있었던가? 개돼지가 모이를 먹듯, 차에 기름을 주유하듯 먹지는 않았던가? 그 오랜 세월을 두고 전해져온 전설을 시정잡배의 쌍소리만도 못하게 대해온 것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