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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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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대체복무’, 

문제는 병역거부자가 아니라 국가

 

방승현학생위원회

 


[출처: 전쟁없는세상]   


올해 6월 헌법재판소가 병역거부 처벌조항은 합헌,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시한 이후 대체복무제에 관한 논란이 다시금 점화되었다. 지난 111일에는 대법원에서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이어 117일 국가인권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대체복무제가 언급되면서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12월까지 대체복무 내용과 기간에 관한 정부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양심은 검증이 아니라 존중을 받아야 한다

우선 헌재 판결보다도 병역거부자에 우호적인 판결로 주목받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보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병역법에서 처벌의 예외사유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 다수의견이라고 밝혔다.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면 진일보한 판결로 보이지만, 이렇게 되면 양심의 진정성이 재판 대상이 되어버린다. 실제로 대법원에서는 판결에 더해 피고인이 양심을 소명하는 자료를 제시하면, 검사가 자료의 신빙성을 비판해 정당한 사유가 없음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재판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실상 자신의 양심을 법원에서 검증받으라는 의미로, 이 판결이 진정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라면 판사의 승인 없이도 대체복무가 가능해야 한다.

양심을 검증받으라는 논리의 기저에는 병역거부가 국방의 의무를 내빼려는 무임승차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런 인식은 헌재 판시 이후 주장되는 대체복무 방안들을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44개월 동안 지뢰제거, 보훈병원 업무를 맡으라던 자유한국당의 김학용 같은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편 정부는 대체복무자에 대해 36개월 안과 교정시설 합숙근무 방안을 유력 검토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무임승차 인식에 기반한 징벌적 성격이 있다. 가장 긴 병과(공군 22개월)2배를 복무하고 지뢰제거 같은 위험업무를 맡으라는 김학용의 주장은 노골적이다. 정부 방안 또한 복무기간이 36개월로, 대체복무의 국제적 추세인 현역병(육군 18개월)1.5(27개월)보다 길어 징벌적 성격이 있다. 정부는 36개월의 근거로 현역병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들고 있다. 전문연구요원과 공중보건의 등 다른 대체복무도 36개월을 근무하는 만큼 이를 근거로 형평성을 맞추고, 영내에서 생활하는 현역병들의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게 군의 설명이다. 이런 주장이 은폐하는 사실은, 현역병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큼 열악한 군대제도와 병영문화를 만든 주체가 병역거부자가 아니라 정부, 즉 국가 자신이라는 점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병역거부자가 아닌 국가의 책임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이 병역거부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지금의 병역 자체에 동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대체복무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스위스, 독일, 이스라엘 등이 대표적으로, 이들 국가들은 징병자들에게 급여와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해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대우를 하고 있다. 결국 현역병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병역거부자가 아닌 국가의 책임인 것이다. 국가는 대중적 반감을 핑계로 병역거부자들을 징벌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불합리한 군대제도와 병영문화를 개선하는 것부터 착수해야 한다. 정말 현역병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관심이 있다면, 병역에 불만을 느끼게 만드는 각종 사항들-최저임금의 30% 수준에 불과한 병사월급, 지나친 자유의 제약, 각종 부조리와 가혹행위, 군납비리-부터 해결해야 한다


무엇을,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

한편 이렇게 하나 둘, 대체복무로 빠지기 시작하면 나라를 지킬 사람은 누가 남겠냐는 인식도 흔히 볼 수 있다. 대체복무 또한 일종의 안보라는 점을 제하더라도, 이는 기우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인민들은 필요를 느낄 때마다 기꺼이 무기를 들어왔다. 가깝게는 80년 광주에서 군사독재정권에 맞섰던 시민군이 있었고,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들도 있었다. 멀리는 스스로가 세운 코뮌을 지키고자 싸웠던 파리코뮌의 시민군, 왕정국가들에 맞선 프랑스 혁명기의 의용군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군대냐는 것이다. 기꺼이 무기를 들던 인민들이 적극적으로 병역을 거부했던 사례들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이 그 시작으로, 기존의 종교적 사유가 아닌 정치적, 평화적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이때 영국과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들을 주축으로 이 전쟁이 제국의 지배자들과 자본가들의 이득을 위한 전쟁이라고 비판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운동이 벌어졌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때도 비슷하게 이어졌고,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반전운동과 함께 병역거부운동이 전개되었다. 현재도 서구에서는 위와 같은 병역거부운동의 유산으로 대체복무제가 유연하게 적용되고 있다.

결국 병역거부가 의미하는 것은 현재의 군대가 인민의 동의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회자되는 징벌적 대체복무, 국가가 동의를 얻지 못한 책임을 병역거부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