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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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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의 덫에 걸린 민주노총이 살 길

 

김태연대표

 



마녀사냥은 중세(12세기)에서 시작하여 근세(16~17세기)에 기승을 부렸다. 마녀사냥으로 인한 전체 희생자는 최소한 5만 명 내외로 추정된다. 마녀는 기득권 세력의 권력과 이익을 위한 희생양이었다. 대기근, 전염병, 전쟁 등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호도하고 대중적 원성과 불만을 엉뚱한 희생양에게 전가한 것이 마녀사냥이다. 교회에 의한 마녀사냥은 18세기 말경에 대체로 없어졌지만, 그 후에도 현대판 마녀사냥은 끊이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후 자행된 미국의 매카시즘은 악명 높은 현대판 마녀사냥의 대표격이다. 최근 1개월간 한국에서도 현대판 마녀사냥이 자행되고 있다.

 

졸지에 마녀로 내몰린 민주노총

115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참석한 국정상설협의체에서 탄력근로제 개악추진을 합의했다. 이어 118일 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들은 탄력근로제 연내 개악을 합의했다. 탄력근로제 개악이 전광석화처럼 추진되는 와중에 민주노총에 대한 전방위 공격이 이루어졌다. 민주당 원내대표,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등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의 권력실세들이 선두에 섰다. “경사노위 끝내 외면한 민주노총의 오만이라며 경향신문 등 언론도 가세했다. 정부여당의 민주노총 공격이 신호탄이 된 듯 조··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포화를 퍼부었다.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과 환노위원장 등 보수야당 인사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준동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 여야, 언론, 자본 등이 경쟁하듯 괴물, 적폐, 사회적 강자, 집단이기주의, 오만 등 온갖 마녀스러운 수사들을 동원하여 민주노총에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중세도 아닌 21세기에 민주노총은 졸지에 마녀로 몰리고 있다. 10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한 달 기간에 전개된 민주노총에 대한 공격은 마녀사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당 원내대표들과 탄력근로제 개악을 전격 합의한 사회적·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집권 이후 계속 후퇴되어 왔던 노동존중사회 공약을 최종적으로 폐기한다는 정치적 합의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실시로 반보내디뎠다가 바로 꼬리를 내리고 재벌을 비롯한 자본에 바치는 항복 선언이다. 탄력근로제 개악의 가장 일차적인 희생자는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이다. 이들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임금삭감, 장시간노동, 노동강도 강화 등은 대기근, 전염병, 전쟁 등 재앙적 수준의 것들이다. 문재인 정권은 조직노동자들을 기득권 세력, 사회적 강자, 집단이기주의 등으로 몰아붙이며 자신들의 정치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로 강변해왔다. 그랬던 그들에게는 스스로 몰고 올 대재앙으로 인한 대중적 원성을 다른 곳으로 돌릴 마녀가 필요했다.

 

노동기본권은 거래 대상 아닌 최후의 보루

졸지에 마녀로 몰린 민주노총이 살 길은 무엇일까? 문재인 정권은 1122일 경사노위 출범직전에 민주노총을 마녀로 지목하고 집중적으로 돌팔매질을 했다. 그리고 경사노위에 들어오면 살 수 있다고 했다. 보수여야 정당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정의당 노동이 당당한나라 본부장도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에 비수를 날렸다. 과연 그것이 살 길일까? 마녀사냥 수법 중에 마녀 판별법이 있었다고 한다. 물에 빠뜨려서 가라앉으면 마녀가 아니고 뜨면 마녀라는 것이다. 불에 달군 철판 위를 걷게 하여 불에 타면 마녀가 아니고 불에 안 타면 마녀라는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죽일 수 있는 것이 마녀사냥의 고전적인 수법이다. 문재인 정권은 경사노위에 민주노총이 들어와서 탄력근로제 개악에 합의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1998년에 노사정위에 들어가서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조기시행에 합의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노동조건을 옹호하는 투쟁조직으로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고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경사노위 지형과 1998년 노사정위 지형은 유사하다. 김대중 정권이 노동자들에게 강요한 프레임과 문재인 정권의 그것이 매우 흡사하다. 경사노위와 노사정위와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는 노사의 상호양보를 전제로 하는 기구이다. 이 점에서 헌법상 노동3권에 의한 교섭기구와 다른 것이다. 둘 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자본이 손을 잡고 노동자들의 핵심적 노동조건 후퇴를 강요하고 있다. 1998년의 정리해고제나 근로자파견제처럼 지금의 탄력근로제 개악은 노동자들이 양보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이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하는 대가로 노동3권 일부를 개선하겠다는 빅딜을 주장하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 1998년의 노동3권 개선은 한국의 OECD 가입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것을 마치 자본과 정권의 양보인 양 둔갑시켰다. 지금의 ILO조약 비준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가 공약한 노동3권 개선을 경사노위를 이용하여 벗어나려는 간교한 포석까지 엿보인다.

독일 뇌르틀링겐에서 마리아 홀린이라는 여인이 마녀로 몰려 11개월 동안 56번의 고문을 당하고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풀려났다고 한다. 긴 세월 버텨서 연명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2003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마녀사냥이 교회의 잘못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즉 뻔히 보이는 마녀사냥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민주노총 스스로가 마녀사냥의 덫으로 발을 내디뎌서 화근을 만들고 있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 살 길이다. 또 다시 정권과 자본이 손을 잡고 노동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적 합의 프레임의 실체를 폭로하고 투쟁하는 길이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