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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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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12.03 11:06

총액임금제 반대 투쟁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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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중공업(통일중공업)노조의 총액임금제 분쇄 투쟁  


노태우 정권은 자본 옹호를 넘어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19911월 전국경제단체협의회가 한자리수 임금인상 방침을 확정하고 노동부장관이 전국을 순회하며 한자리수 임금인상 관철임금 변칙인상 규제를 호언했다. 상공부는 노사협상으로 무노동무임금, 노동자의 인사 및 경영권 참여 배제, 한자리수 임금인상률 등을 위배하는 기업에 대해 경단협 등을 통해 어음 유통을 거부하는 등 공동 제재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런 원칙을 준수하다 쟁의가 발생한 업체에 대해서는 원자재를 우선 공급하겠다고 했다.

 

임금은 어떻게 왜곡되었나

그러나 자본과 정권의 임금통제 정책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무너졌다. 전체 노동자 임금인상률에 관한 노동부 통계를 보면 1990년 통상임금 기준 임금인상률은 9.1%지만 각종 수당을 포함하는 총액 기준 임금인상률은 13.8%였다. 1991년 전국 공동임금인상 투쟁본부 소속 노조들은 기본급 기준으로 평균 17.6%(타결률 82.9% 확인된 306개 노조의 평균 인상액 54,423, 이는 요구안의 66% 관철)의 임금인상을 쟁취했으며 물가, 근속, 가족수당 등 각종 수당과 상여금도 올라 통상임금을 기준해서 보면 대략 20%가 인상되었을 것으로 추산되었다. 한자리수 임금인상률에 머문 노조는 전체의 6.7%였다. (전노협 백서 5권 참조 및 인용)

자본과 정권의 임금통제 정책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임금억제 정책이 가져온 결과는 임금체계 왜곡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확대였다. 기본급을 한자리수 이내로 인상시키는 반면, 각종 수당과 특별상여금 인상과 신설로 총급여액 기준 명목임금 상승률을 높게 한 것이다. 체력단련비, 효도비 등 각종 수당의 종류는 무려 100여 개가 되었다. 기본급 비율이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본의 임금통제 장기 프로젝트와 이에 대항한 노동자의 투쟁

자본과 정권이 1992년에 고안해낸 것은 총액임금제였다. 한자리수 임금인상 정책을 기본급이 아닌 임금총액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명분은 임금체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노동운동진영은 생계비 임금을 요구했다. 임금인상은 정액 인상으로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설정하였다. 그런데 자본은 총액임금제 도입을 통해 생산성 임금제를 기본으로 향후 성과급제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이 총액임금제는 정부투자·출연기관, 지방공기업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해당 부처의 예산편성권이나 인사권을 임금억제 수단으로 악용하기 위해 관련 부처별로 역할을 나누며 구체화했다.

서울시 투자기관 노동조합협의회, 정부출연기관 노동조합, 서울대병원노동조합, 지방공사의료원노동조합협의회 등 공공부문 65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기자회견, 정부기관 항의방문 등 공동대응을 모색하였다. 전노협은 총액임금제가 저임금 유지, 임금체계 개악, 기업 간 임금격차 확대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고, 공공부문을 넘어선 총액임금제 분쇄투쟁을 적극 조직했다.

ILO전국공대위는 1992410일 경희대 크라운관에 372개 노조와 단체 대표자 478명이 모였다. 노조 대표자들은 총액임금제 저지를 위한 노동조합 대표자회의에서 대책위를 구성하고 이후 연대서명, 대표자회의, 대규모 노동절 집회로 분위기를 고양시켰다. 520일 준법투쟁 돌입과 함께 총력투쟁이 시작되었다. 522일 서울대학교병원노조가 3시간 파업을 하고, 612일에는 세일중공업노조가 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서울지하철노조가 임금 5% 인상에 직권조인(617)하고 619일 세일중공업노조 파업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투쟁은 하강 국면을 맞았다. 전노협은 단위노조의 조직력 강화를 중심에 두면서 조건에 맞는 투쟁을 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결과 이후 단위사업장의 투쟁은 개별화되었다.

 

결과적으로 투쟁 전선이 힘을 갖지는 못했지만 노동자들은 총액임금제 전면 거부, 5% 임금억제 돌파, 이면 타결 거부 등의 원칙을 견지하며 자본의 공세에 맞섰다. 그리고 이 투쟁을 계기로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은 연대와 교류의 폭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