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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결렬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


장혜경┃정책선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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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결렬됐다. 작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오랜만의 만남이었고, 양측 실무협상에서 상당한 의견접근을 예상했기 때문에 결렬은 충격 그 자체였다.



결렬 원인, ‘영변 핵시설+알파 vs 제재 완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유는 무엇인가? 회담 이후 양측 기자회견에서 드러난바, 직접적 원인은 ‘영변 핵시설+알파(미국의 추가 요구사항)와 제재 완화’를 둘러싼 이견 때문이다. 트럼프는 결렬의 책임을 북한에 돌렸다. 북한이 “전반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와 국가안보보좌관 볼턴의 발언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에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외에 ‘알파(α)’를 요구했다. 이 ‘α’는 영변 외에도 ‘핵탄두와 탄도미사일 관련 모든 시설과 생화학 무기 폐기, 핵 목록 작성과 신고’를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책임을 떠넘기자 북한도 반격에 나섰다. 북한 외무상 리용호는 “핵실험과 장거리 로케트 시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도 문서형태로 줄 용의”가 있음을 밝혔고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며 이를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덧붙여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북한의 요구는 전반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부분적 제재 완화(유엔제재 총 11건 가운데 2016~17년 채택된 5건, 그것도 민수경제와 특히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였다고 했다.


양측 발언을 종합하면,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와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대가로 미국에 부분적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영변 외에 ‘알파’를 요구하며 제재 완화를 거부했다. 북‧미는 북한 비핵화와 미국 상응 조치의 내용과 순서에 대한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다.



미국, 판을 깨다

이번 북미회담 결렬 책임은 미국에 있다. 정상회담 전까지 분위기는 낙관적이었다. 대북 협상을 담당한 스티븐 비건(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은 북한이 요구한 단계적 해법을 수용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회담 전 실무협상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평화선언) 등에 대해 합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런데 결국 판은 깨졌다. 미국은 회담 이틀째에 강경 패권주의자 볼턴을 등장시켰고, 기존 실무협상에서 논의하지 않았던 ‘알파’를 요구했다. 북한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리비아 모델(선 비핵화-후 상응 조치)을 들이밀어 결렬을 유도한 것이다.


트럼프가 협상을 깬 것은 미국 국내정치 상황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미 정상회담 당일, 미국 의회에서는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청문회에 나섰고 2016년 미국 대선을 비롯해 트럼프가 저지른 부정행위와 스캔들을 폭로했다. 미국의 여론은 이 청문회에 쏠렸다. 그러자 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트럼프가 북‧미 회담을 결렬로 끌고 갔다는 것이다. 코언 청문회로 가뜩이나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북한과 합의 성사 시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비난까지(회담 전 실무협상에서 나온 합의문에 대한 미국 내 비판 여론이 거셌다) 받게 될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미 회담 와중에도 미국 언론 헤드라인은 온통 코언 청문회였지만, 회담 결렬 이후엔 이 소식이 청문회를 제치고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트럼프가 협상을 깨고 나오자 미국 주류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나쁜 합의보다 노딜(No Deal)이 낫다’며 환영 일색이었다.


트럼프의 결렬 카드는 국내 정치용으로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협상장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중국과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무역분쟁으로 협상을 벌이는 중국까지 압박한 것이다.



판은 깨진 것인가?

이번 결렬이 한반도 긴장 완화 국면을 곧바로 역전시킬 것 같지는 않다. 회담 이후에도 북‧미는 향후 협상 자체를 깰 정도의 비난은 삼가고 있다. 폼페이오는 “수주일 내 방북을 희망한다”며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다. 북한의 관영 <조선중앙통신> 역시 “하노이에서의 상봉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더욱 두터이 하고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보도했다. 결렬의 이유가 트럼프의 국내정치 상황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게다가 북미회담 직후 3월 2일, 한‧미 양국은 최대 연합 군사훈련인 키리졸브‧독수리훈련을 중단하고 “동맹” 연습을 신설해 양 훈련을 축소‧대체하기로 했다. 이는 그간 트럼프가 ‘한반도에 대한 미군 전략자산 전개의 막대한 비용은 낭비’라고 지속해서 비판했던 것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북‧미 협상테이블 유지를 위한 조치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현재 남북과 미국 정부 모두 한반도 긴장 완화에 이해관계가 맞물린 점도 정세의 반전을 섣불리 전망할 수 없는 요인이다.


정리하면, 현 정세는 작년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형성된 부분적 쌍중단(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동결, 미국은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축소)을 지속하는 국면으로, 과거의 같은 긴장 격화(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지속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강화)로는 회귀하기 어려울 것이다.



깨지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상황

대화 국면이 완전히 깨지지는 않았지만, 이번 회담 결렬은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 진전에 심각한 걸림돌이다. 첫째, 미국이 북한 비핵화의 문턱을 높이고 ‘선 비핵화’ 요구를 공식적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동시적‧단계적 해법을 고수하는 북한과 접점을 형성하기 힘들어졌다. 북한이 이번에 초기 교환조치로 내놓은 영변 핵시설 전체 영구 폐기는 북한 입장에서 획기적이었다. 영변이 북한 핵시설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도 그렇고, 북한이 비핵화 첫 조치로 동결이 아닌 영구폐기를 내놓은 것도 역사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모든 핵과 미사일, 살상무기 폐기 등 북한의 총체적인 무장해제를 패권적으로 요구했다.


둘째, 제재 완화 문제에서도 합의는 난항을 겪을 것이다.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동결에다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까지 내놨지만, 미국은 일부 제재 완화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국 지배세력은 ‘제재 일부만 완화해도 북한에 대한 압박 수단이 사라지며,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90%에 이르는 상황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중국과의 패권 갈등을 지속하는 미국은 이런 방침을 이후에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입장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미국의 대북 제재는 핵과 미사일 실험이 주요 명분이었는데, 작년부터 북한이 이를 동결하고 영변 핵시설 폐기를 내놓았음에도 미국이 제재 완화를 거부한 것은 북한에 백기 투항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트럼프의 국내 정치 상황이 악화할 경우, 미국은 북한에 대한 실질적 양보 없이 대화 국면을 질질 끌면서 북한을 ‘핵‧미사일 실험 동결’에 묶어두는 수준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북한의 핵 공격 위험에서 미국을 지켰다’는 것을 치적으로 부각하면서 2020년 재선을 노릴 수 있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요원하다.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정책에 맞서야

유시민 등 친정부 세력은 “북‧미가 열매 맺을 가능성은 더 커졌다”는 식으로 이번 회담 결렬을 진단한다. 하지만 이는 자유주의 세력의 희망을 반영한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중재자론’의 한계도 드러났다. 정부는 현재의 경색국면 타개(북한 달래기)를 위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가동을 추진하되, 유엔 제재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선 비핵화-후 제재 완화(해제)’라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에 제동을 거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한, 문재인정부의 운전자론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현 상황을 구경만 해선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회담 결렬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과 문재인정부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고, 평화는 북‧미간 협상과 문재인정부의 중재에 기댈 수 없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줬다. 한반도가 불과 2년 전처럼 전쟁위기의 격랑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긴장을 조장하고 있는 미국의 패권적 태도에 반대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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