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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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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모든 현장을 

유성기업으로 만들 것인가


김성민(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사무국장)┃충북



누군가 그랬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노동법이 좋았을 때가 언제인 줄 아느냐? 바로 대한민국 초기다.” 정부는 세워야겠고 법은 있어야 하니, 옆 나라 일본의 법을 그대로 가져와 만들었다고 한다.


그 시절 노동법은 ‘있으나 마나’였다. 오죽하면 전태일 열사가 1970년 11월 13일 분신하며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했겠나? 전태일 열사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았고 노동 현장의 착취와 탄압을 노동부에 고발했지만, 돌아온 것은 노동부 관료들과 자본가들의 더러운 적폐 동맹이었다.


노동자들이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투쟁한 날부터 자본가들은 노동법을 개악하기 시작했다. 1996년 김영삼 정권의 정리해고제-파견제 날치기 통과가 그랬고, 민주노조의 쟁의권과 교섭권을 대폭 억제한 2003년 노무현 정권의 “노사관계 로드맵”이 그랬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1996년 이래 비정규직, 하청노동 양산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는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됐다. “노사관계 로드맵”은 노조파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많은 노동자가 ‘내 사업장, 내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던 노동법 개악. 하지만 잠시 눈을 감은 틈을 타, 그 개악이 다시 눈을 찌를 기세로 앞에 와있다.



진실을 밝히는 데 걸린 6년이라는 시간

유성기업은 이제 노조파괴 사업장의 상징과도 같다. 만약 민주노조가 포기하고 무너졌다면, 노동조합은 존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의 죄목은 근로기준법 위반, 부당노동행위다. 그런데 노동부와 검찰은 6년이나 범죄를 숨겼다. 빤히 법이 있는데도 집행자들은 법을 유린하고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 현실에서, 경사노위가 벌이는 노동법 개악은 경악을 넘어 공포스럽다.


내용을 살펴보니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유성기업 노조파괴로 (비록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유시영 회장이 처벌받는 것을 보고, 경총과 자본가들이 노조파괴를 아예 합법화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준비한 것 아닌가.


첫째, 쟁의권 무력화.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수시로 파업을 통해 회사를 상대로 싸워왔다. 임금을 삭감하면 즉시 항의하고 싸우는데, 사측은 ‘근무지 이탈’이라며 맞선다. 이에 우리는 파업으로 맞불을 놨다. 그런데 경사노위가 내놓은 안을 보면, 이제는 파업 기간을 명시하라고 한다. 사측이 언제 탄압을 자행할지 모르는데,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가? 명시하지 않은 파업에 대해 사측이 이른바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라고 제기하면, 그대로 고발당해야 하는가? 유성기업지회는 8년째 쟁의행위 기간이다. 그런데 쟁의행위 결정(찬반투표) 효력을 60일로 한다니? 노조파괴 범죄자들을 계속 기용하는 사측에 맞서 싸워야 하는데 투쟁을 고작 60일로 끝내라니, 버티는 사측을 무엇으로 강제할 것인가?


둘째, 노동자의 힘은 현장 투쟁에서 나오는데, 이제 파업과 집회를 하려면 현장에서 나가라고 한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사측으로부터 징계와 사법처리를 당하는 대부분은 현장의 불법적인 CCTV 설치 등 사측의 잘못에 항의하면서 시작된다. 현장에서 목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고, 구사대와 대치하고, 어깨 부딪히며 싸우면서 현장 민주화를 쟁취했다. 그런데 파업과 집회가 현장 밖으로 밀려난다면, 파업은 목적을 잃을 수밖에 없다.



노조 뿌리까지 뽑겠다는 경사노위 개악안

셋째, 파업을 무력화하는 대체 근로 전면허용. 유성기업지회가 지금까지 투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복수(어용)노조다. 아무리 지회가 투쟁해도 어용들이 생산을 지속하기 때문에 파업의 효과가 없다. 2018년 10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지회는 78일간 전면파업에 나섰지만, 현장을 멈추지 못했다. 어용과 관리자들이 투입돼 돌아가는 현장에 대체 인력까지 들어온다면 파업은 안 하는 것만 못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하지 말고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를 신설하자는 주장. 유성기업 노조파괴범 유시영 회장의 형량은 고작 1년 6개월이었다. 이마저도 2심에서 깎여 1년 2개월로 줄었다. 노조파괴 용역깡패 고용, 어용노조 설립, 민주노조 조합원에 대한 부당해고와 징계 등 온갖 범죄를 저질렀는데 겨우 이 정도다. 이런 유시영을 구속시키기 위해 조합원 수십 명이 해고당하고 수백 명이 징계를 받고, 마침내는 목숨마저 끊었다. 경사노위가 내놓은 개악이 실현된다면 앞으로 어느 누가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유성기업지회 같은 지난한 투쟁 끝에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어떨까?


노동의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닌 시절이 있었다. ‘그저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노동법 개악이고 나발이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줄 알았다. 사람이 죽는 문제 역시 아주 멀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다시 한번 돌아보자, 자본가들의 칼날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설마 어떻게 되겠지’, ‘누가 싸워 주겠지’ 하는 기대는 이제 설 곳이 없다. 무릎 꿇고 빌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된 싸움을 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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