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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4.01 17:41

홍날개



숲속에 쓰려져서 썩어가는 나무줄기에 작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기어간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지만 빨간색이 도드라져서 멀리서도 눈에 띈다. 진달래 꽃피는 이른 봄에 숲에서 자주 보게 되는 홍날개다. 아직 바람은 차지만 숲 가득 봄기운이 느껴진다.


부지런히 기어가는 홍날개를 본다. 빗살 모양의 더듬이가 눈에 띄지만, 붉은 가슴과 딱지날개가 인상적이다. 홍날개라는 이름도 빨간 등딱지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홍날개는 주변 색을 닮아 몸을 감추는 대신 오히려 눈에 띄는 빨간색을 하고 있다. 대개 이렇게 눈에 잘 띄는 색을 하는 곤충은 포식자로부터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독이나 무기가 있다. 하지만 홍날개는 자기를 방어할 독이나 무기가 없다. 홍날개는 같은 곳에 사는 홍반디와 크기와 색깔이 꼭 닮았다. 홍반디는 쓴맛이 나는 독을 내어 포식자를 물리친다. 홍날개는 자기를 지킬 방어 물질을 갖는 대신 독이 있는 홍반디를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 방어물질이 있는 홍반디도 머리를 가슴 밑에 숨기는데 홍날개는 머리가 가슴 밖으로 쑥 나와 있다. 겉모습만 보면 홍반디가 허세스러운 홍날개보다 더 연약해 보인다.


홍날개는 애벌레 때 죽은 나무속을 파먹으면서 자란다. 겨울 숲에서 썩은 나무껍질을 벗겨보면 연노랑색 홍날개 애벌레를 만날 수 있다. 곤충학자 정부희는 홍날개를 죽은 갈참나무에 두 번째로 도착하는 곤충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나무좀은 나무껍질 바로 아래에서 나무속을 파먹으면서 껍질과 줄기를 분리시킨다면 두 번째 도착하는 홍날개나 털두꺼비하늘소, 비단벌레류 애벌레는 나무좀보다 더 깊이 나무속을 파먹어서 나무를 잘게 부순다. 홍날개 애벌레는 숲 생태계에서 죽은 나무를 잘게 부수어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분해자 역할을 한다.


한겨울 숲속 썩은 나무껍질 밑에서 보았던 홍날개 애벌레는 그사이 번데기가 되었다가 다시 어른벌레가 되어 썩은 나무를 빠져 나온 것이다. 홍날개 애벌레 옆에서 같이 겨울을 나던 산멤돌이거저리나 하늘소류 애벌레는 오월쯤에나 어른벌레가 될 텐데 홍날개는 왜 이른 봄부터 나와서 부지런을 떠는 걸까? 가뢰 때문이다. 홍날개 수컷은 가뢰의 몸에서 나오는 칸타리딘이라는 독성물질을 얻지 못하면 짝짓기를 할 수 없다. 가뢰 무리가 지닌 칸타리딘이라는 방어물질은 피부에 닿으면 물집이 잡힐 만큼 독성이 강하다. 가뢰 두 마리에서 뽑은 칸타리딘으로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홍날개 수컷은 칸타리딘에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 홍날개 수컷은 칸타리딘으로 암컷을 유혹하고 홍날개 암컷은 칸타리딘을 가진 수컷에게만 짝짓기를 허용한다.


땅속에서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고 이른 봄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남가뢰는 딱정날개가 뚱뚱한 배를 절반도 덮지 못한다. 날지 못하는 남가뢰는 커다란 배를 끌고서 막 돋아난 어린 새순을 찾아 빠르게 움직인다. 남가뢰는 파브르 곤충기에 나와서 유명해진 딱정벌레다. 파브르가 들려주는 남가뢰의 한살이는 정말 신비롭다. 땅속에서 알을 까고 나온 애벌레는 땅위로 올라와 무작정 꽃으로 기어올라 꽃에 찾아온 뒤영벌에 올라탄다. 뒤영벌의 털을 붙들고 집으로 가서 뒤영벌이 낳은 알에 붙어살아간다. 이렇게 해서 어른벌레까지 자라는 남가뢰는 어미 남가뢰가 낳은 수천 개의 알 가운데 한두 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른 봄 홍날개 수컷은 남가뢰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남가뢰를 만나면 끈질기게 들러붙어 남가뢰가 뿜어내는 칸타리딘을 먹는다. 이 칸타리딘은 짝짓기할 때 암컷의 저장낭(정자를 담는 주머니)에 옮겨지고 다시 알에 쌓여서 천적들이 그 알을 먹지 못하게 한다.


숲에서 홍날개는 죽은 나무와 이어지고 남가뢰, 뒤영벌과 이어져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홍날개 이야기는 아주 적은 것뿐이다. 남가뢰, 뒤영벌도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초미세먼지를 줄이려면 숲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숲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조그만 홍날개가 이른 봄 숲속 산책자의 발목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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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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