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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될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완전 월급제 쟁취, 그리고 그 너머


이삼형┃전북(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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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말, 택시 노동자들이 월급제 입법을 약속대로 이행하라며 국회 앞 농성투쟁을 전개했다. [사진: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택시 노동자 투쟁의 역사는 곧 월급제 쟁취 투쟁의 역사였다. 군부 독재 시절인 1984년, 정부가 택시 통폐합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사납금이 급격히 오르자, 그해 5월 사납금 인하를 요구하며 대구에서 택시 노동자들이 대투쟁을 벌였다. 이 투쟁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같은 해 11월, 서울 민경교통 박종만 열사가 “택시 사납금제 철폐! 월급제 쟁취!”를 외치며 분신으로 항거하면서, 본격적인 택시 월급제 투쟁이 막을 올렸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30여 명의 열사가 목숨을 바쳐 싸웠지만, 손에 쥘듯하던 월급제는 아직 쟁취하지 못했다.


그런데 2019년 현재, 지난 수십년간 실현하지 못했던 택시 월급제를 정부·여당이 나서서 추진한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온라인 플랫폼 업체의 운송사업 진입에 맞서 택시 사업주와 (여태껏 어용노조 역할을 해왔던) 주류 노동조합이 ‘카풀 반대 대책위’로 동맹을 맺고 투쟁에 나서는 등, 택시를 둘러싼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갈림길에 선 택시 노동자


집권여당은 작년 12월 12일 일명 “택시 월급제 법안”을 발의한 뒤, 올해 1월 9일에는 택시 월급제 시행을 요구하며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투쟁을 전개하던 김재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전북지회장을 찾아왔다. ‘월급제 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 고공농성을 해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3월에 열린 국회에서 택시 월급제 법안은 담당 소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했다.


물론 4월 임시국회에서도 입법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겉으로는 집권여당과 정부, 청와대까지 택시월급제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법안은 택시 노동자의 요구를 온전히 반영한 게 아니다. 오히려 대기업 온라인 플랫폼 사업을 활성화해 현재의 택시사업 구조를 변화시키고, 저임금·초단시간 노동시장을 확대하는 게 주요한 목적이다. 말하자면 택시 구조조정 입법인 것이다.


2019년 오늘, 택시 노동자들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거대 운수자본(대기업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탄생과 저임금·초단시간 노동시장의 확장에 밀려 패배할 것인가, 아니면 1984년 같은 택시 노동자 대투쟁(고용안정과 생활임금 보장하는 월급제 쟁취 투쟁)으로 일어설 것인가.



온라인 플랫폼 확산과 택시 구조조정


2018년 하반기 즈음, 대기업 카카오를 비롯해 온라인 플랫폼 카풀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진입을 시도했다. 대체적인 여론은 ‘환영’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간 택시사업의 오랜 병폐인 ‘승차거부, 난폭운전, 불친절’이 그 빌미였다. 이 고질적인 문제의 원인은 택시 노동자에게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사납금제’였기 때문에, 이를 근본적으로 폐지하는 해결책이 나와야 했다.


2019년 3월 7일, 이른바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개인택시사업조합, 법인택시사업조합, 전국택시산업노동조합,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국토교통부, 집권여당, 온라인 플랫폼 업체 등으로 구성)가 합의문을 발표했다. 골자는 △출퇴근 시간(오전 7시~9시, 오후 6시~8시)에 카풀 사업을 허용하되 토요일·일요일·공휴일은 제외하고, △택시 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해 노동시간에 부합하는 월급제를 시행하며,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3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합의 당사자들은 입장을 달리했다.


택시 사업주단체인 “일반택시사업조합”은 자가용 유상운송은 물론이고, 택시 월급제마저도 반대하고 나섰다. 택시 노동자들이 과로에 내몰리건 말건, 시민들이 위험과 불편을 감당하건 말건, 사업주들은 택시 노동자에게 경영비용을 전가하고 이윤까지 뽑아내는 지금의 사업 구조를 어떻게든 사수하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도 나서서 ‘월급제를 시행하면 택시 사업주가 손실을 입으니 지원방안을 마련하라’며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일반택시 사업장의 매물이 늘고 있고, 개인택시 매매가는 30% 가까이 하락했다. 그들도 기존의 택시사업 구조가 유지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부·여당은 택시 월급제를 주장하면서도, 속내는 다르다. 그들도 승차 거부·난폭운전·불친절 등 지난 수십년간 계속된 택시의 병폐가 바로 사납금제 때문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으며, 당연히 그 해결방안 역시 현행법 규정에 따라 월급제를 강제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여태껏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야 월급제를 추진하는 것일까? 배경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세계적으로 “차량 공유”(실제로는 차량 대여)에 기반한 온라인 플랫폼 사업이 급격하게 기존 택시 사업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버 같은 초국적 사업자를 대신할 국내 업체를 키우고 여기서 고용을 양적으로 늘리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택시 구조조정의 본질이다. 퀵서비스나 대리운전과 마찬가지로 고령 노동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택시현장에, ‘카풀 플랫폼’이라는 명목으로 오전·오후 2시간씩 파트타임 노동시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이 택시 시장을 잠식한다면, 플랫폼 택시 노동자는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노동자로 전락한다.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월급제는 극소수 택시운송업체에서 유지할 수도 있겠지만, 차차 택시 노동자 대부분을 플랫폼 노동자로 만들려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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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 월급제를 요구하며 택시 노동자 김재주는 역대 최장기 고공농성을 벌였다. [사진: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급변하는 택시 환경, 오늘과 미래를 위한 싸움


온라인 플랫폼 업체의 택시 시장 진입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이어 ‘드론 택시’까지 등장하는 세상이 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안전하고, 편리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권리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노동자의 생존권과 시민의 권리를 모두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지금부터 고민하고 마련해야 한다.


택시 월급제 입법은 카풀 법안과 연동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택시 사업주와 자유한국당이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입법 처리와 무관하게 온라인 플랫폼 사업 추진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그렇기에, 택시 월급제 입법을 쟁취하고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택시 노동자의 투쟁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나아가, 월급제를 통해 반드시 생활임금을 보장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이 임금수준은 기존 택시 노동자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단은 기존 택시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를 통해 수요를 공급받아 운영하는 구조를 유지하겠지만, 여기에서 결정한 임금수준은 이후 늘어나게 될 플랫폼 택시 노동자들의 기준임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제는 더 많이 남아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초국적 플랫폼 사업자인 우버와 리프트 운전자들은 노동조건을 놓고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플랫폼 업체의 지시를 받고 플랫폼 업체가 정한 수준의 급여를 받지만, 플랫폼 업체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는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급여와 노동조건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결코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플랫폼 자본에 우리는 어떤 요구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또한, 플랫폼 업체들은 차량 한 대 보유하지 않고도 결제수단 독점과 수수료만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이러한 부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환원할 것인가?


현재 국내에서 시행 중인 온라인 플랫폼 사업은 퀵서비스나 대리운전 정도다. 하지만 승객을 운송하는 택시까지 대신하게 된다면 안전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존 택시는 자격증 제도로 운영되고 있으며, 택시 노동자들은 전과 조회와 정기적 자격 유지 검사를 받는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 영업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이런 자격을 담보할 체계적인 규제가 없다. ‘플랫폼 경제’든 ‘승차 공유’든, 안전하고 편리하고 신속한 이동권 보장이라는 공공성 강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바로 그렇기에, 운송 플랫폼 사업에 국가가 개입해 공적 운영을 담보하도록 요구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급격히 변화·발전하는 택시 현장에서, 월급제 시행을 결사반대하고 있는 택시 사업주와 이들을 엄호하는 의회를 뛰어넘어야 한다. 더불어, 우리는 어떠한 월급제인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나아가, 온라인 플랫폼 사업이 진정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플랫폼 노동자들의 생존과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지금의 월급제 투쟁보다 더욱 강고한 연대로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택시를 둘러싼 조건이 급변하는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사납금제 철폐를 외치며 택시 노동자 대투쟁을 벌였던 1984년의 경험은, 사업주의 이윤을 넘어 택시 노동자들이 단결한다면 2019년 지금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