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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인분할 저지, 하청 임금체불 해결을 위한 원하청 공동집회.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사진: 필자 제공]




임금체불 시켜놓고 대우조선 인수가 웬 말?

하청 노동자들의 분노, 

원‧하청 공동투쟁이 시작됐다!


이형진┃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사무장



대우조선 인수에다 최근 LNG선을 비롯해 잇따라 수주계약을 발표한 현대중공업.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대규모 임금체불 사태를 맞고 있다. 임금이 제때 안 나와 절규하며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굴지의 세계 1위 조선소’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임금체불 굴레에 갇힌 하청 노동자들의 절규


구조조정 4년을 거치며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에서는 하청 노동자 3만여 명이 정리해고로 쫓겨났다. ‘살아남은’ 자들도 물량감소와 무급휴업, 임금삭감 등으로 월급이 반 토막 났다. 2018년은 조선업 경기 불황과 업체 폐업 구조조정이 바닥을 치고, 다시 일감을 조금씩 회복하는 추세로 돌아선 해였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작년부터 수시로 임금체불의 고통을 당했다. 특히 건조부에서는 작년 7월부터 만성적으로 임금체불이 발생했고, 급기야 올해 3월과 4월에 악성으로 곪아 터졌다.


2월 임금이 지급되는 3월 8일, 건조 1‧5부 소속 8개 업체 1천2백여 명은 전액 임금을 받지 못했다. 건조 2부 소속 일부 업체들도 물량팀 노동자 임금을 25~30%씩 체불했고, 도장 1‧2부 소속 10개 업체 1천여 명은 수개월째 20~50만 원씩 매달 임금이 밀렸다. 이 외에도 선행도장부, 전장부, 대조립 2부 등의 소속 업체들도 10~20%씩 임금을 체불했다. 일부라도 임금을 받지 못한 하청 노동자가 2천5백 명을 훌쩍 넘은 것이다. 3월 대규모 임금체불 사태는 열흘간 지속했고,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건조 1‧5부 소속 8개 하청업체에게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상생지원금’ 명목으로 부족한 금액을 대출해주면서 대부분 일단락됐다. 그러나 3개 업체는 각각 15~50%의 임금을 체불한 상태로 4월을 맞았다.


3월 월급날인 4월 10일을 앞두고 하청업체 대표들은 ‘이번 달에도 기성금(공사대금)이 부족해 임금을 지급하지 못할 형편’이라고 공표했다. ‘더 심각한 임금체불이 올 것’이라는 소문은 3월 말부터 계속 흘러나왔다. 4월 8일, 또다시 건조1‧5부 소속 8개 업체가 임금 전액 체불을 공표했고, 이에 1천여 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오후 1시 이후부터 작업거부에 돌입했다. 4월 9일은 도장 1‧2부 소속 10개 업체가 전액 체불을 통보했고, 역시 1천여 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오후1시 이후 조기 퇴근해 산발적으로 작업을 거부했다. 이렇게 3월보다 배가된 4월 임금체불 사태가 터졌고, 분노한 하청노동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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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필자 제공]



숨죽이고 일만 했던 하청 노동자들의 분노


3월부터 하청 노동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카톡 오픈채팅방은 4월을 경과하면서 금세 6백 명을 넘겼다. 그리고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진지한 대화와 소통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흐르고, 마침내 4월 12일 아침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 50여 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조합 주도하에 처음으로 출근 집회를 열었다. “임금체불 해결하라”, “원청이 책임져라”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기 시작했다. 주말 동안 단톡방에서는 ‘더 많이 모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4월 15일에는 100여 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출근 집회에 나왔다. 본공‧물량팀 가릴 것 없이 임금체불 당사자들이 직접 투쟁에 나선 것이다. 4월 16일은 출근 집회와 함께 하청 노동자 수십 명이 참석한 점심시간 기자회견도 열었다. 체불 당사자와 하청 노동자 부인이 직접 발언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월급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도장부 하청 노동자 1천여 명의 임금은 전액 지급됐고, 건조부는 1개 업체만 전액 지급하고 나머지는 0%, 25%, 40%, 50%, 70% 등 천차만별로 지급됐다. 4월 19일 다시 출근 집회가 열렸고, 원청은 건조 1‧5부 소속 8개 중 6개 업체에만 3월과 같이 ‘상생지원금’을 2~3억 원씩 대출해줬다. 열흘 만에 700여 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체불임금 전액을 지급받고 일터로 돌아갔다. 문제는 배제된 2개 업체 300여 명의 노동자들이었다. 임금은 각각 80%와 125%나 밀려 있었지만, 해결은커녕 오히려 원청으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에 2개 업체 하청 노동자들은 4월 22일부터 현장 투쟁을 시작했다. 점심시간 중식 집회를 열고, 원청 부서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안에 들어가 연좌 농성에 돌입했다. 23일에는 사내하청지회와 현대중공업지부가 오픈채팅방 이름인 <하청다함께> 명의로 제작한 노란색 몸 조끼를 입고 한층 더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이날은 마침 오후 2시부터 울산시와 노동부가 주최하고 동구청이 주관하는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 채용박람회”가 열렸다. 연좌 농성 중이던 하청 노동자들은 다 같이 동구청으로 달려가, 임금체불 문제는 뒷전이면서 하청 노동자들을 현혹해 나쁜 일자리로 몰아넣는 ‘체불박람회’, ‘폐업박람회’를 당장 중단하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많은 언론이 이 사실을 알리면서, 울산에서는 현대중공업의 하청 임금체불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크게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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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현장에서 집단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필자 제공]



원‧하청 공동투쟁, 서막이 오르다


임금체불 2주차인 4월 24일, 하청 노동자들은 연좌 농성 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점심시간에 오토바이 경적 시위를 해보자고 결정했다. 현대중공업지부와 사내하청지회가 지원에 나서고, 정규직 조합원들이 같이 엄호한 하청 노동자들의 오토바이 경적 시위는 결정한 지 하루도 안 돼서 250여 대의 오토바이 행진으로 성사됐다. 현대중공업 민주노조 운동의 상징인 오토바이 경적 시위를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최초로 하청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감행한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같은 날 현대중공업지부는 퇴근 후 현장에서 <법인분할 저지, 하청 임금체불 해결을 위한 원‧하청 공동집회>를 열었고, 하청 노동자들은 당당하게 대오를 형성해 참여했다. 원‧하청 공동투쟁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4월 25일에도 연좌 농성과 점심시간 오토바이 경적 시위를 이어갔고, 이날은 하청 노동자들로만 100여 대 오토바이 행진이 이뤄졌다. 주요 식당 건물 앞마다 잠시 서서 동참을 호소했고, 그렇게 중간중간 하청 노동자들이 합류하면서 오토바이 대오는 출발 때보다 마칠 때 2배가량 늘어나 있었다. 이렇듯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 상승하는 국면에서 25일과 26일 원청이 해결방안을 제시하면서, 2개 업체 임금체불 문제는 모두 정리된다. 투쟁에 나섰던 하청 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을 해결하고, 업체 폐업에 따른 고용과 근속의 승계까지 모두 보장받았다. 모두가 예의주시했던 투쟁에서 집단적인 승리의 경험이 하청 노동자들에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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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3일,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채용박람회가 열리자, 임금체불에 시달리던 하청 노동자들이 달려가 '체불박람회, 폐업박람회 중단하라'며 항의행동을 벌였다. [사진: 필자 제공]



구조적인 하청 임금체불, 대우조선까지 망가뜨릴 건가


현대중공업 지주회사는 2018년 순이익 1,306억 원의 두 배(207.13%)가 넘는 2,705억 원을 현금배당으로 돌렸다. 이에 최대 주주인 재벌총수 정몽준과 아들 정기선 일가가 챙긴 배당금만 836억 원에 달한다. 작년에 벌어들인 돈의 두 배를 뿌린 어이없는 고배당은 재벌세습 증여 자금과 세금 등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심각한 대규모 임금체불이 계속되는 원인은 저가 수주의 손해를 하청에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돈이 안 되는’ VLOC(초대형 광석 운반선), VLCC(초대형 원유 운반선) 선종을 현대중공업 1‧2‧8‧9도크(건조 1‧5부)에서 내년까지 계속 작업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저가 수주 물량은 정기선 부사장과 가삼현 사장이 2017년 말에 ‘어렵게 수주했다’며 언론에 치적으로 자랑했던 것이다. 재벌총수 일가 고액배당과 저가 수주 손해 떠넘기기가 수천 명 하청 노동자 임금체불의 원인이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을 인수할 자격이 없다. 재벌승계 구조조정으로 직영과 하청 구성원들의 삶을 철저하게 파탄내놓고, 대체 무슨 염치로 대우조선을 인수‧합병한다는 말인가! 현대중공업 재벌이 대우조선을 인수한다면, 불법 임금체불은 물론이고 기성금으로 하청 노동자들을 야만적으로 착취하고 수탈하는 구조를 그대로 확대시킬 것이다. 대우조선을 얼마나 망가뜨릴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임금체불은 5월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합병을 당장 그만두고,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체불부터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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