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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너의 잘못이 아니다”


김미숙┃故 김용균 어머니



앞길 창창한 청년 노동자의 목숨이 기업의 이윤 때문에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있습니다. 안전하지 않아서 한해 2,400명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대형 참사입니다. 건설업, 조선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일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생명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버립니다. 자본가들이 죽였고, 그것에 협조한 정치인들이 죽였고, 그것을 알고도 방관한 정부 기관들이 죽였습니다.



아들 용균이가 죽기 전에는 이런 일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며 숨 가쁘게 달려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달리다가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넘어져 버렸습니다. 기업을 위해 사람 죽는 게 당연시되고, 안전하지 않아서 죽은 사람들을 그 개인 실수로 몰아가니, 어느 순간부터 무감각해졌습니다. 내 일이 아니니까, 남아있는 가족들 힘들겠다, 안됐다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자고 일어나니 그 청천벽력이 나에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고, 처참한 현실이 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아들 장례를 치르기까지 두 달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알게 됐고, 현실을 바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은 과로사, 산재 사망이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입니다.


용균이가 일하던 태안화력에 갔을 때, 70년대 탄광만도 못한 현실에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거기서 일하던 동료들에게 당장 나가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은, 이제는 죽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달려온 시간입니다. 아직 한참 갈 길이 멉니다.



지난 5월 13일에는 충남 공주우체국에서 일하던 청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곧바로 달려갔습니다. 나와 똑같은 아픔을 겪은 엄마가 있을 테니까요. 누군가의 죽음이 저에게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으니까요.


전날 밤 10시까지 일하다 들어온 아들이 다음 날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일하던 자리에서 어머니가 절규하셨습니다. 이 아픔을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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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주노총]



우체국에서 과로사는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330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기가 막히고 안타까웠습니다.


노동 강도가 너무 높아서 최근 두 달 동안에만 5명이 과로사로 죽었답니다. 그런데 인력충원은 없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죽는다는 말입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자본주의 논리대로만, 오직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의 안전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조차 무시하고 짓밟고 있습니다.


마땅히 책임져야 할 것들을 책임지지 않고, 과로사로 인한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 사람들 어떻게 할 겁니까? 그들을 죽인 기업주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끼어 목숨을 잃은 김군, 내 아들 용균이, 경기도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죽은 김태규, 우체국에서 과로로 죽은 누군가의 아들까지… 그 아이들은 모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용균이 방에는 취업 준비 책이 있었고, 휴대폰 메모장에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남아있었습니다. 공주우체국에서 죽은 청년의 책상에도 정규직 입사지원서가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현실은 컵라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용균이 가방에도, 구의역 김군의 가방에도 컵라면이 들어있었습니다. 지난 3주기 추모제, 누군가 구의역 9-4 스크린도어 앞에 샌드위치와 함께 “이제 천천히 먹어”라고 남겼더라고요. 눈물이 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에게 안전한 일터, 차별 없는 일터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생명과 안전을 공공기관 평가에서 제1의 기준으로 만들겠다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지금 현실에서 어떻게 책임지고 계신지 묻고 싶습니다.


더 이상 죽지 않도록, 영국처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 기업이 잘못하면 벌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더 이상 기업들이 안전문제를 무시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다시는 누군가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 다시는 저의 아픔을 다른 누군가 겪지 않는 세상, 그리고 다시는, 이 청년들의 삶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아름답다 말하기도 아까울 만큼 찬란했던 어느 순간에 살고 있었을 그들에게, 일하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얘들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 우리가 잘못해서 막지 못했어.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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