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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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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6.04 18:46

배추나비고치벌



봄이 다 가고 나서야 텃밭에 잎채소 모종을 심었다. 몇 종류의 잎채소 가운데 벌레가 많이 꼬이는 겨자채는 게으른 농부에겐 감당이 되지 않아서 심지 않았다. 이웃 텃밭 열무는 벌레에 다 뜯겨서 잎이 너덜너덜하다. 어린싹일 땐 벼룩잎벌레가 꼬여서 잎에 구멍을 숭숭 났을 테고 조금 자란 뒤엔 좁은가슴잎벌레 애벌레, 무잎벌 애벌레 그리고 배추벌레라 불리는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잎을 뜯어 먹었을 게다.


겨자채, 열무나 배추, 갓, 겨자는 다 십자화과 식물이다. 벌레들은 왜 이렇게 십자화과 식물을 좋아할까? 십자화과 식물은 천적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톡 쏘는 매운맛이 나는 방어물질을 내뿜는다. 그런데 많은 벌레가 이 방어물질에 적응해서 이젠 오히려 이 냄새에 이끌려 십자화과 식물에 꼬인다.


초여름 텃밭엔 배추를 심지 않아서 인지 배추벌레는 밭작물보다 밭 둘레 십자화과 잡초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작물처럼 잎이 크지 않은 개갓냉이는 배추벌레 한 마리를 키우기에도 잎이 모자란다. 이렇게 잡초를 죄다 뜯어 먹는 배추벌레는 농사에 이로울 것 같지만 금세 상황이 바뀐다. 잡초를 먹고 자란 배추벌레는 날개돋이를 하고 배추흰나비가 되어 여름 끝자락 밭으로 날아와 김장배추에 알을 낳는다. 이 알을 까고 나온 배추벌레는 가을 김장배추에 큰 피해를 줄 것이다.


개갓냉이 잎에 이상한 배추벌레가 붙어있다. 마치 알을 품은 듯 배추벌레 배 밑에 작은 고치가 그득하다. 기생벌에 당한 배추벌레다. 고치 속에서는 배추나비고치벌이 나올 것이다. 배추나비고치벌은 2mm밖에 되지 않는 작은 기생벌이다. 기생벌은 어떻게 배추벌레를 찾아낼까? 이 기생벌은 배추벌레가 잎을 갉아먹을 때 침과 식물의 즙이 섞여서 나는 냄새를 맡고 배추벌레를 찾아낸다. 배추나비고치벌은 먼저 배추벌레를 마비시켜 꼼짝 못 하게 만들고 배추벌레 몸속에 산란관을 찔러 넣어 알을 낳는다. 배추벌레 몸속에서 알을 까고 나온 배추나비고치벌 애벌레는 배추벌레 속살을 파먹으면서 자란다. 몸속을 파먹어도 배추벌레는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다. 다 자란 배추나비고치벌 애벌레는 배추벌레 몸을 뚫고 밖으로 나와서 바로 고치를 튼다. 속을 다 파 먹혀서 쭈글쭈글해진 저 배추벌레는 아직 살아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배추흰나비가 되지 못하고 애벌레로 죽어갈 것이다.


배추 농사에서 배추나비고치벌은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짧게 보면 오히려 더 피해를 줄 수 있다. 기생벌에 기생당한 배추벌레는 배나 더 게걸스럽게 배추를 먹어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배추벌레는 배추흰나비로 자리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길게 보면 배추흰나비의 수가 줄어 배추 농사에 그만큼 도움이 될 수 있다. 배추흰나비에 기생하는 기생벌은 여럿이다. 애벌레인 배추벌레에 기생하는 배추나비고치벌과 달리 번데기에 기생하는 배추벌레살이금좀벌이 있고 알에 기생하는 알벌이 있다. 알에 기생하는 알벌은 티끌처럼 작아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작은 기생벌은 밭에서 살아 있는 살충제 역할을 해서 배추벌레의 수를 조정한다.


“(기생벌은) 인간과 다른 포유류가 진화하기 훨씬 전부터 식물을 먹고 사는 곤충의 밀도를 조절해 왔다. 포유류라는 생물형의 진화가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그렇게 해서 변함없이 밀도가 유지된 초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곤충의 행성/사계절/하워드 E. 에번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기생벌과 같은 천적을 이용해서 생물적 방제를 하는 친환경 농사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몇몇 천적만을 가지고 생물적 방제를 하는 것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갈수록 인위적으로 바뀌는 농업은 생물적 방제를 점점 더 어렵게 한다. 여전히 천적에 대해서 아주 피상적인 것밖에 알지 못하며 해충과 천적의 관계에 대해서도 또 해충과 천적이 다른 생물구성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해충이나 천적을 떼어서 보지 않고 전체 생태계에서 생각해보면 해충이란 따로 있을 수가 없다. 기생벌은 해충 방제보다는 오랜 세월 기생벌이 해왔듯 식물을 먹는 곤충의 밀도를 조절하는 관점에서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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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그림 강우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