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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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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 정규직’, 

오래된 거짓말


이주용┃기관지위원장



지난 7월 9일 국무회의에서 국무총리 이낙연이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입을 열었다. 6월 30일,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로공사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이낙연은 “불법적인 방법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며 노동자들이 범죄자인 것처럼 매도하는 한편 투쟁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진짜 불법행위를 저지른 범죄자는 바로 정부와 도로공사다.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1‧2심 법원에서 이미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 3심만 앞두고 있는바, 도로공사는 여태껏 마땅히 직접고용해야 했던 노동자들을 용역업체를 끼워 비정규직으로 부려 먹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정부와 도로공사가 그간 저지른 불법행위를 시정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1,500명 대량해고였다.


정부와 도로공사는 ‘수납업무를 전담하는 자회사(“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만들었으니, 도로공사 직접고용을 요구하지 말고 자회사로 가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자회사를 거부했으니, 스스로 해고를 선택한 것’이라고 적반하장으로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이 ‘자회사’가 결국 그동안의 용역업체들을 하나로 모은 것에 불과한 껍데기 회사라는 것을.



‘자회사’와 ‘직접고용’은 양립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자회사 직접고용’이라는 희한한 표현이 생겼다. 이번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에 대해서도 정부는 ‘자회사를 거부한 것은 직접고용을 거부한 것’이라며 자회사와 직접고용을 같은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형용모순이다. ‘자회사’ 자체가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억지로 만든 장치이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으니 뭔가 액션은 취해야 하는데, 진짜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비용이 많이 드니 아예 별도 회사를 만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아놓는 것이다.


사실 표현만 다를 뿐, 그간 제조업을 비롯한 민간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면서 ‘너희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하청업체 정규직’이라고 강변했던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이런 논리라면 이 나라에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회사든 하청이든 용역업체든,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는 어쨌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회사는 엄연히 원청과 구별되는 별개의 회사이며, 바로 이 점에서 자회사 전환은 정규직화도, 직접고용도 될 수 없다. 즉, 자회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원청은 이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별도의 차별적인 임금과 노동조건을 강제할 수 있다. 정부가 한사코 자회사를 고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싸움


애초에 문재인 정부는 2년 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때부터 철저히 차별적이고 위계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 어떤 업무는 직접고용하고, 어떤 업무는 자회사로 전환하며, 어떤 업무는 기존 비정규직 고용 형태를 유지하게 한 것이다. ‘생명안전업무’로 분류된다면 직접고용하되, 기간제 교사는 아예 정규직 전환에서 배제하고, 파견‧용역업무는 자회사로 전환한다는 식이었다. 상시‧지속 업무는 성격과 관계없이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원칙은 사라졌다. 가령 이 기준대로라면, 지금까지 파견‧용역으로 점철됐던 청소 업무는 직접고용 정규직이 될 수 없다. 정부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자회사로 만족하라’고 한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 없이는 단 며칠 만에 건물이 쓰레기장으로 변하는데, 대체 왜 청소노동자들은 직접고용 정규직이 되어선 안 된단 말인가?


‘자회사에 만족해야 할’ 노동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정규직 자격이 없는’, 혹은 ‘비정규직이어도 괜찮은’ 노동은 없다. 그렇기에,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는 싸움은 자본과 권력이 노동을 갈라치기하며 만들어놓은 노동자 내부의 위계에 맞선 싸움의 첫걸음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이 싸움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전면에 서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1일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노동자 평균임금은 남성노동자 대비 68.8%에 머무른다. 반면 여성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41.5%에 달해, 남성노동자 비정규직 비율(26.3%)을 크게 상회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30대에서 결혼‧임신‧출산 등의 영향으로 고용률이 하락했다가 40대부터 다시 상승하는데, 경력단절 이후 여성들의 일자리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짐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 투쟁을 벌이고 있는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을 비롯해 병원 청소노동자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다수가 중장년 여성이다.


여성-간접고용-비정규직. 그야말로 한국 사회 노동의 위계에서 가장 말단에 위치한, 그들 스스로 ‘인간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서고 있다. 천대받던 사람들이 권리를 주장하면, ‘어디서 감히 같은 대우를 요구하느냐’는 반발도 거셀 것이다. 그래서 이 투쟁은 한 사업장의 정규직화로 끝날 수 없는 싸움이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노동의 위계적 구조를 허물어뜨리는 것, 지금 이 노동자들의 싸움에 함께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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