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변혁정치

> 변혁정치

생산을 책임지는 하청노동자, 

이제 현장의 주인으로!


전인표┃울산



90_8.jpg




1. 하청노동자 임금 25% 인상

2. 정규직과 동일한 학자금, 명절귀향비, 휴가비, 성과금 지급

3. 정규직과 동일한 유급 휴가 및 휴일 실시

4. 불법 무급휴업 중단 및 휴업수당 지급

5. 일당제 8시간 1공수, 퇴직금/연차 적용

6. 연장/야간/휴일 가산수당 똑바로 지급


오는 7월 15일~17일, 1973년 12월 현대중공업 창사 이래 사상 최초로 하청노동자들이 위 6개 핵심 요구를 제기하며 총투표를 실시한다. 2003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을 창립하고 16년 만이다. 2004년 2월 박일수 열사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며 분신한 지 15년, 2012년 이운남 열사가 바로 그 박일수 열사 투쟁 당시 지프크레인 점거 투쟁 중 현대중공업 구사대에 의해 무자비한 폭력 진압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7년 만에, 하청노동자들이 주인 선언을 하고 나선 역사적인 순간이다.



어용 밑에서 숨죽인 12년, 마침내 폭발한 하청노동자


2001년부터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조합이 어용화되면서, 이후 12년간 정규직 노동자는 물론이고 하청노동자 역시 불만을 드러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오히려 사측의 구사대 역할을 도맡을 정도였다. 2003년 사내하청지회를 설립할 당시, 주 1회 배포하는 노동조합 소식지도 정규직 어용 집행부에게 맞아가며 몰래 배포해야 했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12년 어용의 긴 터널 끝에, 지난 2013년 민주파 집행부가 당선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다. 그 1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현대중공업은 이미 하청노동자가 정규직의 3배 가까운 규모로 늘어나 생산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정규직 노동자 6천여 명이 파업에 나서도 생산에 차질을 줄 수 있는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없었다.


하지만 민주파 집행부가 당선한 이후에도 하청노동자들의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교섭에 하청노동자에 대한 요구안이 나오기도 했지만, 민주파 집행부 5년간 하청노동자와 관련한 교섭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결국 2019년 4월부터 하청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다. 고질적인 업체폐업과 임금체불을 경험한 하청노동자들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원청 사무실 로비를 점거하고, 자체적으로 오토바이 경적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하청 채용박람회를 점거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산발적인 투쟁으로 현장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렵게 타오른 투쟁의 불씨가 이렇게 꺼지나 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바로 현대중공업 법인 분할 저지 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전에 집회로만 끝나던 투쟁과 달리, 조합원들은 현장으로 들어가 전기와 가스를 끊고 생산을 멈추는 투쟁을 전개했다. 한때 500명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던 파업 대오는 점차 늘어나 6~7,000명 규모로 불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깨닫고 있다. 정규직보다 배 이상 많은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지 않고는 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이에 현대중공업지부는 ‘하청 요구안 타결 없이 원청 교섭 타결은 없다’고 선언하며, 사상 첫 원하청 공동 총투표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90_9.jpg




엑스트라에서 주인공으로


이번 하청노동자 총투표는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현대중공업 모든 하청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이미 하청노동자들은 “하청다함께”라는 단체카톡방을 만들어 폭넓게 서로 현장상황을 공유하며 조직을 넓혀가고 있었다. 아직 부족한 숫자이긴 하지만, 단체로 20여 명이 모이기도 힘들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무엇보다 모임과 집회에 참여하는 하청노동자들의 눈빛이 살아 있고, 참가자 수도 늘고 있다.


이번 총투표 요구안에 대해 혹자는 ‘너무 무리한 요구 아니냐’며 비아냥대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생산의 80%를 책임지고 있는 게 하청노동자들이다.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며, 오히려 아직 부족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하청노동자들은 언제나 엑스트라 신세였다. 이제는 하청노동자가 주인공으로 나서야 할 때다. 이번 하청노동자 6대 요구안 총투표는 하청노동자 인간선언을 넘어 그간 받아왔던 탄압과 착취의 굴레를 끊고, 우리가 현장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첫걸음이다.


나서자, 하청노동자!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