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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8.01 15:11

우리벼메뚜기



장맛비가 지나간 텃밭 둘레에는 맹꽁이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맹맹 꽁꽁 맹꽁맹꽁. 맹꽁이는 장마철 때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며칠 동안 이렇게 시끌벅적하다가도 한순간 뚝 소리가 사라진다. 장맛비를 흠뻑 맞고 풀이 쑥쑥 올라왔다. 강아지풀, 바랭이, 쇠비름, 개비름, 환삼덩굴, 고마리. 돌보지 않은 텃밭은 그야말로 풀밭으로 바뀌었다. 맹꽁이 소리를 쫓아가서 풀을 헤집어 보지만 맹꽁이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메뚜기가 툭툭 튀어 달아났다. 우리벼메뚜기다.


우리벼메뚜기라는 이름이 낯설다. 우리벼메뚜기는 예전에 벼메뚜기라고 불렀다. 벼메뚜기, 우리벼메뚜기, 중국벼메뚜기, 만주벼메뚜기 따위 여러 이름으로 불렀는데, 이게 같은 종인지 다른 종인지 제대로 분류가 되지 않다가 얼마 전 우리벼메뚜기 하나로 정리되었다. 우리벼메뚜기는 다른 종으로 보일 만큼 개체마다 변이가 크다. 몸 색깔이 갈색에서 초록색까지 다양하고 가을에 붉은색을 띄는 것도 있다. 날개는 대개 배보다 조금 긴데, 배를 덮지 못하는 짧은 날개를 가진 개체도 있다.


우리벼메뚜기는 논에서 벼를 갉아 먹는 해충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벼메뚜기는 땅속에서 알로 겨울을 나고 5월 말에서 6월 초에 알을 까고 땅 위로 올라온다. 애벌레 때는 논밭 둘레 벼과 식물 잡초를 먹으며 자라다 논에 벼가 자라면 논으로 옮겨가 벼를 먹는다. 벼잎뿐 아니라 줄기까지 갉아 먹어 논농사에 큰 피해를 입혔다. 한동안 농약을 많이 쳐서 논에서 우리벼메뚜기 보기가 힘들어졌는데, 사라졌던 우리벼메뚜기는 농약을 덜 쓰기도 하고 메뚜기도 농약에 내성이 생겼는지 다시 그 수가 늘고 있다.


풀밭에 툭툭 튀는 메뚜기를 보면 그걸 잡겠다고 몸이 먼저 달려 나가게 된다. 여름 더위도 잊고 이리저리 풀밭을 뛰어다니며 메뚜기를 잡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버린다. 군것질거리가 적던 시절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아 구워 먹고 어른들도 메뚜기를 볶아서 술안주로 먹었다. 나는 도시에서 자란 탓에 그런 추억이 없다. 그게 못내 아쉬워서 아이들에겐 메뚜기를 잡아 볶아먹는 추억을 만들어주려 했지만 끝내 하지 못하고 말았다.


우리벼메뚜기는 아이들 군것질거리가 아니라 미래의 대안 식량으로 돌아왔다. 작은 가축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에는 여섯 종의 곤충이 식용곤충으로 등록되어 있다. 우리벼메뚜기는 누에나방 애벌레, 번데기와 함께 가장 먼저 식용곤충으로 등록되었다. 두 종 다 오래전부터 먹어왔던 곤충이라 거부감이 적기 때문에 먼저 등록되었을 게다. 2013년 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 곤충을 작은 가축으로 부르고 미래 식량난을 해결해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국내에서도 2014년 우리벼메뚜기와 누에나방 애벌레, 번데기가 식용곤충으로 등록된 것이다.


곤충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불포화지방산, 필수아미노산, 무기질 함량이 높은 질 좋은 먹을거리다. 가축에 견주어 사육면적이 적게 든다. 물이나 사료도 훨씬 적게 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다. 가축 분뇨로 인한 환경오염도 적다. 이렇게 비용은 적게 들고 친환경적이지만 곤충이 미래 식량으로 자리 잡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게다. 곤충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곤충에 대한 혐오는 여전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미 곤충을 많이 먹고 있다. 대표적인 게 붉은색 색소로 쓰이는 코치닐 색소다. 딸기 우유의 붉은 색깔을 내는 데 쓰이는 코치닐 색소는 깍지벌레에서 얻은 것이다. 누에똥이 녹차 아이스크림의 초록빛을 내는 데 쓰이기도 한다. 곤충을 기르는 농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기술도 개발돼서 1년에 한 번 발생하는 우리벼메뚜기를 한 해 내내 4회 이상 키울 수 있게 됐다.


날개가 조금밖에 돋지 않은 어린 우리벼메뚜기가 강아지풀에 붙어있다. 저 우리벼메뚜기는 여름과 가을 내내 텃밭에서 살아갈 것이다. 우리벼메뚜기는 논농사를 짓지 않는 텃밭에서는 벼과 식물 잡초인 강아지풀이나 바랭이 따위를 먹으니 오히려 이로운 곤충이다. 한 세대 뒤에는 우리벼메뚜기가 소나 닭만큼 가축으로 대접받게 될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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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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