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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투쟁을 ‘산수’로 대체할 수는 없다


이주용┃기관지위원장



올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국면은 ‘비교적’ 조용히 흘러갔다.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을 중심으로 경총과 재벌을 규탄하는 순회투쟁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문재인 정부 초기 ‘최저임금 1만 원’을 대대적으로 요구하면서 여러 캠페인과 투쟁을 벌였던 것과 비교하면 규모나 목소리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최저임금 결정 시기를 전후로 탄력근로제를 비롯한 노동개악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노총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상대적으로 최저임금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지 못한 상황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운동진영에서 스스로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것 아닐까.


‘만 원의 행복’이라도 꿈꿔보려던 최저임금은 1년이 채 되지 않아 ‘만악의 근원’으로 낙인찍혔다. 이제 심지어는 일본 수출규제 문제에 대해서도 ‘최저임금 때문에 더 어렵다’며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하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모든 문제에 최저임금을 끌어들인다. 최저임금을 향한 자본의 공격이 최고조에 이르고 보수언론이 그 지칠 줄 모르는 스피커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경제지표 악화는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주저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더욱 필요하다. 이 체제가 허용하는 범위 내로 우리의 삶과 요구를 국한하고자 한다면,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폐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 몇 년간의 최저임금 투쟁이야말로 이 체제가 수백만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만 원의 행복’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비루한 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격전장을 회피하면서 ‘자본주의를 극복하자’고 말하는 것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누구의 것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변혁정치>는 지난 87호에서 사회진보연대 한지원 연구원(이하 직책 생략)의 ‘최저임금 인상 무용론’을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변혁정치> 87호 특집 “최저임금, 만악의 근원?” 참조). 이에 대해 그는 다시 ‘비판에 답’한다며 반박글을 발표했다. 한지원은 ‘최저임금 인상은 시장과 자본의 반격을 이겨낼 수 없으며, 저임금과 임금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공공부문에서 임금을 낮춰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이른바 연대임금-연대고용)’는 논지를 반복했다. 한편, 내가 87호 기사에서 ‘최저임금 투쟁이 더 나아가기 위한 방향’으로 제기했던 국가 책임 하의 공공 일자리·공영화 요구에 대해서는 “좌파진영의 오랜 관성”이라며 ‘공공이 책임을 맡게 될 경우 재정위기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에 대해서도 “해법이 못 된다”며 “사내유보금 상당 부분은 유형자산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기업 밖으로 이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나씩 살펴보자. 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제 폐업하거나 해고당하는 노동자가 발생한다면, 이는 최저임금 탓이 아니라 경쟁과 패배자를 양산하는 자본주의 때문이므로 국가가 책임지고 공공 일자리를 보장하거나 해당 산업이 사회적으로 필요할 경우 공영화를 통해 노동자들의 고용도 보장하도록 요구하자고 했다. 물론 여기에는 재정이 필요하다. 누구에게 거둬들일 것인가? 정부가 기업들에게 때마다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깎아줄 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윤을 거둬들여 공공 일자리를 확대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윤을 침해하지 않겠다면야 재정적자를 걱정해야겠지만, 진정 저임금과 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면 이 착취구조의 최상단에서 천문학적 이윤을 축적한 자본을 겨눠야 한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재벌 사내유보금 문제와 연결된다. 한지원은 사내유보금이 ‘상당 부분 유형자산’이라고 했지만,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2017년 기준) 자료를 보면 대기업 자산 가운데 현금화 가능한 당좌자산(25.4%)과 주로 금융상품·투자부동산으로 구성된 투자자산(22.6%)만 합해도 48%에 달하는 반면, 토지·기계·설비 등 실물자산에 속하는 유형자산은 34%였다. 1990년 이래 지난 30년간 유형자산 비중은 계속 줄고, 금융자산은 늘어났다. 사내유보금 환수는 기계 설비를 뜯어서 팔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큰 규모로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이윤을 환수한다면 얼마든지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지를 대폭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의 이윤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저임금과 실업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한지원은 『자본론』 가운데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을 다룬 곳에서 맑스가 상대적 과잉인구(실업자) 문제를 강조한 것을 두고 ‘취업자와 실업자가 경쟁하는 이 메커니즘을 극복하려면 연대임금-연대고용이 필수적’이라는 논지를 펴지만, 정작 핵심은 누락하고 있다. 바로 거기에서 맑스는 ‘한쪽에서 부의 축적, 다른 한쪽에서 빈곤의 축적’이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임을 드러낸다. 무엇을 겨눠야 할지는 명확하다. 적어도 맑스는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라’는 식의 제안을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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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계급투쟁, 맑스


이윤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저임금과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 한지원의 논지에는 계급투쟁이 공백으로 남는 대신 그 자리를 ‘산수’가 메운다.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한계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가 아니라, ‘임금을 어느 정도 깎으면 일자리가 어느 정도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계산으로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숱한 노동자 투쟁에서 드러나듯, 자본은 ‘하나를 양보한다고 하나를 내주지’ 않는다.


가령, 한지원은 자신을 비판한 노동자연대와 변혁당이 “임금 수준이 오로지 투쟁의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전제”한다며 자본의 동역학 속에 임금인상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임금투쟁의 덧없음’을 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에 재반박한 노동자연대 강동훈 기자가 지적했듯, 한지원을 비판한 글에서 필자들은 ‘오로지’ 투쟁의 강도에 따라 임금수준이 결정된다고 한 적도 없고 자본의 동역학을 부정한 적도 없다. 나 역시 “노동자의 생존을 위한 그 모든 것들은 자본의 반격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고 썼다. 문제는, 그 반격을 맞닥뜨렸을 때 회피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한지원은 맑스를 인용해 임금투쟁의 한계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지만, 오히려 맑스는 「임금, 가격, 이윤」의 마지막 장에서 임금과 이윤은 자본과 노동 간의 투쟁에 의해 변동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윤의 최저한을 규정하는 어떤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임금의 최저한을 결정할 수 있어도, 그 최대한을 결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윤의 실제 수준은 자본과 노동간의 부단한 투쟁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문제는 결국 투쟁하는 쌍방의 힘의 상호 관계로 귀결된다.”(강조는 인용자) 이제 맑스를 개전의 정이 없는 ‘의지주의자’로 불러야 하는 걸까?


한지원이 지적했듯 임금투쟁은 ‘결과’에 대한 투쟁이지, 그 자체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투쟁은 아니다. 그가 임금투쟁 무용론을 외치는 것도, 말로는 일단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담한 운동’으로 전환하기 위함이다. 맑스 역시 임금 인상만으로는 부족하며, 임금제도 자체의 철폐를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가 임금노동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바로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와 통제 등 일체의 권리를 박탈당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자본주의 하에서 제한적이지만) 여기에 균열을 내기 위한 공영화·국유화 요구에 대해서도 한지원은 ‘재정 위기’를 거론하며 반대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담성’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인가?


아마 노동자들이 스스로 임금을 깎으면서 일자리를 늘리자고 자본에게 요구하는 것을 ‘대담한 운동’으로 여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부분의 손익계산, 당장의 이해타산’에 매몰되지 않고 ‘계급적 대의’를 향한 운동이라고 칭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자본이 축적하고 있는 천문학적인 이윤이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 노동자 스스로 임금을 깎자는 주장을 ‘계급적’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물론 나는 지난 기사에서도 운동이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는 저임금과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썼다. 최저임금 투쟁이 진정 계급투쟁으로,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운동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조직 노동운동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들과 함께 △중소 사업장 노조할 권리 쟁취, △재벌·대기업 이윤 환수,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확대 등을 요구하는 연대투쟁을 구축해야 한다고. 최저임금을 두고 자본이 계급투쟁을 벌이는 지금, ‘어떤 계산이냐’가 아니라 ‘어떤 투쟁이냐’에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