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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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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거’ 대중화합시다


이승철┃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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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사회주의’도 간단치 않은데, 그걸 또 ‘대중화’하자니. 

2019년 5월,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한 토론 자료가 나왔을 때 변혁당 안팎의 반응은 다양했다. 

의구·우려·불신부터, 기대·응원·환영까지 폭넓었다. 

5월부터 7월까지, 전체 당원이 참가하는 1차 토론을 진행했다. 

이 석 달은 논의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잘 보이게끔 유리 상자를 닦는 과정이었다. 

이제 8월 정치캠프 이후는, 투명해진 상자 안에 놓인 쟁점을 두고 뜻을 모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 기사에서는 1차 당원 토론과정에서 상자 안에 던져진 ‘사회주의 대중화’의 배경과 실체, 전망 등을 담는다. 

이 토론은 아직 진행 중이다.



<왜why>


자유주의의 실패, 다시 부상하는 자본주의 해법


‘소득주도성장’이 ‘혁신성장’으로 대체되며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데에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은 이 실패 이후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재벌 위주 성장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그러하다. 하지만 촛불집회에 적극 동참하고, 그 결과 들어선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많은 대중은, 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를 ‘자유주의 세력의 실패’로 연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촛불 이후의 문재인도 하지 못했으므로,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로 해석한다. ‘사회주의 대안’이 현실적 선택지로 자리 잡지 못하면서, 양당정치 구조와 진영논리 속에 ‘그래도 한국당보다는 민주당’이라는 정서가 정치를 지배한다.


2022년 대선을 목표로 사회주의 대중화를 추진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정세에 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상징되는 자유주의 해법의 한계가 드러난 지금, 그 자리를 다시 ‘자본주도성장’이 대체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이 전환기에 사회주의가 정치적 권리를 획득해야 한다.


촛불과 문재인의 등장, 그리고 자유주의 정책의 실패 이후 치러질 첫 대선이 다가오는 오늘날은 사회주의를 전면화해야 할 핵심적 시기다. 자유주의가 물러난 자리에 사회주의 대안이 자리 잡아야 하며, 대중의 급진적 상상력을 북돋아야 한다. ‘보수주의-자유주의’ 구도가 아닌 ‘자본주의-사회주의’ 구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정치의 이념 재편, 사회주의를 대안적 선택지로


민주노동당 붕괴 이후 진보정당 운동은 각각의 이념을 더욱 분명히 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어떤 당은 ‘헌법 안의 진보’로 압축되는 사민주의 노선을 분명히 했으며, 또 어떤 당은 ‘자주-민주-통일’을 중심으로 한 민족민주운동 세력의 결집을 택했다. 어느 노선이 옳고 그르냐를 가르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진보정당 재편’을 넘어, 한국 진보정당 운동이 노선과 입장에 따라 편재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처럼 한국 진보정당 운동이 <사민주의-민족주의-사회주의>로 삼분 돼가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정당은 그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위기가 심화하고 지속할수록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적 대안’과 ‘사회주의적 대안’의 격돌에서, 한국의 노동자․민중은 사회주의적 대안의 선택지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이 정치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



<무엇을what>


사회주의적 가치의 실현


사회주의는 노동-사회-복지-인권-교육-주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본에 맞선 대안을 제출했다. 그중 일부 내용은 이미 투쟁의 결과로 우리 사회에 적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사회주의의 진전으로 인식되진 않는다. 자본주의 스스로가 생존을 위해 수정을 받아들인 측면도 있으며, 그저 기존 정부 정책의 하나로 기록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이름을 되찾는 과정 자체가 사회주의 대중화의 하나일 수 있다. 대중의 삶과 밀착된 의제에 대해서 ‘사회주의가 제시하고 있는 이것이 대안’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해야 한다. 대중이 자신의 삶에서 사회주의적 가치를 대안으로 선택하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사회주의적 가치의 실현이다.



사회주의의 대안세력화


하지만 ‘사회주의의 내용’이 우리 사회에 적용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칫 극대화된 일부 모순만을 은폐하는 방식의 수정자본주의-사민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저들이 인정하는 만큼만의 가치 실현’은 온전한 변혁일 수 없으며, 자본주의 모순과 착취를 지속-확대하는 체제를 바꾸지도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주의의 대안세력화’ 역시 매우 주요한 문제다. 즉 사회주의가 다수 대중의 정치적 지향(선택)에서 유력한 대안 중 하나가 돼야 한다. 그 시작은 ‘사회주의의 정치적 시민권 획득’이며, 그 과정은 ‘사회주의 세력의 규모 있는 규합과 영향력 확대’다. ‘거리에서 함께 외치지만, 현실정치에는 관심 없는 운동세력’이 아닌, ‘거리의 구호가 국가의 근간이 되도록 하는 현실 사회주의 정치세력’으로 변화해야 한다. 거리의 정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정치를 현실 정치로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how>


사회주의 대안을 제시하는 전면적인 정치 선동


2016년 광장투쟁에는 다양한 지향과 목소리가 모여들었고, 그중에는 불안정노동자, 여성, 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이 차별받고 억눌린 자들도 함께 있었다. 이들은 광장투쟁을 통해 그간 켜켜이 쌓인 차별과 배제를 걷어내고 싶었다.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고자 했다. 그해 겨울 광장에서 구호로 울려 퍼진 ‘내 삶을 바꾸는’ 다양한 요구는 이런 선언이었다. 그 요구를 정치적으로 정식화하는 것, 즉 우리 사회의 대안인 사회주의 전망으로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대중적인 정치 선동의 핵심이다. 그것은 문구를 다듬고 잘 표현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의 핵심적 문제점을 찾아내 규명하고 △그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을 제출하며 △이것이 대중의 목소리가 될 수 있도록 말과 행동을 조직하는 과정이다.



공공연하고 대중적인 사회주의 정당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다수 대중의 동의와 지지는 필수적이다. 사회 곳곳에서 사회주의적 가치와 이념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당원들이 있어야 한다. 투쟁으로 만든 성과는 우리 사회와 운동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것이 분명하나, 그것이 곧바로 사회주의 세력의 확대-강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오히려 광장과 거리의 정치적 성과는 사민주의-자유주의 세력의 과실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보다 자신 있게 대중적인 사회주의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주의 정당등록에 대한 부정적 태도나 모호한 입장은 오히려 대중의 심리적 문턱을 높여 사회주의 정당의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건 등록정당의 등장이야말로, 왜곡되고 금기시됐던 ‘사회주의’를 우리 사회에 복권하는 상징이다. 만일 등록 과정에서 사회주의 이념과 지향이 문제가 된다면, 오히려 사회주의 논쟁을 우리 사회에 불러일으키는 주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2022년 사회주의 대선 후보


제도정치에서 선거는 조직의 집중력을 높이고, 선전·선동을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는 시기다. 특히 광장투쟁을 등에 업고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의 실패 이후 처음 치러지는 2022년 대선은, 한국 정치를 ‘체제 내의 개혁 공방’에 머물게 할 것인지, 아니면 ‘변혁적인 체제 공방’으로 이끌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 정당은 2022년 대선을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한 유력한 시기로 설정해야 한다. 2022년 대선 전술의 목표는 ①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한 전면적인 선전·선동과 ②대중적인 사회주의 정당 체제 구축, ③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바꿔낼 수 있는 구조변혁안의 전면화다.


의제 기획으로서의 <사회주의 정치 선동>, 대중화의 토대이자 당면 목표인 <사회주의 정당 등록>, 그 구체적 경로인 <사회주의 대선후보>는 사회주의 대중화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세 가지 핵심 대답이며,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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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who>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연합


사회주의 대중화는 한국 정치를 뒤흔들 큰 기획이다. ‘오직 변혁당만이 할 수 있다’는 고집도, ‘사회주의 진영 모두가 모이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하다’는 체념도 경계해야 한다.


먼저 전체 사회주의 세력을 모으기 위한 진심 어린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대중화 운동은 그저 사회주의를 큰 목소리로 외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과 투쟁을 촘촘히 구성해야 한다. 한국 사회주의 세력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노동-비정규-사회운동 등 각자의 영역에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실천을 펼쳐내고 있지만, 오랜 기간 하나로 모이지 못한 채 각개약진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렇게 각자 제한적으로 형성한 사회주의 세력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자본이 구축하고 있는 대규모 정책-선전 카르텔에 맞서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주의 주체역량의 결집은 더욱 넓은 계단으로 오르기 위한 디딤판이다. 게다가 사회주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면서, 운동사회의 ‘사회주의 지향 세력’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또 우리 운동사회에는 특정 단체에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주의 지향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많은 활동가가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사회주의 대중화’의 대의만을 근거로 어느 한 세력에 돌연 가입토록 하는 방식은 가능하지 않다. 이들 많은 활동가에게는 계기가 필요하다. 사회주의 대중화 운동의 주체를 새롭게 형성하기 위한 연합 논의는 이런 맥락에서도 성실하게 추진해야 한다.


연합의 대상은 규모와 형태에 상관없이, 사회주의 지향을 가지고 있는 정당-현장조직-노동단체 모두에게 열려야 한다. 변혁당에게 연합의 결과는 재창당 수준의 재편일 수도 있다. △반자본주의-사회주의 전면화 △‘활동하는 당원’이라는 원칙 등을 전제로 한다면, 재창당 수준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관건적이지 않다.



‘내용과 실천’이 주체를 만든다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운동 주체의 역량을 모으는 것 못지않게, 어떤 내용과 실천을 배치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사회주의 대중화의 주체는 결국 실천을 통해 형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합 논의 역시 단순한 정치협상이 아닌 ‘실천과제’가 논의의 핵심이 돼야 한다. 서로가 상정하는 사회주의 대중화의 경로와 과제가 논의 테이블 위에 오를 때만이 힘을 모으는 것도 가능하며,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고 전진하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또 ‘내용과 실천’이 전제된 논의를 펼쳐야만, 설사 그 결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운동의 성과’로 남을 수 있다. 연합 논의는 상대가 있는 대화다. 즉 연합 논의의 결과가 실제 연합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는 사회주의 운동의 과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연합 논의가 잘 마무리되지 못했다고 해서 ‘사회주의 대중화’ 자체를 폐기해선 안 된다.



<언제when>


2022년 대선까지를 사회주의 대중화 1차 목표 시한으로


선거는 주요한 정치적 계기가 된다. △선전·선동 공간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당세 확장의 계기이자 △사회주의의 현실 정치 속 검증의 장이며 △집행역량 확대의 디딤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 대중화라는 큰 목표 아래, 2022년 대선은 반드시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 현실 정치 일정이다.


2022년 대선에서는 ‘사회주의 후보’를 출마시켜 완주한다. 이 후보는 특정 세력의 후보가 아니라, ‘모든 사회주의 세력의 후보’여야 한다. 대선 출마는 단순히 대선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 대중화와 사회주의 정당의 대안세력화를 선언하는 장이어야 한다. 아울러 선전과 조직화를 극대화할 수 있는 대선 시기를 사회주의 정당등록의 목표 시한으로 잡아야 한다.



<어디서where>


이곳 한국에서 과연 사회주의 운동이, 그것도 대중화된 운동이 가능할까. 하지만 서서히 무뎌지고 있는 한반도 분단체제와 유럽-미국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약진은 사회주의 정치 운동을 가로막았던 반공 이데올로기의 쇠락을 의미한다.


이념의 색채를 분명하게 하는 흐름은 비단 한국의 진보정당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유럽과 미국 등 각국에서도 각 정당은 좌우 지향을 더욱 분명히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는 좌우 모두가 ‘중도노선’을 벗어나 각자의 이념 방향으로 운전대를 꺾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회주의’를 공공연히 내건 민주사회주의자 그룹이 부상하고, 역으로 국가주의-인종주의를 더욱 노골적으로 주창하는 트럼프 진영이 각축한다.


이와 함께 핵을 지렛대로 하는 북미 간의 긴장이 완화되고 북미, 남북 간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면서 정치경제, 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기존의 분단체제가 균열 속에 재편되고 있다.


정치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정치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선거법과 정당법 같은 악법이 지금도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빨갱이’ 몰이는 예전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어쩌면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할 사람은 대중보다, 오히려 사회주의 활동가 스스로다. 사민주의와 민족주의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자·민중에게 ‘사회주의 정치’를 제안하고, 낡고 고루한 덧칠을 거둬낸 사회주의 운동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