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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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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경험에서 실천의 발걸음으로


서형진┃동국대 학생




출발 전에는 짜증과 걱정이 앞섰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점점 흐려지던 하늘에서는 기어코 비가 쏟아져 내렸다. 낯선 것을 어색해하는 성격 탓에 낯선 사람들과 3박 4일간 일정을 함께하는 것이 어떨지 고민이었다. 매일같이 밤을 새던 몸이 아침 일찍부터 진행되는 일정을 견딜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일, 여러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첫 모임 장소에 앉았다.


곧이어 조를 배정받고, 반성폭력 내규 교양과 더불어 조별 반성폭력 내규, 생활 내규를 작성했다. 대학 입학 이후 대부분의 외부 일정에서 진행하던 일이지만, 교양을 듣는 것 외에 직접 내규를 짜는 일은 신선했다. 이후 기조 교양을 진행하며, 순회투쟁단에 대한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기조는 비정규직 철폐, 공공부문 공영화, 기간산업 공영화 세 가지였다. 이후의 일정에서 이 세 기조와 관련한 사업장들을 순회하며 연대하는 것이 순회투쟁단의 주된 활동이었다.


3박 4일의 일정 동안 서울, 전북, 울산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업장에 찾아갔다. 서울에서는 톨게이트 동지들과의 연대를, 전북에서는 환경미화, 버스, 현대그린푸드와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동지들을, 울산에서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동지들과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그리고 현대중공업 동지들을 만났다. 짧다면 짧은 일정이었지만, 여러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현장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순회투쟁단이 설정한 세 가지 기조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일정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활동은 각 사업장에서 연대한 집회였다. 긴 투쟁에 지쳤어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 투쟁에 대한 확신으로 단결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 그 단결을 통해 작은 승리를 하나씩 거두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앞으로의 투쟁이 불투명함에서 오는 불안과 동력에 대한 불안, 승리에 대한 불안, 그리고 그 불안을 아우르는 거대한 자본과 자본가, 자본주의 국가 역시 엿볼 수 있었다. 거대한 상대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전국의 동지들에게 인간적인 존경과 감사함의 마음이 일었다.


이번 순회투쟁단은 나 개인에게 여러 경험과 고민을 던져 주었다. 처음으로 큰 집회에서 발언도 해보고, 선전전에서 선동도 해보고, 안 되는 몸을 이끌고 몸짓도 해볼 수 있었다. 학교 밖 여러 사업장의 투쟁을 경험하고 함께했던 것도,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사고와 인식의 지평을 넓힐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순회투쟁단 활동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고민이었다. 학내에서 여러 활동에 참여하며, 개인적으로 운동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기득권이 되지 못하는, 자본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민중의 하나였기에,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불합리한 질서에 순응할 것인가, 저항하고 몸부림쳐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에 따라오는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것이다.


이번 순회투쟁단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저항과 투쟁을 선택했을 때에 마주하게 될 여러 고민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투쟁에서 승리할 것인지, 무엇을 내건 투쟁이어야 하는지, 투쟁 이후에는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지, 그 투쟁 안에 선 나는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고민이 두려워서 쉽게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현실적인 조건 역시 망설임에 일조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고민을 안고 있었고 또 많은 고민을 얻었지만, 순회투쟁단을 통해 한 가지, 해결의 큰 실마리이자 변하지 않을 사실을 깨달았다. 불합리한 구조에 대한 저항과 투쟁에서 완전히 눈을 돌리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4일 동안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연대의 힘과 투쟁의 과정과 결과를 직접 보았고, 그 힘이 커진다면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는 기존 질서 내에서의 변화가 아니라, 틀을 깨는 일이 되어야 한다. 나 역시 그러한 작업에 동참할 수 있는 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무엇을 바꾸어나갈 수 있을지 모색하고 실천하려 한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 장장 하루를 꼬박 잤던 것 같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순회투쟁단에서의 일정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느꼈다. 몸이 힘든 만큼 마음이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가는 곳마다 우리를 환하게 맞아주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응원해주었던 동지들에게 너무나도 감사드린다. 연대를 위해 찾아간 곳에서 오히려 힘을 받고 온 기분이 들었다. 바쁜 일정 동안 웃음을 잃지 않고 함께했던 순회투쟁단 동지들, 어색해하는 나를 챙겨줬던 우리 조원들, 아마 가장 피곤했을 실무팀,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모두의 덕으로 정말 좋은 경험과 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지금과 같은 열정으로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