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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

자유주의 운동 이면에 담긴 

계급투쟁의 가능성


제리┃학생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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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일 송환법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홍콩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 적혀있다. 사진: 장진영.



홍콩 시위와 자유주의 운동


지난 6월 9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로 불붙은 홍콩 시위가 3개월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경찰과 시위대의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면서 연일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9월 4일 시위대의 5대 요구 중 이번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송환법 철회가 이뤄졌음에도, 나머지 요구(시위대 폭도지정 철회, 경찰 무력진압 사과, 체포자 석방,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중심으로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홍콩 시위에 대해 서구 언론은 (서구 언론을 받아쓰는 국내 언론을 포함해) ‘중국의 권위주의 독재 정권 vs 자유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홍콩 시민’이라는 구도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이는 분명 사태의 일면을 담고 있기는 하다. 일례로,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두드러지는 인사들이 자유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는 것도 사실이다. 2014년 ‘우산혁명’에서 유명해진 젊은 활동가 조슈아 웡은 최근 자유주의 잡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등 서방언론 기고를 통해 미국과 서방의 개입을 촉구했고, 독일과 미국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송환법 철회를 위시한 시위대의 5대 요구사항은 집회의 자유와 직접/보통선거권 등 주로 일반 민주주의적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홍콩 행정당국이 송환법을 철회한 이후에는 (특히 중국당국의) 무력진압에 대한 불안감이 따라 미국 의회에서 추진 중인 “홍콩 인권과 민주주의 법안” 가결 요구가 시위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부상해, 거리에서 유니언잭(영국 국기)은 물론이고 성조기까지 휘날리기도 한다.



빈부격차, 저항의 뿌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홍콩 민중의 시위를 그저 ‘서방 세계의 사주를 받은 자유주의 운동’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홍콩 민중이 분노한 기저에는 계급적 문제,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가 뿌리내리고 있다.


홍콩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단행한 이후 중국으로 가는 ‘금융 허브’ 역할을 하면서, 세계적으로도 금융 자본이 집중된 곳으로 손꼽힌다. 중국이 동남 해안권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면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도 많다. 반면 대다수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초라하다. 작년 홍콩의 1인당 GDP는 56,000달러(약 6,700만 원)였지만, 시간당 최저임금은 34.5홍콩달러(약 5천 원)에 불과했다. 전체 인구 중 빈곤층의 비율을 나타내는 빈곤율 또한 20.1%에 달한다.


홍콩의 빈부격차는 세계적으로도 최악의 수준이다. 억만장자 상위 41명이 국내총생산의 3/4을 차지하고 있고, 지난해 홍콩의 지니계수(소득분배의 불평등 수치)는 45년 만에 최고인 0.539(한국은 0.347로, 통상 0.5를 넘으면 폭동 위험 수준)까지 치솟았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문제가 심각하다. 가뜩이나 땅이 비좁은데(인구밀도가 1km2당 6,732명으로 세계 4위. 한국은 516명/km2), 중국 본토 자본마저 홍콩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며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 홍콩의 평균 집값은 123만 달러(약 14억 원)로 8년째 세계 1위다.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17.8배로, 소득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17.8년이 걸려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서울은 5.9배). 이렇게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서, ‘관차이’라고 불리는 쪽방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주의조차 없는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


이러한 빈부격차는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더욱 심해진 것이다. 이미 홍콩 반환 전부터 개혁개방을 실시하고 있던 중국이었기에, 홍콩의 자본주의는 그대로 지속했다. 거기에다 홍콩 자본은 공산당 관료체제와 결탁해 이익을 계속 얻었고, 중국 본토 자본까지 홍콩에 밀려들었다. 그 과정에서 반환 직전년도인 1996년에 0.477이었던 지니계수가 작년에는 0.539로 올랐다(불평등 심화). 이 점을 고려하면, 최근 시위에서 이따금 드러나듯 홍콩인들의 영국 식민지 시절에 대한 때아닌 향수는, 홍콩 민중이 현재의 중국 체제에서 별다른 개선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생활은 계속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 권력의 감시와 통제라도 그나마 덜했던(없었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을 회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홍콩 시위를 ‘미국과 서방의 사주를 받은 자유주의 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현상의 표면만 바라본 해석이다. 물론 현재 시위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지지 확보에 치중하는 흐름이 강하게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홍콩에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비민주적 통치와 중국 정부의 억압에 맞선 독립/민주화 투쟁의 역사도 존재한다. 그 기저에는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없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한국의 87년 투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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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거리에는 송환법을 반대하는 내용의 포스트잇과 종이를 붙인 "레논 벽"이 많이 생기고 있다. 사진: 장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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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일, 카오룽 반도와 연결된 홍콩 섬의 해저터널을 막으려는 시위대에게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시키려 하고 있다. 사진: 장진영.



홍콩과 중국의 민중에게 계급적 연대를


중국 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작금의 시위가 행정장관 직선제(벌써 구호에 나타나고 있다)와 체제 비판으로, 나아가 중국 본토의 운동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사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송환법 ‘쯤이야’ 그렇게 핵심적인 쟁점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반체제 인사에 대한 강제연행은 집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거리의 에너지가 자신감을 갖고 중국 본토의 저항운동과 결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홍콩에서는 시위가 격화하면서 노동자들의 총파업도 결합되고 있다. 비록 아직은 노동자들의 계급적 요구가 두드러지는 국면은 아니지만, 조직적 투쟁의 경험을 축적하고 불평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저항이 확산한다면, 자유주의를 넘어 급진적 변혁운동의 등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1989년 천안문 사태의 상흔으로 홍콩인들은 중국 당국의 무력진압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고, 이에 보호를 받고자 서방 국가들에게 지지와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 점을 활용해 홍콩 시위에 대처하는 이데올로기적 기조로 ‘중국의 굴기를 견제하려는 서방 세력의 내정간섭’이라는 주장을 강화한다. 이럴수록 필요한 것은 국경을 넘는 민중의 연대다. 중국 본토에서도 당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농민공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이 성장하고 있다. 중국 당국과 본토 출신자들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홍콩의 반중反中 정서가 날로 높아지고, 거꾸로 중국에서는 애국주의 흐름이 강화되고 있지만, 중국과 홍콩 모두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이 연대할 때 지배자들의 통치 전략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홍콩 당국의 송환법 철회로 홍콩 시위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주된 요구를 이뤘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자’거나 ‘더 이상의 폭력 강성 집회는 그만하자’는 주장이 세를 넓히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적 불평등이 증대하는 가운데 2047년에는 지금의 ‘일국양제(홍콩과 중국이 하나의 국가이되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시한을 다하는 만큼, 홍콩에서 갈등과 투쟁의 불씨는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이다. 자유주의와 애국주의를 넘어 홍콩의 노동자민중이 이 싸움을 계급투쟁으로 밀고 나갈 가능성은, 바로 지금 그들의 삶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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