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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총장에 

검디검은 미래를!


송준호┃기관지위원회



지난 9월 2일, 경기도 의왕시 소재 계원예술대학교 파라다이스홀에서는 제9대 총장 취임식이 열렸다. 시작부터 긴장감이 흐르던 장내는 송수근 신임 총장의 취임사가 마무리되는 순간 폭발했다. “문화예술계 BLACKLIST 실행자 송수근 계원예술대학교 총장 임명 반대한다!”, “우리도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건가요?”, “최순실 게이트로 가는 입구는 계원예대가 아니다!”라는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던 학생·문화활동가들의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송수근 신임 총장은 박근혜 정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기획조정실장, 제1차관을 거쳐 장관 직무대행까지 오른 인물로, 지난 4월 김기춘·조윤선 등 블랙리스트 2심 재판의 판결문에는 그의 행적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문체부에서는 송수근 실장을 단장으로 하고 관련 국장․과장이 참여하는 ’건전 콘텐츠 활성화 TF‘ 회의를 매주 1회 개최하면서 …(중략)… 송수근 실장은 ① 문화예술(문예기금 지원, 비엔날레 사업), ② 콘텐츠(영화기금 지원, 영화제 지원), ③ 미디어(우수도서 선정) 등 3개 분야로 나누어, 청와대에서 지적한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향으로 심사 강화(공공기관 담당자가 정부지원방침을 심사에 적용), 의결단계 재검증 기능 강화, 예술감독 선정의 건전성이 확보된 경우에만 지원검토, 문제영화 상영 영화제의 사후 통제 강화(문제영화제 차년도 지원예산 삭감), 심사위원 자격기준 강화(문제 도서를 심사과정에서 제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필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취합․정리한 후, 이를 피고인 김종덕 장관에게 보고하였다.

-<서울고등법원 김기춘, 조윤선 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에 관한 2심판결문>(2019.4.12.)중에서



이른바 ‘건전TF’라는 조직을 이끌며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검열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 어떻게 예술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될 수 있었을까? 현재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비대위” 실무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강산(융합예술과 4학년)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태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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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장 취임식에서 학생들이 규탄 문구가 적힌 손피켓으로 항의의 뜻을 밝히고 있다. 사진: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Q. 사태가 무척 긴박하게 전개된 것 같다. 추석을 앞두고 갑자기 이슈가 되고 있다.

A. 신임 총장으로 송수근 씨가 임명되었을 때는 방학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곧바로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화연대의 8월 7일 자 반대 성명서가 학생들 사이에 퍼지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개강 직후 취임식 일정이 잡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학생을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제안됐고, 8월 29일 뜻있는 학생들이 모여 정식으로 비대위를 꾸렸다. 이후 문화연대, 예술대학생 네트워크 등 문화예술계 여러 단체가 연대하고 있다.



Q. 총학생회가 비대위를 꾸리지 않았다는 게 의아하다. 비대위 구성원은 어떻게 되나?

A. 블랙리스트 총장 임명에 반대하며 자발적으로 나선 학생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비대위는 비대위원장팀, 홍보팀, 1인시위팀으로 나뉘어 있는데, 처음 비대위를 제안했던 송기영(융합예술과 2학년) 공동위원장을 비롯한 세 명의 비대위원장이 주요 사안을 나눠 집행한다. 홍보팀은 활동 아카이브와 현황공유, SNS 관리 등을 맡고 1인시위팀은 현재 파라다이스홀 1층 정문에서 진행 중인 1인 시위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총학생회(이하 ‘총학’)는 아직 비대위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9월 2일 기자회견에 총학생회장이 연대 발언을 하는 등 기본적인 입장은 우리와 같다. 총학 차원에서 송수근 씨의 총장 임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차후 비대위 차원에서 공동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할 예정이다. 총학이 학생들 사이의 반대 기류를 읽고 비대위와 함께하려는 점은 고무적이다.



Q. 신임 총장 취임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졌고 곧 시위에 나섰다. 어떻게 진행됐나?

A. 9월 2일 오전 11시 예정돼 있던 취임식에 앞서, 정문 앞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자 송수근 계원예술대학교 총장 임명 반대”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재학생, 연대 단체 활동가 등 약 70~80명이 참석했다. 이후 취임식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내빈소개와 축사 때까지 침묵으로 항의의 뜻을 전했다.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는 취임사 직후 터져 나온 학생들의 항의로 이후 식순이 진행되진 못했다. 1층 로비로 자리를 옮겨 진행한 리셉션에서도 우리의 침묵시위가 계속됐다. 취임식을 저지했다는 점에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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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장 취임식에서 학생들이 규탄 문구가 적힌 손피켓으로 항의의 뜻을 밝히고 있다. 사진: 비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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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식 이후 학교 측은 계속되는 학생들의 항의에도 아랑곳않고 리셉션까지 진행했다. 사진: 비대위.



Q. 현재 계원예대 학생들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하다.

A. 계원예대 학생의 분노는 이례적 수준이다. 학내문제가 대다수 학생의 지지를 받은 경우가 별로 없다. 더구나 지난 7월경 있었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맞물려 가뜩이나 학교 당국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앞서 말한 총학의 설문조사에서도 재학생 2,900여 명 중 1,681명이 참여, 1,668명이 반대라는 압도적 반대 입장을 확인했다.



Q. 송수근 씨의 총장 임명을 반대하는 구체적인 이유와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A. 이번 블랙리스트 총장 임명 사태는 단순히 계원예대 재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 모순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 우파 권위주의 정권에서 자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공모자·부역자 처벌이, 촛불 민심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 들어 사실상 좌초됐다는 모순이 그것이다. 문체부의 원활한 가동을 위해 공무원·관료들에게 면책에 가까운 처분을 내렸다. 이는 문재인 정부 경제개혁 답보의 다른 표현이다. 이번 취임식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신창현과 같은 당 김상돈 시장을 대신해 부시장이 참석해서 축사를 했다는 점도 이런 모순의 단면을 드러낸다. 심지어 송수근 씨는 과거 새누리당 교육문화체육관광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역임했다. 이번 이사회에서 그를 만장일치로 총장에 임명한 것은, 우익 정계와의 카르텔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품게 한다.


블랙리스트는 국가보안법의 문화적 변용이다. 조윤선, 김기춘 등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법정에서 유죄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 송수근 씨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인 탄압에 앞장섰던 공무원을 예술대학교 총장에 임명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도 허용해선 안 된다. 이런 현실에 순응하고 방관한다면 블랙리스트가 훗날 다시 생기지 않으리라 말할 수 없다. 지금 붕괴한 시민윤리를 급진화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싸움이다.


따라서 비대위는 다음 네 가지 요구를 제시했다. 첫째, 이 사안에 대한 교직원들의 즉각적인 입장 표명 촉구. 둘째, 송수근의 문화예술계 복귀 시도에 대한 문화・예술계 종사자, 시민의 관심과 연대 촉구. 셋째, 파라다이스 재단과 학교법인 계원학원에 총장 선임 과정의 투명한 공개와 사과문 작성 요구. 넷째, 송수근의 총장직 즉각 사퇴 촉구다.



Q. 학교 측은 어떤 반응인가?

A.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반대하리라고는 예상을 못 했는지 당황한 눈치다. 얼마 전 교무처가 비대위와 총학에 면담을 요구했다. 비대위는 이 면담을 거부했고 총학은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서 학교 측이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송수근 총장에 대한 공청회’를 예고했다고 들었다. 재학생으로 참석 대상을 한정한 것은 ‘비대위 배후에 외부세력이 있는 것 아닌가’하는 학교 측의 의심을 반영한다고 본다.



Q. 향후 투쟁의 방향은 어떻게 될지.

A. 우선 지금처럼 학내 1인시위와 연대 서명, 활동 아카이브를 지속할 예정이다. 추가적인 성명서 발표를 앞두고 있고, 총학생회와 비대위의 결합을 논의 중이다. 아직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교수협의회와 교직원 노동조합에 입장표명을 촉구하고, 학내 주체들을 견인하면서 총장 즉각 사퇴를 요구할 계획이다. 밖으로는 졸업생연대네트워크를 조직해 후원과 연대를 구하고, 타 예술계 대학교와 블랙리스트 관련 피해자·활동주체와의 연대 확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의 활동은 송수근 씨가 총장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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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일, 계원예대 학생들과 문화활동가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자 송수근 총장 취임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비대위.



인터뷰 진행 후에도 새로운 투쟁 소식이 전해졌다. 디자인 인문학 모임 “수렴과 발산”은 교내 공간을 점거해 송수근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전시회를 개최하고 참여형 포스터 콜렉티브 “예대생답게 연대하기”를 진행할 예정이다.


정강산 씨는 인터뷰 말미에 “평소 노동이슈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변혁당이 이 사안에 관심을 가져서 놀랍고 고맙다. 더 많은 시민과 활동가의 연대와 참여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계원예대 투쟁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슬그머니 복귀하려는 블랙리스트 실행자에게 어울리는 것은 그가 문화예술계에 끼친 해악과 상처만큼 검디검은 미래다. 변혁당의 역할을 고민할 때다.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비대위 소식>

- 페이스북: 계원예대 블랙리스트 총장 비대위

- 인스타그램: @kaywon.blacklist

- 유튜브:  https://youtu.be/2RYxbUg657Q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자 송수근의 계원대 총장 임명 반대 기자회견”

- 1인시위 참여링크>> https://c11.kr/9xf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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