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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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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상생 미명으로 백기 투항,

상시 구조조정과 단협을 상납하다


정원현┃울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8년 만의 무쟁의’로 임단협을 타결하면서, 자본가단체를 비롯해 보수언론과 경제지부터 소위 진보언론이라 칭하는 <한겨레>, <경향신문>까지 환영 입장을 개진했다. 8년 전 어용 집행부의 무쟁의와 달리, 이른바 ‘강성’으로 분류된 하부영 집행부의 무쟁의에 대한 기대는 사뭇 남달랐다. <한겨레>는 논설에서 “현대차 8년 만 ‘무분규’ 임단협, 상생의 고리 되길” 바란다고 썼으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역시 “8년 만의 무분규 합의가 한국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정립하는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대차 노사추천 자문위원인 이항구 선임연구원은 “노조도 이제 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이 이토록 기대를 품고 현대차지부의 무쟁의에 의미를 부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대립적 노사관계의 상징과 같았던 현대차지부가, 임금체계 개편만이 아니라 “흑자 속에 선제적 구조조정(현대차는 매년 2조~8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으며, 최악의 실적을 보인 2018년에도 영업이익은 2조 4,222억 원이었다)”까지 인정했기 때문이다. 현대차지부가 스스로 ‘귀족노조 프레임을 벗기 위해’ 무쟁의 타결을 결정했다고 하든,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경제전쟁, 자동차산업의 침체기를 고려했다’고 하든, 현대차 자본은 이번 합의로 노조의 저항 없이 흑자 구조조정을 진행할 카드를 얻었다. 현대차지부의 이러한 선택은 구조조정을 코앞에 두고 있거나 이미 맞닥뜨린 다른 완성차 노조에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세계는 지금


전 세계 자동차산업은 이중고에 처해 있다. 우선,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생산과 판매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 등 다양한 악재로 침체 국면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전기·수소차, 자율주행차, 공유경제)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일본·유럽 등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은 흑자를 기록하는 중에도 인력감축과 공장폐쇄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경쟁적으로 벌이며 미래차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도 별반 다르지 않다. 르노삼성은 최근 400명 희망퇴직을 밀어붙이며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한국지엠은 ‘노조가 파업을 계속하면 물량을 빼겠다’고 협박 중이며, 쌍용차 역시 임원 20% 축소와 연봉 10% 반납으로 구조조정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 3개 회사에서는 당장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에 나서야 할 타이밍이다.



현대차지부의 선택, 상시 구조조정과 단협 포기


현대차 자본은 사측 소식지를 통해 ‘영업이익이 최대일 때조차 세계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쳤다. 사측의 현장통제력을 강화시킨 반면 현장 활동가의 현장투쟁력을 약화시킨 2017년 “신차 프로세스” 합의, 2018년 “비가동요인 최소화” 합의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것이었다. 자본의 궁극적 목적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경영권’을 내세워 현장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다. 사측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상시 구조조정이다.


올해 “정년퇴직자 공정 인력운영 관련” 합의는 상시 구조조정과 관련 있다. 이전까지는 단협에 따라 정년퇴직자를 대체할 신규인원을 채용해야 했다. 대의원대회에서는 이미 몇 차례나 단협을 위반한 사측을 규탄하며 신규채용 투쟁을 결의했고, 올해도 그랬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됐다.


현대차 노·사와 자문위원은 1) 전기차 양산체제가 들어서면 30%의 여유인원이 발생하며, 2)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 30% 여유인원을 정리해고할 수밖에 없고, 3) 노사가 정리해고 투쟁으로 전면전을 치르면 현대차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냈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상시적으로 30%의 여유인원을 정리할 ‘묘책’을 찾았다. 바로 2019~25년까지 퇴직하는 1만 6천여 명 규모의 공정에 대해, 신규채용 대신 상시적으로 공정을 없애고 재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미래의 정리해고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과 더불어 정리해고를 미리 방지하기 위한 노사 상생의 협력.’ 이러니 자본가단체인 경총이 ‘한국 노사관계의 선진화 정립 희망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합의대로 현장이 돌아간다면 어떨까? 상시 구조조정의 무기를 손에 쥔 자본은 현장통제력을 강화할 것이고, 노동자들은 줄어드는 일자리를 지켜보며 위축돼 사측의 통제에 따라 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자본과 협력한 무쟁의, ‘한국 경제를 걱정한’ 무쟁의가 ‘귀족노조 프레임’을 벗겨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본과 정권에 예속돼 노조도 어용화되고, 다른 투쟁 사업장에 독이 될 뿐이다. 진정 ‘귀족노조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과 지역의 투쟁 사업장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개악 저지 등 주요 총파업에 앞장서야 한다. 더 나아가,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등 노동자계급의 요구와 정책을 내걸고 전면적으로 투쟁에 나설 때 비로소 귀족노조 프레임은 깨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