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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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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0.02 15:32

뚱보기생파리



거리 화단은 몇 주 전 이미 국화꽃으로 새 단장을 마쳤다. 국화꽃은 지난봄부터 원예 농가 비닐하우스에서 물주고 비료 주고 약 치고 조금 자랄 때마다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고, 너무 많이 돋은 순을 하나하나 따 주면서 수백 번 원예 농업 노동자의 손길을 거쳐 자란 꽃이다. 지난여름 찜통 같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업 노동자가 흘린 땀을 먹고 자란 꽃들이라고 생각하니 거리마다 심어 놓은 흔한 국화꽃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래도 비닐하우스에서 키워 거리 화단에 심은 국화에서 가을을 느끼기엔 뭔가 부족하다. 아파트 단지 사잇길과 옹벽 아래 그리고 텃밭 가는 길가에 저절로 자란 미국쑥부쟁이꽃이 피고 있다. 미국쑥부쟁이처럼 심지도 가꾸지도 않은 들국화가 꽃 피니 ‘정말 가을이구나!’ 하고 실감하게 된다.


미국쑥부쟁이꽃은 작고 소박하지만 많은 벌레가 바글거린다. 가을이 깊어지고 꽃이 더 피어나면 벌레들은 더 많이 몰려들어 그야말로 가을벌레들 꽃 잔치가 벌어진다. 잔치답게 꽃 주변은 붕붕거리는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로 제법 시끌벅적해진다. 이맘때에는 미국쑥부쟁이꽃 앞에 자리 잡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도 온갖 벌레를 볼 수 있다.


건너편 아파트 단지 경비실 옆에는 화분에 심어 키우는 미국쑥부쟁이가 있다. 여러 해째 경비 아저씨가 정성껏 돌봐서 해마다 어른 키를 넘기며 자란 원예종 국화 부럽지 않은 미국쑥부쟁이다. 그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매번 발목 잡혀 꽃 앞에서 날아온 벌레들을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사진을 찍고 도감을 뒤져 확인하는 걸 몇 번 하다 보면 다 같아 보이는 벌과 꽃등에가 조금씩 달라 보이고 기생파리를 구별해 볼 수 있게 된다. 미국쑥부쟁이꽃에는 꿀벌, 뒤영벌, 꽃벌 같은 벌들이 많이 보이지만 종류로 따지자면 파리 무리가 훨씬 더 여러 종 보인다. 꽃에 찾아오는 벌레가 대개 벌이나 나비인 줄 알지만, 자세히 보면 파리들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배짧은꽃등에, 수중다리꽃등에, 꽃등에, 물결넓적꽃등에, 호리꽃등에 같은 꽃등에와 노랑털기생파리, 표주박기생파리, 뚱보기생파리, 중국멸기생파리 따위 기생파리가 보인다. 꽃등에나 기생파리는 봄부터 가을까지 볼 수 있지만, 가을에 미국쑥부쟁이 같은 국화꽃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꽃등에는 벌과 닮은 데다 변이가 심해서 구별이 어렵다. 기생파리는 집파리를 닮아서 파리 종류인 건 쉽게 알 수 있지만 센털이 돋은 모습이 비슷해서 어떤 파리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뚱보기생파리는 털이 많은 다른 기생파리와 달리 털이 없고 매끄러우며 가슴과 주황색 배가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기생파리는 어른벌레일 때는 꽃과 꽃가루를 먹지만 애벌레 때는 그 이름처럼 다른 곤충이나 절지동물의 몸속에 기생하며 산다. 뚱보기생파리 애벌레는 노린재 무리의 몸속에 기생한다. 노린재 몸속을 먹으며 자란 뚱보기생파리가 몸을 뚫고 나오면 노린재는 죽고 만다. 가을동화 뒤에는 이런 끔찍한 잔혹극이 감춰져 있다. 하지만 꽃 뒤에 숨어 있다가 날아온 벌과 파리를 잡아먹는 꽃게거미나 사마귀보다 기생파리가 더 잔혹한 걸까? 기생파리는 탐욕스럽게 먹지 못한다. 너무 많이 먹어서 다 자리기 전에 숙주가 죽게 되면 기생파리도 살 수 없으니 말이다.


최근 지구온난화 탓인지 과수원이나 논밭을 오가며 작물에 큰 피해를 주는 노린재가 부쩍 늘었다. 그래서인지 노린재의 천적인 뚱보기생파리가 더 반갑다. 어른벌레 때는 꽃에 날아와 꿀과 꽃가루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식물의 꽃가루받이도 돕는다. 늘어나는 노린재 수를 조절하고 꽃가루받이를 돕는 뚱보기생파리는 점점 더 고마운 곤충으로 이름이 알려질지 모른다. 가을이 더 깊어져 추워져도 벌보다 추위에 강한 파리 무리는 늦은 가을까지 꽃에 날아올 것이다. 길가에 핀 가을 들꽃과 들꽃에 날아온 작고 동글동글한 파리가 보여주는 조그맣고 쓸모없는 가을 풍경 한 조각을 주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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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강우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