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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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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0.02 16:10

이해남과 이현중, 첫 번째 이야기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이해남은 이현중이 일하는 일터의 동료이자 선배이자, 믿고 따른 노조 위원장이었다. 둘은 “세원테크”에서 동료로 일하다가, 비슷한 시기에 노동조합으로 뭉쳤다가, 비슷한 시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2003년 그때, 이현중은 서른 살이었고 이해남은 마흔하나였다. 이현중은 암으로 이해남은 분신으로, 그렇게 떠났다.


2001년, 5만 명의 제조업노동자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출범하면서 조직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이현중과 이해남이 일하던 세원테크는 노동자를 물건처럼 인간 이하로 취급했고, 노동자들의 분노가 마음 깊숙이 쌓이고 있었다. 누군가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날아갈 일촉즉발의 분위기였으나, “언제 방아쇠가 당겨질까? 당겨지기는 할까?” 의문스러운 암울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방아쇠는 당겨졌다. 세원테크에 노동조합이 섰다. 어떻게 해서 방아쇠가 당겨질 수 있었을까? 방아쇠는 누가 당겼는가?


이 모든 것의 시작에 이현중이 있었다. ‘예비군 훈련을 마친 대로 공장에 출근하지 않았다’며 반장이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이현중에게 심한 욕설과 구타를 했다. 이 자리에서 불과 입사 2달밖에 안 된 이해남이 반장에게 강력히 항의했고, 회사에도 반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요구를 묵살했고, 오히려 이해남에게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이렇게 되자 이해남은 노조 결성에 나섰다. 회사의 집요한 방해와 거친 협박에도 불구하고, 이현중 사건 4개월 뒤 금속노조 세원테크지회가 건설됐다. 당연히 이현중은 조합원으로 참여했고, 지회장은 이해남이었다.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고, 노조의 요구도 무시했다. 노조는 잔업이나 특근을 두고 몇 시간씩 파업을 했고, 이런 노조를 회사는 아예 없애버리려고 나선다. 노조 얘기만 나오면 발목을 끊겠다는 깡패들을 공장 안으로 불러들였고, 이 깡패들과 노동자 간에 목숨을 건 2박 3일에 걸친 치열한 투쟁이 벌어졌다. 이 투쟁은 금속노조 충남지부 지역 총파업을 불러일으킨다. 지역의 동료들이 출근길에 자기 공장이 아닌 세원테크로 발길을 돌렸고, 결국 연대의 힘으로 노동자들은 용역깡패들을 공장에서 내쫓는다. 2001년 12월 12일 총파업 승리 뒤에는 노동자들이 대거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는 세원테크라는 전쟁터에서 노동자를 지키는 강한 울타리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는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무시했고, 노조는 또다시 파업을 준비한다. 이 파업을 무산시킬 속셈으로 쟁의조정 당일에 회사는 지회장 이해남과 사무장을 구속시켜버렸다. 그러나 오히려 분노한 조합원들이 파업에 돌입했고, 회사는 결국 단체교섭에 응했다. 이해남은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을 면회하러 오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더 자유로운 해방감을 느꼈다.


이후, 회사는 방법을 바꿨다. 노조파괴 전문가 3명을 고용해서 이른바 ‘동남아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체계적으로 노조를 파괴했다. 물량을 회사 밖으로 빼돌렸고, 조합원들을 회유해 구사대를 만들고, 노조 간부들을 징계하기 시작했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다. 이미 상당한 물량을 밖으로 뺀 회사는 여유만만하게 노조파괴를 시나리오대로 착착 진행했다. 조합원 반을 협박과 회유로 빼냈고, 대책인력을 투입했고, 파업에 돌입한 노조에 20억 원 가까운 손배가압류를 걸었다. 궁지에 몰린 노조는 물러서지 않고 전진을 택했다. 공장점거 투쟁을 결정한 것이다.


공장점거가 일주일을 넘길 무렵, 투쟁 진압을 위해 공권력이 투입됐다. 2002년 7월 14일, 공권력 투입 바로 직전에 투쟁하던 60여 명의 조합원들이 4~5명씩 조를 지어 4만 원씩을 나눠 들고서, 기아카렌스타운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뒤 산을 타고 퇴각했다. 다음날 새벽, 이현중을 포함해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약속 장소에 모두 모였다. 일주일간 점거 투쟁 중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데다가, 공권력을 피해 퇴각한 후 언제 어떻게 잡혀갈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 속에서 하루를 보낸 조합원들은, 초췌할 대로 초췌해진 모습으로 동료들을 보러, 지회장을 보러,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모였다. 이 모습에 미리 와 있던 지회장 이해남이 울컥했다. 그는 조합원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여러분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 <하늘 끝자락 별이 빛날 때> 35분/2013년/ 제작 이해남 이현중 추모사업회, 노동자뉴스제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