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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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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것은

여성억압에 맞선 사회주의자들의 실천이다


지수┃사회운동위원회



페미니즘과 여성해방론의 차이?


매체 <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다”라는 글에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틀렸다’는 주장과 함께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주되게 주장하는 변혁당에 대한 비판이 등장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무엇이 다를까? 안타깝게도, 글을 끝까지 읽어봤지만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매체 <사회주의자>의 주장은 단지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급진주의적 페미니즘 쪽에서 먼저 제기하고 더 주도적으로 사용해 왔으니, 사회주의 진영은 ‘페미니즘’ 대신 ‘여성해방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것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변혁당의 어떠한 입장과 실천이 어떠한 이론적·실천적 오류를 담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거를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사회주의자>가 주장한바 ‘페미니즘이 여성억압을 모든 사회의 억압에 앞선 사회의 기본모순으로 본다’는 시각은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페미니즘 전체로 일반화한 과도한 해석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보다 ‘여성해방론’이라는 용어가 여성억압의 근원을 더 잘 설명해줄 것이라는 주장 역시 근거를 찾기 어렵다. ‘페미니즘’은 이미 많은 여성들의 실천적 투쟁을 통해 ‘여성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한 운동’의 의미를 획득했고, 활동가 몇몇이 해당 개념을 거부한다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이미 ‘실천이 동반된 개념’이며, 그 실천은 ‘여성억압에 맞선 여성들의 투쟁’을 포함하고 있다.



역사 속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 ‘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이 지금의 위치를 점하게 된 데에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여성 의제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실천적 운동의 과제들을 끊임없이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페미니즘 가운데 모종의 대표성을 띠는 것처럼 오인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페미니즘의 조류는 한 가지가 아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관점과 페미니즘을 어떻게 연결시키는지에 따라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입장의 페미니즘이 형성되어 왔다. 페미니즘은 자유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 속에 사회주의자들의 운동 역시 존재했고, 이들의 고민과 실천이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를 초역사적 개념으로 보는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혁명만 이루어지면 여성해방은 자동으로 따라온다고 생각했던 계급 환원론적 ‘맑스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를 딛고자 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어떻게 상호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고, 이것이 여성에게 미치는 파괴적 양상을 드러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을 제기했다. 페미니즘에 유물론적 분석이 필요한 이유를 제공하고, 변혁 운동 진영에서 여성 의제를 중심적인 관점과 의제로 올리는 데 이론적 토대 역할을 했다. 물론 변혁당이 가진 입장 역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조류 속에 있으며, 일각에서 그 입장을 이원론으로 평가하든 아니든 그 부분은 우리에게 있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한국 사회주의 운동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주변화되면서 이론과 실천의 영역이 단절되었던 과정에 대한 반성적 평가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적 조류가 많은 부분 소실되고 중단된 상태 속에서 그 흐름을 이어나갈 이론가와 활동가의 부재가 안타까울 뿐이다.



여성억압의 근원: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현재 여성억압의 근원은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에 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서로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 분리할 수 없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가부장제 개념은 사회구조와 무관하게 초역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는 여성에 대한 억압, 배제와 착취 없이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노동계급 내에서 차별을 용인하는 가장 최초의 전략이었다. 생산 노동과 재생산 노동의 수행자를 성으로 가르는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는 이성애 중심적 가족제도를 공고히 뿌리내리게 하면서 자본주의가 굳건히 유지될 수 있는 기본구조를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었다. 성차별적 노동 분업은 이 사회 전반의 성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일부의 생물학적 특성을 일반화하면서 성 역할 이데올로기를 강화시켰고, 사회 전반에서 여성과 생산적이지 못한 인구를 이등 시민으로 전락시키며 차별과 배제가 용인되는 사회로 만들었다.


우리는 현존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혁명 초기에 실시된 여성 정책들(참정권, 이혼의 권리, 낙태죄 폐지)을 통해 여성의 경제적·정치적·성적 평등이 법제화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혁명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여성들의 일자리를 박탈하고, 부르주아적 가족 관념이 복귀·강화하는 방향으로 점차 후퇴한 과정 역시 본다. 사회주의 혁명을 거친 국가들에서 나타난 위기 극복 방식이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 극복 방식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변혁은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린 ‘가부장제에 대한 끝없는 경계와 투쟁’ 없이 온전히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다. 진정한 사회변혁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라면 모름지기 ‘페미니스트’여야 함은 이제 운동진영에서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는 전제가 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페미니즘 실천


작년 혜화역 시위를 중심으로 한 ‘뉴페미 운동’이 제안되어 한국 사회 내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운동진영 대부분이 그랬듯 변혁당 내에서도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우리의 결론은, 그녀들이 진행하는 운동의 한계를 평가하는 것을 넘어, ‘대안이 될 우리의 계급적 여성운동’을 만들고 그 ‘운동을 중심으로 대안 주체들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운동이 드러나는 것은 입장에 기반한 실천이며, 대중은 그 실천으로 운동 세력을 기억한다.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 기반해서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운동화할 수 있는 실천을 기획하고, 그 과정에서 대중을 모아낼 것인가의 측면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변혁당은 그 실천적 과제로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 ‘낙태죄 폐지 투쟁’, ‘재생산노동의 사회화 투쟁’을 진행해왔다. 사안별 연대 운동을 함께하면서 실천적 투쟁에도 결합했다. 지역별로 학교별로 페미니즘 모임을 만들고 함께할 이들을 모아내는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의 역량 때문에 운동이 부족했을 수는 있으되, 틀렸다는 평가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전망을 꿈꾸는 활동가들이 생겨나고 있고, 이들의 갈증 역시 커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적 수혈이 더욱 많이 필요한 시점이고, 이는 변혁 운동 진영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을 더 많이 고민하고, 페미니즘의 의제를 발굴하고 어떤 실천을 중심으로 활동할 것인가를 고민하자. 또한 그 과정에서 진정한 사회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많은 활동가들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더 강화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하자.


현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여성억압에 맞선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이다. 지난시기 계급 환원론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던 사회주의자들, 여성해방 운동을 주변화했던 사회주의자들이 스스로의 활동에 대한 냉정한 평가 위에 여성해방론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이냐 여성해방론이냐’라는 무의미한 개념 논쟁을 벌이기 전에, ‘차별과 배제 없는 진정한 사회변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의미 있는 이론과 실천을 더 치열하게 고민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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