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94_32.jpg

[사진: 최인기]



광장의 정치,

가난한 사람들의 힘으로 되찾자


최인기┃서울



곳곳에서 풍성한 행사들이 펼쳐진다. 대부분 가을을 알리는 축제들이지만, 매년 10월 17일 즈음 가난한 이들이 모여 자신의 사회적 요구를 내걸고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일정이 전개된다.


이날의 출발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 및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개정안 등 다섯 가지 요구를 중심으로 10월 17일 농성 투쟁을 전개했는데, 이날은 바로 UN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토론회, 기자회견, 그리고 빈곤철폐 퍼레이드 등 실천을 통해 빈곤‘퇴치’가 아니라 “철폐”를 위한 투쟁을 지금까지 전개해오고 있다. 그 후 빈곤철폐의 날 행사는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에서도 함께 진행돼 왔다.



문재인 정부의 ‘포용’과 죽어가는 사람들


2005년 이후 1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문재인 정부 들어 가난을 둘러싼 문제해결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국가’, ‘혁신적 포용국가'를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다지 혁신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다. 가령 기초생활 보장 급여의 기준을 정하는 “기준 중위소득” 3년간 인상률은 고작 평균 2.06%에 그쳐,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들은 죽지 않을 만큼의 수준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기초생활 보장제도 2차 기본계획에서 ‘부양 의무자 기준 폐지’를 담겠다고 약속했지만,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핑계로 시행 속도만 조절하고 있을 뿐 포용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장애인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겨 복지서비스를 차등화해 어떻게든 복지 지출을 최소화하려던 장애등급제가 올 7월부터 폐지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장애인들은 기존에 관습적으로 유지된 장애인 정책과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 여전히 장애 복지예산은 OECD 가입국 평균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충분한 예산조차 반영하지 않으면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탈시설 정책을 이행한다는 것은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듯싶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의 ‘혁신적 포용복지’는 시작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


여기, 한 비극적인 죽음을 보자. 추석을 앞두고 있던 지난 2019년 9월 5일 자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서울시 강서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88세)와 중증 지체 장애를 지닌 형(53세)을 돌보던 50대 남성이 자신과 가족을 모두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에 장애인 연금을 받는 모자, 그리고 이들을 돌보느라 일조차 할 수 없었던 둘째 아들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은 한 달 생활비는 100만 원가량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번 양보해 3인 가구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생계비인 약 112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참고로 2019년 기준 기초생활 보장제도에서 1인 가구 생계 급여 선정기준액이자 최대지급액은 51만 2,102원이다. 개인회생 신청 시 법원에서 인정하는 1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02만 4,205원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 보장 대상자에서 탈락한 사람은 60만 명, 재산 기준에 걸려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약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가난하면서도 제도적 보장에서 차단당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형편이다.


94_34_수정.jpg

[사진: 최인기]



‘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공간’


주택시장도 여전히 안정적이지 못하다. 2018년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9·13 대책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서울 일부 지역의 집값은 도리어 올라 양극화가 더 심해진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행사가 국회에서 있었다. 2019년 10월 8일 ‘멈춰진 세입자의 권리를 함께 바꾸자’는 주장과 함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연대’ 출범식이 개최된 것이다. 전·월세 폭등을 겪었던 지난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임대차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개정된 바 있다. 그런데 그 이후 30년째 법적으로 보장하는 세입자 거주기간이 2년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 세입자의 평균 계속 거주기간이 3.4년에 불과하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세입자가 주거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한편 UN 사회권위원회에서 ‘한국의 강제퇴거 실태에 대한 우려와 예방 조치를 권고’할 정도로, 강제퇴거 문제는 문재인 정부 아래서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2019년 9월 서울 자양1구역 재건축지역 강제철거, 부천시 소사 도시개발사업 지역 강제 집행 및 강제철거, 서울 미아 3구역 재개발지역 강제집행, 안양 덕현 재개발지역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세입자나 원주민의 재정착 권리와 상가세입자들의 이주 대책을 보장하지 않고 건물주와 건설자본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개발이 전개되고 있다.


주민의 삶을 파괴하는 재개발 앞에서, ‘주택은 내일의 노동과 활동을 위해 재충전하며 휴식하는 공간’이라는 말은 무색하게 들릴 뿐이다. “빈민해방실천연대”의 “전국철거민연합”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주거공간은 건설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위한 개발이 목적이었다’고 규정한다. 아무런 대책 없이 개발의 명분으로 파괴를 일삼는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겐 내일의 삶을 포기하라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순환식 개발(재개발 진행 시 원주민들에게 재개발 기간 동안 지낼 수 있는 거주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부가 나서서 복지적 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건설하고 공급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지가 돈을 낳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대부분 미봉책에 불과하므로, 재산과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주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근본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거리로 밀려난 사람들을 다시 밀어내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와 같은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며 겉으로는 상생과 소통을 내세운 다양한 협의기구를 구성하고 있지만, 실제 ILO 핵심협약 비준 건만 놓고 보더라도 오히려 ILO 협약과 정반대의 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이는 전초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길거리 노점상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래전부터 ‘노점상 관리대책’을 통해 ‘노점상 가이드라인, 상생위원회’ 가 지자체별로 전개되고 있지만, 규제와 간섭이 심해 생존권과는 거리가 멀고 관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 노점상의 가장 큰 현안은 노량진수산시장을 둘러싼 투쟁이다. 2002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계획에 따라 수협중앙회가 시장을 인수한 이후 2004년 대통령 산하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에서 ‘유통 선진화와 소비자 편익 증진’을 명목으로 ‘현대화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국고보조금이 1,540억 원이나 투입된 신시장 현대화 사업은 부실 공사로 공영도매시장의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구 시장 부지에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건설계획이 수립됐다.


이 일방적인 현대화 사업에 반대하며 구 시장에 남아 있는 상인들에게 돌아온 것은 폭력과 단전·단수, 그리고 불법적인 명도집행이었다. 이제 노량진 구 수산시장 상인들은 거리에서 한겨울을 보내야 할 처지다. 특히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규정상 시장개설자이자 관리책임자인 서울시는 주민참여 기본조례에 규정된 시민 청구 공청회마저도 거부하는 등 문제를 외면하며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는 구제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저출산 고령화, 주택, 교육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는 오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가난은 굳어지고 탈출의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빈곤은 경제적 결핍이라는 단일한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배제와 더불어 문화와 심리적 소외까지 결합한 다차원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빈곤에 저항하는 빈민운동 진영은 2019년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가난은 누가 구제해 주는 것이 아니다. 빼앗기고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 모이고 싸울 때, 비로소 빈곤과 불평등을 철폐할 수 있다. 빈곤에 처한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고 연대하는 과정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위해 노동자 민중을 착취하는 이들에 맞서, 가난한 사람들이 직접 나서며 싸움을 선포하고 있다. ‘포용’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를 앞세우면서도 싸우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권력의 폭력에 맞서, 빈곤 없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한 걸음 더 내디딜 것이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