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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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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고립의 선을 넘어야 한다


“사회주의 대중화, 회피할 수 없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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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혁당은 올해 “사회주의 대중화”를 주요 기치 중 하나로 내걸고 이를 위한 본격적인 당내 논의에 착수했다. 지금 왜 사회주의 대중화를 제기해야 하는지, 정당 등록의 필요성부터 당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까지 여러 의견이 나왔다. 내년 1월 총회까지 사회주의 대중화를 둘러싼 당내 토론은 계속될 예정이다. 지난 10개월 동안 이 논의를 이끌어왔던 이종회 변혁당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 특별위원장을 <변혁정치>가 만났다.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지 10개월이 지났다. 아직 대중화 사업에 대해서는 당내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지만, 사회주의 대중화를 당의 주요 기조로 천명하고 논의를 이끌어오면서 느낀 그간의 소회를 먼저 간략히 말씀해주신다면?


무엇보다 우리 당이 상당히 건강한 조직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현재 논의하고 있는 사회주의 대중화는 한편으로 보면 내용상 선을 넘어서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당내 논의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자기가 발 딛고 있는 현장에서부터 스스로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서 토론이 이뤄진다. 그 토론 속에서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고. 그런 토론을 보면서 우리 조직이 긴장과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느꼈고, 전망도 밝게 보게 됐다.



정치지형이 변했다,

이제 사회주의를 

대중적으로 내걸어야 한다


Q 이종회 동지는 2016년 변혁당 창당 때부터 2년간 당 대표를 맡은 후, 작년에는 별도 직책 없이 활동하다가 올해 초부터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 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장을 맡게 됐다. 올해 사회주의 대중화라는 과제를 맡게 된 계기나 고민, 구상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


2016년 당 대표를 맡고 있던 당시는 촛불항쟁으로 상당히 정치적 긴장감이 높았던 시절이다.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제대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데 대한 답답함도 있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당 대표를 그만두고 한 발짝 떨어져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정치운동과 연계해서 전망에 대한 고민도 했다.


2016년 광장투쟁을 거치면서 정권이 바뀌고 정치 지형도 변했다. 그 지형의 변화를 보면서 이제 사회주의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걸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한국의 정치‧경제적 상황 변화에 따라, 이제 한국 사회주의 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때가 아닐까 한다. 사회주의자라면 끊임없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기존의 스스로를 부정해나가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당내 변화와 자기부정 이런 게 필요하지 않나 하는 판단도 했던 게 사실이다.



Q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공공연하게 사회주의를 드러내고 활동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이나 금기시도 한몫할 텐데. 지금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천명할 적기라고 판단하는 이유가 있다면?


1945년 해방과 한국전쟁, 분단체제 고착화 이후 한국 사회는 사회주의 세력과 빨갱이를 짓밟고 구축된 체제다. 이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구축된 체제이기에,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계급적인 주체 형성이 필요했고 그런 시도는 80년 이후 지속됐다. 80년대에는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이 국내에도 도입됐고, 한편으로는 분단체제를 깨기 위한 투쟁도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근래에 올수록 국내 자본 간 경쟁과 긴장이 강화되면서, 자본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투자처로서 북한이 부각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기존 분단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반대가 위와 아래 모두에서 나왔다. 그 과정이 김대중 방북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긴장 완화 행보까지 이어졌다. 분단체제는 냉전이라는 세계체제 속에서 구축된 것이었는데, 자본의 위기 속에서 결국 냉전체제 자체에 균열이 생겼고 북‧미 정상회담 등을 거치면서 현실적으로 분단체제가 무너질 수 있는 여지가 많이 보인다. 그런 정치‧경제적 배경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한다.


물론 공개적으로 사회주의를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무조건 사회주의만 외친다고 조직이 되고 투쟁이 되지는 않을 거다. 그건 현실적 조건을 반영하고 계급 주체 형성과 맞물리면서 보다 미세한 그림을 그려나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 점에서 주체 형성 문제에 대해 정치적 탄력성을 가져야 한다. 가령, 현재는 현장보다 가두에서 사회주의를 얘기하기 더 쉬울지도 모른다. 이는 계급 주체의 정치적 재조직화 문제이기도 한데, 사회주의 대중화는 주체 형성 전략과 연계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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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취약함,

대중적 사회주의 정당으로 극복해야


사회주의 대중화 관련 당내 논의에서 가장 두드러진 쟁점은 단연 등록정당 문제다. 등록정당 추진은 대중화 사업의 주요한 축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에 대해 ‘지금 정당 등록을 위해 인원을 늘리려면 강령 수위를 낮추거나, 당원이 당의 한 기구에서 활동하도록 규정한 규약이 허물어질 될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당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인데, 이에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거의 200년 흘렀다. 특히 정치운동으로 전화된 이후,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보듯 우경화 질곡을 겪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사민당 이후에도 녹색당조차 정부에 입각한 뒤 보스니아 내전 등 전쟁에 찬성한 역사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우경화를 방지하는 게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 것은 맞는다. 한국만 해도 초창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제기하며 출범했던 진보정당의 귀결을 보면, 우경화에 대한 우려는 현실적인 제기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 지형, 계급적 토대와 지형이 바뀐 지금 우리의 전략적 목표로서 사회주의 대중화를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경화에 대한 우려는 당내에서 끊임없는 긴장과 논쟁 등을 통해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한다. 구체적인 방안 수준에서는 현실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지만, 조직 내 긴장을 유지하면서 운영의 틀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현재 주어진 정치‧경제적 지형 속에서 전략적 과제인 사회주의 대중화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강령의 후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는데,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과 맞물려 “한국 사회 구조 변혁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기존 강령을 그대로 내놓기보다,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양식으로 제시하겠다는 거다. 이 ‘구조변혁안’에서 골간이 되는 반자본-사회화는 우리 강령의 민주적 계획경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우리가 그동안 포괄적 수준에서 얘기했던 노동자민중 권력도 구체적으로 제기한다는 점에서, 강령 수준의 후퇴는 없다. 사회주의가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거론조차 되지 못했던 국면을 타개하고자 대중적 양식을 얘기할 뿐이지, 내용의 후퇴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


‘당원은 당의 한 기구에 속해 활동해야 한다’는 규약이 유명무실해질 거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현재에도 이 규약이 온전히 지켜지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당원의 수가 적기 때문이라고 본다. 당원의 다양한 활동을 반영하고 보장할 수 있는 체제가 구비되지 않은 게 문제다. 오히려 당원의 양적 확장이 그걸 보완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한다.



Q 그간 한국에 사회주의 관련 사상이 보급되고 운동이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주의 세력의 결집이나 힘은 미약한 실정이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지난날을 돌아볼 때, 현재 사회주의 세력의 취약함은 무엇 때문일까? 사회주의 대중화를 계기로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을 별도로 한다면, 한국 사회주의 운동은 1980년 이후 40년이 흘렀다. 초기에 노동계급을 조직하고 노동계급 중심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운동이 강하게 있었다면, 그 뒤 1987년 민중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분화 과정을 밟았다. 민주화운동 세력은 한편으로는 자유주의 세력으로 흡수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의 조직된 흐름이 민주노총으로 갔다. 그러다 1997년 이후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로 재편됐다.


이 과정에서 계급 토대가 불안정 노동체제로 완전히 바뀌었다. 80년대 이후 노동조합은 내셔널 센터를 만드는 데까진 갔지만, 혁명의 주체로까지 나서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제 불안정 노동체제로 인해 그 내셔널 센터가 재편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한편, 사회주의 운동 세력을 보면 주로 지식인 출신 중심으로 운동이 전개되면서 분파성이나 써클주의가 상당히 강했다. 하나의 대오를 갖추기 어려운 채로 지금까지 왔던 거다. 그런 점에서 학생운동 출신 지식인 중심의 사회주의 세력 자체가 가진 취약함이 있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해보자는 게 당 운동이다.


물론 90년대 초 동구권의 붕괴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이것이야말로 지식인 운동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사회주의는 망했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며 많은 이들이 전향했지만, 노동 현실과 노동자민중의 삶은 그대로였다. 운동에 참여했던 지식인 자신들의 이념적 전망에서 망했던 거지, 현실의 토대가 바뀐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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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정치질서의 균열, 그 사이를 파고들 때


Q 최근 조국 사태가 ‘내전’이라는 이름까지 얻을 정도로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우파 세력의 집결과 세 대결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 모두와 거리를 두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흐름도 있는데,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특정하게 세력화되지는 않았다. 2016년 촛불항쟁 이후 정세와 정치적 지형이 다시 한번 바뀌고 있는 이 시점은 사회주의자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사회주의자들은 이 시점에서 어떤 고민과 실천을 해야 할까?


최근 내가 가장 주목했던 건 올해 7월 3일 총파업이었다. 불안정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독자적인 총파업에 나섰다. 가령 유럽의 경우에는 EU가 만들어지고 자본의 국가 간 경계가 없어지면서 불안정 노동체제로 재편 과정을 거쳤는데, 이게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광장 투쟁이 벌어지는 요인 중 하나였다. 그들은 가두에서 정치적으로 재조직됐다. 스페인의 포데모스 같은 게 대표적인 유형이다. 가두 투쟁에서 정치적으로 조직됐다는 점에서 독특한 당 조직화의 유형을 보여줬다.


그런데 한국 사회처럼 불안정 노동자들이 총파업이라는 형태의 투쟁으로 조직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노동계급의 헤게모니가 비정규직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구축하고 올라오는 것 아닐까. 유럽의 경우 지식인에 의해 조직됐다면, 한국은 노동계급 스스로에 의해 조직되는 형태이지 않느냐는 거다.

이렇듯 현재의 불안정 노동체제에서 계급 주체, 새로운 정치 주체가 형성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보수세력이나 자유주의와 다른 독자적인 지형, 정치세력으로 설 수 있는 계급적 토양이 형성된 것 같다.


기존 정치체제에서 자유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을 겉으로라도 대변하고 대리했다면, 이번에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자들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과정에서 어느 한 세력에도 결합하지 않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게 중요하다.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설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이 마련된 것 아닌가. 가령 지금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이나 다시 총파업에 들어가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모두 독자적인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 좀 아쉬운 건, 이 시점에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세력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가 반자본주의를 기치로 정치적 주체로 서는 기획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문재인이 계속 삼성에 찾아가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노동개악을 주문하는 이 시점에, ‘조국 vs 반조국’이라는 프레임 사이에서 우리는 예컨대 불안정 노동체제 타파를 걸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주체들을 결집해 집회나 판을 키워봤으면 어떨까 하는 거다. 그것이 지금 새로 형성된 노동계급 주체를 정치적으로 세워내는 과정이지 않을까 한다.



Q 마지막으로, <변혁정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사회주의 운동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렵고 고단한 과정이지만, 그동안 성과를 딛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그런 과정이 조직적 수준에서 별로 없었다. 이제 더 많은 긴장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편으로는 우리 당원들이 자랑스럽다. 이번 사회주의 대중화를 둘러싼 토론을 바탕으로 새롭게 사회주의 운동의 판을 열어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 인터뷰 = 이주용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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