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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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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후 30년, 

지금 우리에게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남구현┃경기



30년 전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수만 명의 동독인이 한꺼번에 동독 국경 경비대를 무시하고 걸어서 서베를린으로 넘어왔다. 하루 전만 해도 장벽을 넘다 총에 맞아 사망한 동독 주민이 있었는데, 수많은 인민의 자발적 행동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를 만든 것이다. 당시 나는 독일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수만 명의 동독 사람이 서베를린으로 넘어와 몰려다녔고, 술집마다 서로 공술을 사주며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을 보았다. 새로 산 전자제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도처에 눈에 띄었고, 슈퍼마다 바나나, 커피, 초콜릿 등이 동났다. 통제된 사회에서 그간 못했던 것을 마음껏 하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 전부터 동독에서는 당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이 불면서 매주 진행된 “월요 집회”를 통해 사회주의 개혁 요구가 거세지고 있었다. 체제 자체가 위기에 빠졌고, 동독 몰락의 원인은 보다 근원적인 데 있었다.


우선 경제적인 면에서 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체제의 실패가 파탄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농촌에서는 감자가 넘쳐나서 버리는 지경인데 도시에서는 식료품이 모자라고, 기호품은 모자라거나 품질이 엉망이어서 불만을 일으켰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이들은 노동자‧농민의 국가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노멘클라투라(당 고위 관료, 특권층)’로 불린 당 관료가 배타적인 지배의 주체였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더 나은 노동자 민주주의를 통해 지양된 것이 아니라, 그저 폐지되었다. 무계급 사회로의 전망은 사라졌으며, 국가는 소멸한 것이 아니라 동독의 슈타지(동독 국가보위부)가 보여준 것처럼 거대한 억압 기구로 바뀌었다.



‘사회주의 개혁’에서 자본주의로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동독 집권당이던 사회주의통일당SED은 당내 개혁적 사회주의자인 모드로프, 기지 등이 중심이 되어 다음 해 2월 민주사회주의당DSP으로 바뀌었으며, 월요 집회 주도 세력이 모여 원탁회의를 구성해 동독 사회주의 개혁을 논의했다. 그러나 ‘더 많은 사회주의’를 위한 개혁의 외침은 점차 ‘하나의 독일’을 요구하는 구호로 바뀌었다. 장벽 붕괴 이듬해 봄에 진행된 인민회의 선거에서는 원탁회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서독 정당의 자매당들이 참여했다. 그 결과 동독 기독민주연합CDU이 다수당이 됐고, 화폐통합에 이어 국가통합의 순으로 독일은 통일됐다.


하지만 통일된 독일에서 구 동독지역 주민은 2등 국민이 됐다. 동독의 토지와 기업은 신탁청(당시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함)에 귀속됐고, 이후 동독 건국 이전의 소유자들이 찾아가거나 서독 자본에 헐값으로 매각됐다.


환호는 분노로 바뀌었다. 90년대 초반이 지나면서 구 동독지역 노동자들은 파업, 시위, 도로 점거 등 투쟁에 나섰지만, 점차 언론과 노동조합 등 사회의 모든 영역이 구 서독지역 헤게모니에 포섭됐다. 최근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을 맞아 독일 집권당은 구 동독지역이 구 서독지역의 70% 수준으로 발전했다며 자화자찬했는데, 이는 거꾸로 보면 30년이 지나도록 동서 간 지역 균열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가 여전히 사회주의자인 이유


베를린 장벽 붕괴는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와 소련 해체로 이어졌고, 나아가 ‘자본주의의 승리’와 ‘사회주의의 불가능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됐다. 그러나 이런 이데올로기는 동구 사회주의를 ‘유일하고 최종적인 사회주의의 완결판’으로 간주하는 편협한 시각이며,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모순 없이 작동한다고 볼 때만 타당하다. 현실에서는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에도 자본주의의 위기가 반복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반발로서 사회주의 이념과 새로운 좌파 정치의 실험이 계속 떠오르고 있다.


동독 집권당 SED의 후신인 DSP는 2007년에 사민당 탈당파, 녹색당 좌파세력과 연합해 “좌파당”을 결성함으로써 동독 지역당의 한계를 넘고자 했다. 최근에는 브레멘 지역에서 사민당,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해 주 정부를 이끌게 됐다. 구 서독지역에서 최초로 주 정부에 들어간 것이다. 사민당 지지율이 하락하자 당내 젊은 지도자층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BMW 같은 대기업을 집산화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등 급진화 바람이 불었고, 그간 경계대상이던 좌파에 손을 내민 것이다.


세계적으로 중도 좌‧우파가 약화되면서 한편으로는 극우 정치가, 반대편에서는 새로운 좌파정치가 등장했다. 미국에서조차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사회주의에 우호적인 여론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고,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는 상속세‧재산세 증액과 공적인 교육‧의료에 대한 요구가 전면에 등장해 트럼프와 ‘사회주의 논쟁’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물론 여전히 ‘사회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체제’라는 이데올로기가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또한 역설적으로 현실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욱 커지면서, 그 해결책으로 사회주의를 호명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물론 최근의 좌파 정치가 충분히 사회주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긴축재정 반대나 연금 지키기 등 방어적인 요구를 넘어, 체제의 모순을 지양할 전 사회적이고 지구적인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예컨대 극우 포퓰리즘의 온상이 된 난민 문제야말로, 자본주의 등장 이래 세계적으로 확장된 제국주의 문제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국경을 넘어 자본주의의 모순이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지금,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지금의 실험들은 실패와 한계를 넘어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30년 전 베를린 장벽 붕괴를 목도한 내가, 여전히 사회주의자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