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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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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1.04 18:18

대학, 수천만 원짜리 자양강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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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둘째 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 조국 사태 이후 대통령이 나서서 정시 확대를 언급하는 요즘, 수능은 지구상 가장 신성하고 공정한 시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수능과 대입에서 가장 고통받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변혁정치>가 수능을 치렀던, 또는 수능을 거부한 청년을 만나봤다.



Q. 수능이 코앞이잖아요. 다들 언제 마지막으로 수능을 보셨는지, 또는 보신 적 없으면 수능 당일의 경험을 간단히 나눠볼까요?


창준(공주교대): 저는 작년에 수능을 봤어요. 원래는 수시전형으로 가려 했는데, 떨어져서 정시로 갔어요. 작년 일이긴 한데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 그런지 옛날 같아요.

경민(인하대): 3~4년 전인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고요. 저도 수시는 다 떨어져서 정시로 대입을 한 경우에요.

피아(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저는 수능을 보지 않았고, 고등학교 3학년 초에 학교를 그만두고 나와서 수능을 안 치렀어요.

형진(동국대): 재작년에 수능을 봤는데, 저도 수시 6곳에 다 떨어져서 정시로 대학을 왔어요. 딱히 수능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게, 저는 수능 하나만 보고 입시를 준비하진 않았어요.



“너무 힘들고 억울한 경험이란 걸 깨달았어요.”


Q. 수능 당일, 특별한 경험이나 느낀 점은 없었나요?


창준: 죽고 싶었어요. 제가 수능 최저등급을 요구하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는데, 한 문제 차이로 최저등급을 못 맞췄어요. 다른 친구들은 다 수능 끝났다고 좋아했는데, 저 혼자 죽을상 짓고 있었어요.

형진: 2018학년도 수능이 1주일 연기가 됐었잖아요. 원래 예정됐던 날 전날에는 긴장도 되고 그랬는데, 1주일 연기됐다고 하니까 빨리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경민: 저는 수능 날 수능 끝나자마자 머리가 아파서 두통약 먹고 잤어요. 자고 일어나서 가채점해 보고 망했네, 어쩔 수 없지 했고.

피아: 고등학교 3학년 3월에 자퇴했어요. <투명가방끈>에서 제 사정을 들은 활동가가 대학입시거부선언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해줬어요. 그래서 수능 대신 광화문에서 대학입시거부 선언을 했어요. 광장에서 사람들이 왜 대학입시를 거부하고 싶었는지 발언하는데 너무 벅찼어요. 너무 힘들고 억울한 경험이란 걸 깨닫는 순간이었죠.


Q. 매달 100만 원씩 준다면, 다시 고3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피아: 학교 교문 들어갈 때부터 싹 다 검사하잖아요. 위아래 쓱 훑어보고, 넥타이 안 하면 별점 몇 점. 그리고 교사들이 학생들한테 무례하게 굴고, 함부로 반말하고, 너무 답답할 것 같아요.

형진: 두발규제 때문에 반삭발 정도로 머리를 잘랐고. 매를 맞거나 얼차려를 당한 적이 많았고. 학교 구조가 야자 감독 한 분이 복도 가운데 있으면 학생들이 좍 다 보였어요. 겨울에 점퍼를 입으려면 허가증을 받아야 했고. 교문 앞에서 학생들한테 금속탐지기를 댔어요. 핸드폰 잡으려고요.

창준: 절대 안 가요. 심신이 많이 피폐해졌거든요. 종일 학교에서 하는 모든 게 다 입시랑 연관된 것들 위주다 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거, 나는 어떤 사람인지가 희미해지는 느낌이더라고요.

경민: 학교가 엄청 보수적이었어요. 당장 겨울에 패딩을 못 입었어요. 무조건 코트만 입어야 해요. 지금은 입시제도를 한 번 겪고 벗어났고. 좋은 대학 가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 상태니까 (학교로 돌아가서) 청소년운동을 해보고 싶어요.


Q. 인권 침해나 억압, 학교도 다른데 공통된 경험이란 말이죠. 왜 그럴까요?


창준: 입시에 도움이 안 되면 쓸데없는 활동으로 치부하잖아요. 제가 독서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지도교사 선생님마저 이거 입시에 큰 도움 안 될 것 같은데 생기부에서 비중 줄여도 되겠냐는 말씀도 하시고.

피아: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폭력이 벌어지는 것도 문제죠. 예컨대 길 가는 사람한테 머리 확 치면서 ‘너 머리 그게 뭐야, 잘라와’ 이건 안 되는 일인데 학교에선 그게 일상이잖아요.

형진: 학교에서 학생들 기본권 무시하는 일이 많았는데, 입시 결과가 좋은 편이었고, 그래서 학부모들이나 고입을 앞둔 학생들에게 메리트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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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수천만 원짜리 자양강장제라고 하더라고요”


Q. 고등학생 시절에는 대입을 위해서 모든 게 유예되는데, 대학 입학 후에 내가 꿈꾸던 것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경민: 시험 보고 과제하고. 이런 건 내가 기대하던 대학의 환상이 아니고 지루한 삶의 연속이죠. 다른 학생들도 스펙, 취업. 고등학교 때처럼 막 달려가고 있는 거예요.

일동 : 맞아, 맞아.

형진: 스펙 쌓는 공장에 왔달까. 이번에 학교에서 행정학과, 법학과 경찰행정학과 학생 중에 고시공부반 같은 걸 만들겠다고 하더라고요.


Q. 이 정도면 도대체 왜 대학을 가야 하는가 생각이 드는데, 입시거부를 하신 입장에서 느끼는 게 많을 것 같아요. 입시거부를 하실 때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피아: 투명가방끈 활동하시는 분이 대학을 ‘수천만 원짜리 자양강장제’라고 했어요(웃음). 불안을 잠재우는 자양강장제 비슷한 거죠.


Q. ‘내가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이것 하나는 바꾸고 싶다’는 게 있을까요?


창준: 교사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뽑아서 학급 당 학생 수를 확 줄이고 싶어요. 5~6명으로. 학생들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형진: 모든 대학을 국·공립화하는 거예요. 대학을 나왔다는 게 어떤 성공의 척도가 되지 않는다면, 대학이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 같아요.

경민: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려는 분위기를 없애고 싶어요. 다들 나의 권력으로 내가 다녔던 선생들 찍어 누르기, 이런 것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웃음).

피아: 대학에 목매는 건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함이잖아요. 그래서 직업별로 소득이 큰 차이 안 나도록 맞추고 싶어요. 세상이 바뀌어야 교육이 바뀌고, 교육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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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늘 대화를 통해서 느낀 점이 있다면?


형진: 제가 너무 큰 것만 보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큰 것만 바꾼다고 작은 게 바뀌지 않고, 작은 것만 바꾼다고 큰 게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경민: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좀 지났지만, 그때 선생님들이 원망스러워요. 이런 경험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이라는 게 무엇일지, 좀 더 좋은 경험으로 남길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창준: 교육의 문제는 학교 내부만 건드려서는 바뀌지 않거든요. 사회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교육 개혁이든 뭐든 할 수 있죠.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지 깊이 있는 고민을 해보고 싶어요.

피아: 저는 사실 대학을 거부하신 분들을 많이 만나지, 대학생을 잘 접하지는 않거든요. 오늘 세 분 얘기해주신 말씀 인상적이었고. 왜 학교가 보편적으로 다 힘든지도 잘 들었고. 오랜만에 이런 얘기 꺼내서 즐거웠습니다.


한편, 피아 님이 속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서는 수능 당일인 11월 14일 13시 30분부터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2019년 대입수능 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들이 꿈꾸는 교육이 이 땅에 펼쳐질 그 날을 그려본다. 


입만 열면 청년정치인이든 언론이든 ‘청년’에 대한 얘기를 쏟아내는 세상이다. 호명된 객체가 아닌, 발화의 주체로서 청년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그들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이 사회를 바라보는 청년의 시각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