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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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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1.0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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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들의 

전경련 소환술


이주용┃기관지위원장



미리 말해두자면, 아래 인용문은 조선일보 사설로 실렸던 글이다.


“전경련의 위기는 자초한 결과다.… 이제 전경련은 낡은 패러다임에 묶여 양극화나 경제민주화 같은 새로운 이슈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각종 정권 주도 프로젝트에서 돈을 걷고 집행하는 수금기구 비슷한 존재로 전락했다.”


“전경련 해산 결단할 때 됐다”라는 제목이 붙은 이 사설은 2016년 10월 6일 자로 발행됐다. 10월 말부터 본격화한 촛불항쟁이 타오르기도 전이었다. 당시는 전경련의 K스포츠-미르재단 모금과 어버이연합 같은 보수우익단체 자금 지원 등이 밝혀지며 국정농단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물론 조선일보의 논조는 ‘전경련이 이제 재벌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발전적으로 해체하라’는 것이었지만, 우파의 입장에서도 전경련은 ‘용도폐기’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어 촛불이 불붙고 있던 12월,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온 삼성 이재용이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4대 재벌(삼성‧현대차‧SK‧LG)이 잇따라 탈퇴하면서, 전경련도 끝을 맞이하는 듯했다.


그로부터 만으로 3년이 지난 지금, 전경련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소생하기 어려울 것 같던 전경련을 부활시킨 건 정부‧여당이다. 지난 9월 25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이원욱과 정무위원장 민병두, 전 원내대표 홍영표 등 국회의원 10여 명이 “민주당 의원, 귀를 열다! 주요 기업 현안간담회”라는 이름의 행사를 열고 전경련을 찾았다. 전경련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이 전경련을 공식 방문해 기업 간담회를 갖는 것은 처음”이라며, 간담회를 요청한 것은 민주당 의원들이었다고 밝혔다. 이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은 더 가관이었다. 원내수석부대표라는 이원욱은 “정부가 민주노총 편이 돼서 일하는 게 절대 아니”라며 전경련이 쏟아낸 각종 규제 완화와 노동개악 정책과제 요구에 화답했다.


논란이 일자 이원욱 본인은 “전경련과의 간담회가 아니라 15개 기업과의 간담회였고, 장소가 전경련 회의실이었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간담회는 전경련 부회장 권태신과 전무 배상근이 공식 참석했고 그 부회장이 인사말까지 맡은 자리였다. 심지어 이 간담회에 참석했던 민주당 국회의원 가운데 5명(강훈식, 김병관, 민병두, 최운열, 홍영표)은 3년 전인 2016년 10월 17일 “전경련 해산 촉구 결의안” 공동 발의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이었다. 그때는 조선일보마저 전경련 해산을 거론할 정도로 비판적 여론이 압도적이었으니 그에 올라탔다가, 이제는 시간이 지났으니 슬그머니 다시 손을 잡으러 찾아간 셈이다.



밑밥 깔기


사실 9월 25일 간담회는 민주당이 집권 이후 ‘전경련’을 처음 찾아간 것이라 부각됐을 뿐, 정부‧여당은 그 전부터 밑밥을 깔고 있었다. 전경련 방문 1달 전인 8월 20일, 민주당 이원욱(9월 전경련과 간담회를 연 그 당사자다)을 비롯한 국회의원 7명이 ‘한국경제연구원’을 찾아 정책간담회를 진행했는데, 마치 국책기관 같은 명칭과 달리 이 연구원은 전경련이 설립한 산하기관이다. 당일 배석한 한국경제연구원 측 인사 8명 가운데 주요 고위직으로는 9월 전경련 간담회에도 등장하는 전경련 부회장과 전무가 포함됐는데, 이 전경련 부회장 권태신이 바로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을 겸하고 있다. 사실상 전경련과 간담회를 한 차례 먼저 한 것이나 다름없다(이 간담회 역시 민주당 의원들이 요청한 것으로, 행사 이름도 9월 전경련 간담회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의원 귀를 열다, 한국경제연구원으로부터 듣는다!”였다).


이 간담회에서 전경련 부회장이자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권태신은 일본과의무역갈등을 거론하며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으로 기업투자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일 한국경제연구원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한국경제 현황과 과제’를 제시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따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이로부터 이틀 뒤인 8월 22일 전경련이 자유한국당과 진행한 정책간담회에서 내놓은 “경제 살리기 정책과제 10선 개요”를 보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아래 표 참조). 요하자면 기업 세금 깎고, 규제 풀고, 노동유연화를 가속하면서, 노동권은 축소해 자본의 권한을 더 늘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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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정부‧여당이 전경련에 손을 내밀려는 시도는 몇 차례 더 있었다. 가령, 올해 3월 26일 청와대는 벨기에 국왕 국빈 방한 기념 만찬에 GS그룹 회장 허창수를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공식 초청했다. ‘GS그룹 회장’으로서가 아닌 ‘전경련 회장’으로 청와대 행사에 참석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이었다. 이보다 앞선 작년 11월 7일에는 “전경련 남북경제교류특별위원회” 창립회의에 민주당 중진의원이자 당시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던 송영길이 참석해 기조연설을 맡았고, ‘전경련이 기업인 방북단 모집을 맡아 달라’는 공문까지 전달했다. 적폐와 범죄의 온상이었던 전경련은 이렇게 슬금슬금 정부‧여당의 요청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전경련의 요구, 문재인 정부 정책이 되다


숨죽여 지내는 것 같던 전경련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점차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촛불항쟁과 대선을 치른 2017년, 전경련은 “환골탈태의 혁신”을 약속하며 고개를 숙이면서도 재벌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고자 적극적인 여론전과 정치권에 대한 건의를 이어갔다. <2017년 전경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경련은 △법인세 인상 불가 △총수 권한 제약 반대‧경영권 강화 수단 법제화 △비정규직(사내하청) 활용 불가피 △최저임금 대폭 인상 반대‧산입범위 확대 및 지역/산업별 차등 적용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유연화) △서비스산업‧화학물질 관련 규제 완화 등을 주장하며, 촛불항쟁의 여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재벌체제 청산과 비정규직 정규직화‧최저임금 대폭 인상‧노동권 강화를 요구하는 노동자 대중의 열망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2018년에 이르면 전경련은 한층 자신감을 얻은 모습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자신들의 요구를 문재인 정부 정책으로 현실화시켜낸 것이다. 예컨대 <2018년 전경련 사업보고서>에서 자신들 스스로 서술한바, 가령 총수 일가 지배권을 제약할 수 있는 재벌 지배구조 규제와 관련해서는 “2018년 하반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상법개정안 논의를 중단시키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노동 분야에 대해서도 주52시간제 시행 관련 “특별연장근로 허용, 휴일근로 중복할증 불허, 근로시간 특례업종 축소 최소화 등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수차례 건의”해 결과적으로 작년 2월 국회 환노위가 이 요구들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근로기준법 개악안을 통과시켰다. 주52시간제 도입 유예(계도기간 연장)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도 요구대로 처리됐거나 여‧야가 입법 추진에 합의했다. 또한 전경련은 기업의 투자에 대한 감세 혜택 요구도 “<2018년도 세법개정>에 상당 부분 반영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만족스럽게 평가했다.



자유주의 정부와 재벌의 거래


“(2002년 말 당선한 노무현 정부의) 개혁작업은 불과 6개월 만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003년 상반기 경기가 하강하자 정권은 초조해하며 재벌에 손을 내밀었다.… 2004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이 다가오는데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재벌에 투자를 ‘읍소’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지난 대선이 치러지던 2017년 4월 26일, 한겨레신문이 대선 의제 연속기획 중 하나로 ‘재벌개혁’을 다룬 기사(“재벌개혁, 참여정부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에 서술된 내용이다. 노무현 정부가 주창한 재벌개혁이 왜 실패했는지 쓰고 있는데, 현재 문재인 정부의 행보와 다를 게 전혀 없다. 2017년 정점을 찍은 설비투자가 2018년부터 고꾸라지고 미‧중 무역갈등이 본격화하면서 한국경제가 둔화국면에 접어들자, 문재인 정부는 노골적으로 경제정책방향을 우선회하며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재벌에 대한 투자 요청, 그리고 노동법 개악에 나섰다. 2019년 연간 경제성장률이 2% 달성도 어렵다는 게 기정사실화된 지금, 정부‧여당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그 전에 어떻게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에 급급하다. 그렇다고 자유주의자들이 경제위기에 대응해 대자본의 이윤을 과감히 사회화해서 노동자 민중의 삶을 지키는 데 쓸 리도 없다. 결국 이들에게 남은 길은 하나, 돈줄을 쥐고 있는 재벌에게 ‘투자 좀 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중의 눈치도 보이고 하니 전경련은 우회하되 삼성‧현대차 등 주요 재벌그룹을 따로 만났지만, 만약 전경련이 2017년 스스로 발표한 ‘혁신안’처럼 명패를 “한국기업연합회”로 바꾼다고 해보자. 정부‧여당 인사들이 ‘과거와 단절하고 환골탈태한 재계 대표 단체의 출범을 환영한다, 함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자’는 환영과 구애의 메시지를 보내리라는 게 과연 과도한 짐작일까. 정치권력과 자본의 결탁은 꼭 뇌물을 주고받는 추잡스러운 거래를 해야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총선 전까지 남은 6개월간 정부‧여당은 필사적으로 재벌들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더욱 큰 규제 완화와 노동개악을 대가로 건네려 할 것이다. 정부 노동개악에 맞선 싸움이 재벌체제 청산 투쟁과 결합되어야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