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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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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1.04 19:09

우리 모두는 김지영이다


송준호┃기관지위원회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지난 10월 23일 개봉했다. 개봉 닷새 만에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훌쩍 넘기고 좌석 판매율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 관객 손익분기점 160만 명에 한층 다가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동명의 원작소설이 출간될 당시부터 있었던 ‘페미니즘 조장 소설’이라는 누명과 억지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폭발적이고 보편적인 반응


조남주 작가의 동명 원작소설은 2016년 10월 첫 출간 이래 한국에서 누적 판매 120만 부를 넘기며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해 봄에 있은 강남역 살인사건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의 일이었다. 여성을 향한 혐오와 차별, 같은 공간 다른 공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82년생 김지영』은 출간되자마자 설설 끓어오르는 찌개처럼 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듬해 5월 故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소설을 선물하면서 전한 “82년생 김지영을 안아달라”는 말이 화제가 됐고, 2018년에는 한국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가 이 책을 언급하면서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 소설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다.


해외에서의 반응도 폭발적으로, 현재까지 17개국의 출간이 확정됐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2월 번역된 이후 해외 도서로는 이례적으로 출간 3일 만에 완판을 기록하며 현재까지 14만 부의 누적 판매수를 기록하고 있다. 대만의 최대 전자책 사이트 ‘리드무’ 전자책 부문 1위, 중국의 가장 큰 온라인 서점 ‘당당’에서도 6만 5천 부가 팔리며 소설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 각국의 반응도 뜨겁다. 각계각층에서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다.”, “이 책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무서울 정도”, “아시아 여성 필독서”라는 후기가 줄을 이었다. 매우 한국적인 동시에 매우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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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테러” VS “영혼 보내기”


이렇듯 원작 소설을 향한 세계적인 호평에도 영화는 개봉 전부터 평점 테러, 명대사 조작, 사이버불링, 청와대 청원 등 각종 백래시*의 대상이 되었다.


네이버의 ‘네티즌 평점’을 살펴보면, <82년생 김지영>의 성별 만족도는 남성 2.55점, 여성 9.52점으로 성별 간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를 관람하고 남기는 ‘관람객 평점’에서는 남성 9.26점, 여성 9.58점의 고르고 높은 평가를 보인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 한국의 <걸캅스> 등이 페미니즘 영화라는 이유로 평점 테러를 당한 바 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의 명대사를 허위로 기재하는 모습도 확인된다. 주인공 김지영(정유미 扮)의 대사에는 “나 오늘 얘 보느냐고 힘들었으니깐 집안일 좀 해”, “저 그거 좀만 싸주시면 안 돼요? 우리 애 먹일 건데?” “숨 쉬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쿵쾅쿵쾅” 등 1,000건 이상이 허위로 등록되어 있다. 이른 바 된장녀·김치녀·맘충으로 표현되는 여성 혐오의 근거 없는 비방을 제멋대로 창조해 덧씌운 결과다.


한편, 가수 아이린, 배우 서지혜는 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온갖 악플과 사이버불링에 시달렸고, 주인공인 김지영 역을 맡은 배우 정유미는 하차 요구를 받았다. 심지어 작년 9월 영화화 소식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화를 막아주세요”, “정유미의 영화 ‘82년생 김지영’ 출연을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편, 일련의 거대하고 집요한 반동을 겪으며 ‘영혼 보내기’라는 새로운 관람 문화가 만들어졌다. 여성이 만들거나 여성 중심의 영화가 흥행성을 인정받아 앞으로도 제작될 수 있도록 비록 몸은 참여할 수 없어도 마음이나마 보태겠다는 일종의 소비장려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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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라는 보통명사


175페이지 분량의 비교적 짧은 소설은 정신과 의사의 회고 내지 사례보고서Case Report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도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느슨한 액자식 구성을 이룬다. 김지영이 타인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이상행동을 보이면서, 그의 탄생부터 학창 시절, 취직, 직장생활, 결혼과 출산에 이르는 개인의 일생을 쫓는다. 두 작품 모두에서 김지영은 특별하게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람이다. 이제 82년 4월 1일생 김지영은 만우절 거짓말 같은 인생을 산 세상의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보통명사다. 세상의 모든 김지영을 위해서 “공평한 선물처럼 드문드문 일정하게 눈이 내”리기를. 우리 모두 김지영이 되는 날, 비로소 고유명사가 된 김지영이 우리 곁에 서서 꽃잎같이 예쁜 눈을 맞을 것이다.



* backlash. 성평등 및 젠더 운동 등의 흐름에 반대하는 운동 및 세력.

** 네이버 영화 사이트, 2019년 10월 30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