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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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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뻬뜨로브나 김

(김애림 1885~1918)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자,

극동에서 조직을 건설하다


노동자역사 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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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왼쪽이 김알렉산드라.



김 알렉산드라 빼뜨로브나는 1885년 함경도 경원에서 홍수와 기근을 피해 러시아로 이주한 조선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어릴 적에, 동청철도 통역관으로 일했던 아버지 김두서(표뜨르 김)는 1902년에 사망했다. 아버지의 친구인 스탄케비치의 후원*으로 블라지보스또끄의 고등교육기관에 다녔다. 학창 시절 혁명 와중인 1905년에 사회주의 운동을 접한 그녀는 1907년까지 지하 혁명 활동에 종사했다. 그녀는 “몸이 야위고,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었으며, 쾌활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세계대전 발발 후 1914년 말 블라지보스또끄 한인민회의 요청으로 공업지대인 우랄 페름지방으로 파견돼 중국어와 조선어 통역사로 일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삶이 마감될 극동에서의 조직 활동 기반을 얻었다. 당시 그곳에는 이동휘가 북만주에 세운 대전학교 학생들도 와 있었는데, 이들은 연해주와 북만주를 기반으로 활동한 혁명가 이동휘와의 연결 끈이 되었다.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던 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을 받아내고, 여비를 마련해 귀향시키는 등 노동대중의 신뢰를 깊이 받은 그녀는 1916년 볼셰비키의 예카쩨린부르끄위원회와 관계를 맺었다.


1917년 2월 혁명은 정치적 공간을 확장시켰다. 그녀는 이 시기에 우랄 지역의 당 조직을 합법화시키고 곳곳에 당 세포를 조직했다. 이인섭, 오성묵과 함께 우랄노동자동맹을 조직해 우랄 지역 파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1917년 초 볼셰비키에 정식 입당, 한인으로서는 최초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원이 된 그녀는 왕성한 조직 활동을 펼쳐나갔다(△1917년 10월 5일 블라지보스또끄에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극동지방대표자회의 참석 △하바로프스끄 조직 서기·회계 담당, 당 조직 강화 △11월 독일 간첩 혐의로 수감 중이던 이동휘 석방에 일조 △1918년 건설된 극동인민위원회 외무위원, 한인으로서 신생 혁명정부 최고위직 △4월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으로 일컬어지는 한인사회당 창당에 산파 역할).


하지만 혁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18년 6월 체코군단에서 시작된 반혁명 봉기는 미국·일본·프랑스의 개입을 불러왔고, 8월 하순 러시아 극동의 하바로프스크에서는 백군과 일본군이 군사적 공격에 나섰다. 극동인민위원회 정부는 적위대를 구성해 방위전에 나섰고, 당시 창립한 지 채 석 달이 안 된 한인사회당도 100여 명의 조선인 적위대를 구성해 함께 했지만 하바로프스크는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9월 2일 백군에게 점령되고 만다. 9월 16일(9월 25일이라는 기록도 있다) 아무르강이 흐르는 ‘죽음의 골짜기’ 우조스 언덕에서 김 알렉산드라는 그의 동지들 10여 명과 함께 처형됐다.



* 1905년 후원자의 아들과 결혼해 아들을 하나 두었지만 남편의 방탕한 생활로 1908년경 이혼, 그 후 사회주의 운동을 함께한 오 바실리와 재혼했다.


** 마뜨베이 찌모피에비치 김, 「일제하 극동시베리아의 한인 사회주의자들」, 역사비평사 1990. 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