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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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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2.02 19:46

전쟁을 내전으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패전주의


정초라┃서울



승전국의 병사들과 패전국의 병사들은

너희가 만든 그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죽어야만 얻을 수 있는 영예를 얻었고

다쳐야만 얻을 수 있는 명예도 얻었지

폐품이 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그 고마운 자유도 얻었지

승전국의 병사들과 패전국의 병사들은

너희가 만든 그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너희가 만든 그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 정윤경 작사·작곡, “시대” 중



‘전쟁을 내전으로!’

레닌의 이 구호는 무시무시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 핵심은 맹동적 폭력이 아니라 계급적 원칙이다. 기회주의와 사회 배외주의*에 맞선 결연한 선전포고이자, 자본주의가 초래한 야만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궐기적 의식이다. 국경으로 분열된 세계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단결을 가로막고 각국 지배계급의 이해에 노동자계급을 종속시키는 분열 책동에 맞선 계급적 단결의 호소다.



1914년, 세계대전: ‘자본주의의 최고 형태’, 그 정점에서


1914년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모든 자본주의 열강은 식민지 쟁탈 전쟁에 나섰다. 이 무렵, 한때 ‘혁명’을 외쳤던 맑스주의자들 중 여럿이 조국방위주의에 경도되어, 자국의 제국주의 정부와 결탁했다. 국제 노동자계급의 이해보다 자국 지배계급의 이해에 복무한 것이다. 이런 배경 아래 제2 인터내셔널(19세기 말 결성된 국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연합체)이 붕괴했다. 전쟁 앞에서 ‘중립’을 선언한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자 카우츠키 등 기회주의자들은 국제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에 대한 배반을 정당화하기 위해 맑스를 아전인수 격으로 취사선택하고 공문구만 남발하면서, 계급에 대한 배반을 ‘평화’로 호도했다.


전쟁 시기, 레닌은 모든 전시국가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를 선전‧선동하는 ‘혁명적 패전주의’를 주창했다.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도 레닌은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각국 노동자계급에게 자국 지배계급을 상대로 한 ‘계급 전쟁’을 선동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레닌과 볼셰비키는 ‘현실감각 없는’ 급진 분파라며 공격당하고 고립되기도 했다. 하지만 레닌은 사회 배외주의자들과 전쟁 앞에 갈팡질팡하는 기회주의자들에 맞서 투쟁을 지속했다. 볼셰비키는 1915년 9월 볼셰비키 중앙위원회가 위치한 스위스의 짐머발트 회의에서 반전反戰주의 좌파 블록을 형성했다. 그리고 ‘평화를 위한 투쟁’을 호소하는 ‘혁명적 패전주의’ 노선을 견지해나갔다.



거짓 ‘통일’이 낳은 분열의 궤변을 

‘맑스의 방법’으로 대체하기


기회주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레닌은 한때 ‘러시아 맑스주의의 아버지’라고도 불렸던 플레하노프 같은 인물이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는 것을 거세게 비판했다. 플레하노프는 지배계급에 맞선 내란 선전이 ‘유해한 공상’이라고 주장했는데, 결국 ‘계급적 단결’이 아니라 ‘지배계급으로의 단결’을, ‘계급 전쟁’이 아니라 ‘타국 노동자계급에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을 호소한 것이다. 레닌은 기회주의자들이 “‘러시아 분열’에 대해 눈물겨워 하면서 ‘단결’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위선적인 모습에 대해 “이런 궤변을 변증법으로, [맑스의 방법으로] 대체해야 한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렇다면 ‘맑스의 방법’은 무엇일까?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공산당 선언>의 구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진실”이었다. 레닌은 기회주의자들이 바로 그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조국방위주의로 지배계급의 이해에 복무한 것이 문제라고 보았다. 자국 지배계급과 ‘분열’함으로써 세계 노동자계급과 ‘단결’하는 사회주의의 길을, 기회주의자들은 완전히 뒤집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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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7년 3월 13일, 상트페쩨르부르크에 정박한 오로라Аврора함의 선내에서 수병들은 장교들을 학살하고 붉은 깃발을 게양한 뒤 겨울궁전 습격의 신호탄을 발포하여,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구호를 처음으로 실천으로 옮겼다. 노동자 대오와 합류하는 승조원들의 모습. [출처: RT 1917Live]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분단시대의 계급 인식”- “혁명을 통해 평화로!”


레닌이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것은 당시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배경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 계급적 원칙을 견지하며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된 제국주의 전쟁을 뒤엎고, ‘혁명전쟁’을 ‘정치의 연장선’에서 주창한 것이다.


그렇다면, 1914년과 2019년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현재 한반도는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체결 이래 지속적인 냉전 상태다. 지난 66년간 세계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철갑까지 두르며 모순을 극대화했고, 우리는 계급전쟁으로 나가지 못했다. 레닌이 지금 한반도의 상황을 본다면, 기만적인 ‘통일’이 아니라, 계급적 원칙을 지켜내는 결기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을까? 누구와 단호히 분열하고, 또 누구와 통일하고 단결할 것인지, 지금 우리에게는 계급적 관점이 - “분단시대의 계급 인식”이 - 절실하다.



“군인들이여! 공장과 사무실의 모든 노동자들이여! 혁명의 앞날과 민주적 평화의 앞날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함께 읽을 레닌의 글]

- <유럽 전쟁에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임무(1914)>, 레닌전집 58권(“마르크스”), 양효식 역, 아고라, 2017

-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1915)>, 레닌전집 59권(“제2 인터내셔널의 붕괴”), 양효식 역, 아고라, 2017

- <기회주의와 제2 인터내셔널의 붕괴(1915)>, 레닌전집 60권(“사회주의와 전쟁”), 양효식 역, 아고라, 2017



* 사회 배외주의: ‘조국방위’라는 표어를 내걸고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면서, 겉으로는 맑스주의를 거론하며 자신들의 배반을 은폐하던 우익 사회민주주의.

** 1917년 10월 25일 2차 전全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 제출된 선언 중.



* 무엇을 할지 묻는다면 레닌 ┃ 레닌이 낡았다고 생각한다면, 레닌의 글과 시대를 직접 읽어보자. <레닌전집 읽기 모임>을 바탕으로, 21세기 한국에서 레닌을 읽는 이유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