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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12.02 20:40

이슈┃홍콩의 저항

대학가의 ‘대자보 전쟁’

청년들은 

왜 저항하고 연대하는가


윤종훈┃전남(전남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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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남대학교 에브리타임]



홍콩 경찰의 폭력 진압이 점차 강도를 높여 가면서 한국에서도 홍콩 시위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움직임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동시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레논 월*, 현수막이 중국인 유학생들에 의해 수난을 겪으면서 대학마다 한국인 학생과 중국인 유학생 간의 '대자보 전쟁'이 벌어졌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등 십여 곳이 넘는 학교에서 홍콩 시위 지지 현수막‧대자보가 훼손되었고, 한국외대에서는 ‘학내 구성원의 안전을 지키고 면학 분위기를 조성한다’라는 미명하에 외부단체의 홍콩 시위 관련 대자보 게시를 제한하겠다고 밝힌 뒤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모두 철거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민주화의 성지’라고 불리는 광주의 전남대학교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지난 11월 14일 학내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현수막이 붙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모두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찢기고 난도질당했다. 이튿날인 15일에는 대자보가 찢긴 자리에 레논 월이 설치됐다. 그러나 설치를 마치기 전부터 중국인 유학생들이 모여들어 거칠게 항의했고, 설치가 완료된 후에는 욕설을 늘어놓으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상황이 격화되자 대학본부 학생과에서 중재하겠다고 나섰지만 “누구나 이런 걸 할 수 있어도 그 방식은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레논 월 철거를 은근히 종용했다. 학교 당국이 앞장서 학생들의 민주적 의견 개진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어서 중국인 유학생회실에서 중국인 유학생들과 레논 월 부착 학생들 간의 대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은 “홍콩은 1997년 중국에 귀속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배반한 ‘폭동’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결국 레논 월을 게시한 학생들이 경찰에 재물손괴 혐의로 수사를 의뢰하고 훼손된 대자보와 현수막은 전남대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홍콩 시위를 향한 학생들의 관심은 여전히 캠퍼스 내에서 뜨거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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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남대학교 에브리타임]



청년들의 저항과 연대


국내 대학가에서 타국의 시위에 관심을 두고 전폭적인 지지와 연대 메시지를 보내는 사례는 흔치 않다. 홍콩에서의 저항이 국내 대학가로 확산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홍콩의 상황을 알기 쉽게 정리한 카드뉴스와 영상뉴스는 홍콩 민중이 저항의 주체로 우뚝 서 있음을 보여줬으며,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시위 현장의 격렬함은 홍콩 당국이 저항을 얼마나 잔혹하게 탄압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불과 3년 전 촛불항쟁으로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최고 경제 권력자 이재용을 구속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는 국내 대학생들에게, 경찰의 폭력 진압에 피 흘리는 홍콩 학생들의 모습은 한국에서의 지난한 투쟁의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또한 광장에서의 외침이 사회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음을 체감한 한국의 대학생들이 국제적 연대를 통해 홍콩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함께 분노하며 행동한다면, 홍콩 시위에 새로운 불씨를 지피게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국내의 홍콩 시위 지지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현재 홍콩의 시위는 청년‧학생이 주도하는 양상이다. 홍콩대학이 지난 9월 12곳의 시위 현장에 참여한 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위 참가자의 절반 정도가 2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위에 가장 많이 참여한 사람들은 20세에서 29세 사이의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로 전체 시위대의 46.3%를 차지했으며, 참가자의 75%가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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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남대학교 에브리타임]



저항의 밑바탕엔 불평등이 있다


홍콩의 저항은 민주화를 요구함과 동시에 불평등이 만든 절망적인 현실을 바꿔내고자 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홍콩의 올해 최저임금은 3.75 홍콩달러(11월 25일 기준 한화로 5,636원)로 월급 중간값은 270만 원 정도에 불과한 반면, 집값은 평균 15억 원 수준이다. 1997년 반환 이후 중국에서 투기자금이 몰려들면서 부동산값이 폭등했는데, 집값 폭등은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도 이어져 홍콩인의 평균 주거면적은 1인당 161제곱피트(약 4.5평)이며 극빈층의 경우 1인당 주거면적은 50제곱피트(약 1.4평)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한 탓에 홍콩의 서민들은 임차료가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으로 몰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구하기 어렵다. 홍콩의 공공임대주택 입주 지원자 수는 27만 명에 달하지만, 입주하기까지 평균 대기기간은 5.1년에 달한다. 게다가 중국 자본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청년들의 일자리 경쟁 역시 더욱 치열해졌다.


저임금과 주거 빈곤, 일자리 부족은 비단 홍콩의 청년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청년들 역시 저임금‧장시간의 불안정 노동,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로 대표되는 열악한 주거 환경, 높은 취업 문턱을 넘기 위한 스펙 경쟁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구조적 위기를 드러낸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상, 홍콩과 한국의 청년‧학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홍콩의 오늘은 곧 한국의 오늘인 것이다. 홍콩 시위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자본에 맞선 ‘계급적 단결’로 만들어나가자. 홍콩 민중이 분노한 기저에는 자본주의가 낳은 극심한 사회 불평등이 있다는 것을 조명해 나간다면, 국경을 초월해 지배계급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계급투쟁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 레논 월: 체코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의 거점이 된 프라하 소재 레논 월을 본따 홍콩 시위 참가자들도 직선제 실시 등 민주화 요구를 담은 포스트잇을 붙이는 벽을 만들고 ‘레논 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 대학가에서 학생들은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의미로 레논 월을 세워 연대 메시지를 붙이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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