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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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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홍콩의 저항

‘본토 vs 홍콩’을 넘어

억압과 지배자들에 맞선 싸움으로


이주용┃기관지위원장



“[직선제를 실시하면] 홍콩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한 달에 1,800달러[약 190만 원]도 못 버는 사람들이 선거를 지배하게 된다.”


지난 2014년, 당시 홍콩 행정장관이었던 렁춘잉이 외국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선제에 반대하며 내뱉은 말이다. 이때 홍콩 시민들은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경찰이 최루액을 뿌리자 시위대가 우산을 펼쳐 막으면서 “우산 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 정부가 홍콩에서의 온전한 직선제를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렁춘잉은 앞의 인터뷰에서 ‘시위대는 중국 정부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덧붙였다.


이 발언은 두 가지 사실을 드러냈다. 첫째, 홍콩인의 절반이 저임금에 허덕인다는 것. 둘째, 홍콩과 중국의 지배자들이 홍콩 노동자계급을 경멸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올해 홍콩의 저항이 다시 불타오른 지 반년째다. 투쟁을 촉발한 계기였던 송환법(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것을 허용해,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세력을 압송할 수 있게 함)은 저항에 밀린 홍콩 당국이 결국 철회했지만, 시위 참가자들은 행정장관 직선제 등 민주주의 요구를 앞세워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대중이 자신의 대표자를 직접 선출하겠다는 요구는 그 자체로 마땅히 지지받아야 한다. 더욱이 홍콩 저항의 기저에는 심각한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배경에 중국의 지배자들과 홍콩 자본가들의 결탁이 뿌리내리고 있다.



중국 지배자와 홍콩 재벌의 동맹


홍콩은 세계적으로 가장 불평등한 곳 중 하나다. 인구의 1/5이 빈곤층이고, 소득 불평등 지표인 ‘지니 계수(0~1 사이의 숫자 가운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는 2016년 0.539를 기록해 미국과 중국보다도 높다. 특히 홍콩의 주택 문제는 심각한 수준으로, 많은 서민과 청년이 폭등한 집값 때문에 ‘관에서 산다’고 표현할 정도로 비좁은 쪽방에 거주한다. 여기에는 홍콩을 지배하는 자본가, 특히 부동산 재벌들의 투기가 영향을 미쳤다. 홍콩 최대 갑부 리카싱 역시 부동산 재벌이다. 이들은 계열사를 통해 다른 산업도 장악하고 있다.


이 자본가들은 정치권력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데, 홍콩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에 따르면 행정장관을 간선으로 뽑는 1,194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부동산 개발업자들을 ‘직접’ 대표하는 인원만 96명이었다(2017년 기준). 7백만 명 넘는 홍콩인 가운데 극히 소수인 부동산 자본가들이 거의 10%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다른 선거인단 상당수도 기업 측 인사나 의원 등 정치인으로 구성된다). 이들의 계열사 등 관련 산업을 대변하는 선거인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중국 정부는 19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의 일환으로 홍콩과 인접한 선전시 등 남부 해안인 광둥성 일대를 경제특구로 개발하며 홍콩의 자본가들과 손을 잡았다. 한편으로는 투자를 끌어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홍콩 반환 이후에도 안정적인 자본 축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SCMP의 표현을 빌리면, “[홍콩] 부동산 재벌은 베이징의 주요한 정치적 동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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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8일, 홍콩이공대에 갇힌 시위대를 구출하기 위해 대학으로 향하던 시위대를 경찰이 연행하고 있다. [사진: 장진영]



‘서방의 술책’?


중국 정부는 홍콩 시위의 ‘배후’에 서방 국가들이 있다고 비난한다. 물론 홍콩의 운동 속에는 서구 자본주의식의 자유민주주의를 추종하는 흐름도 있다. 그러나 7백만 인구 중 1백만~2백만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극심한 물리적 폭력 앞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몇 개월째 목숨을 건 싸움을 이어가며, 무엇보다 그들의 민주주의 요구와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정당하다는 점을 볼 때, 이를 ‘서방의 술책’으로 모는 것은 절실한 대중적 저항을 왜곡하는 것이다.


한편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이므로 그에 대한 저항은 운동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민중이 대표자를 선출하고 언제든 소환한다는 게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한 핵심적인 정치 원칙 중 하나다. 중국 정부는 이를 전면 거스르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인바,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중요한 조건이지만 이를 통제하고 운영할 권력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핵심 문제다(소유구조 면에서도 중국은 80년대부터 사유화를 대거 도입해 공업생산에서 국유기업 비중이 90년대에 이르러 1/3 수준으로 줄었다*). 중국 노동자들은 생산을 통제하는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계약관계에 따라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처지다. 지난해 선전시 소재 용접기계 제조사 “자스커지” 투쟁에서처럼, 민주노조 건설조차 탄압하고 잡아가는 게 지금의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홍콩의 저항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홍콩과 맞닿은 광둥성은 중국 최대 산업거점으로, 각지에서 밀려온 1억 명 넘는 인구와 노동자가 밀집한 곳이다. 중국 노동자 투쟁을 소개하는 “중국 노동 회보China Labour Bulletin 파업 지도를 보면, 2019년 1~11월까지 벌어진 1,250여 건의 파업과 쟁의행위 가운데 광둥성이 130건으로 가장 많았다. 지금은 산발적인 투쟁들이지만, 홍콩의 저항이 승리의 기운을 드러내면 이 지역 노동자들이 억압에 맞설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그만큼 중국 정부는 이 시위를 무너뜨리려 하겠지만, 홍콩의 불씨를 중국 본토 노동자들과 함께 나눌 때 힘은 훨씬 커지고 그때 홍콩의 승리도 가능할 것이다. 억압에 맞선 투쟁을 확산하기 위해, 홍콩의 저항자, 중국의 노동자들과 함께 어깨를 걸자.



* 이정구,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 경제>, 《마르크스주의 연구》 2006년 제3권 제1호에 실린 중국통계연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