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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사회주의자의 눈으로 본 2019년

2019년을 뜨겁게 달군

여성들의 투쟁


지수┃사회운동위원회



‘여성들의 투쟁’으로 쟁취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자그마치 66년 만이었다. 2019년 4월 11일은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끌어낸 역사적인 날이었다. 사회적 낙인과 처벌을 감수하며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고 투쟁한 수많은 여성, 그리고 여성의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활용했던 국가에 맞서 함께 싸운 많은 이들의 성과였다. 헌재의 판결로 낙태죄의 위헌성을 확인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형법상 낙태죄 조항 완전 삭제, 즉각적인 유산유도제 도입,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의료 접근권, 피임 접근성과 포괄적 성교육 등 남은 과제가 산적하다. ‘처벌 기준의 변화’가 아니라 처벌과 낙인을 완전히 철폐하는 싸움, 국가 통제에 놓였던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되찾는 싸움은 쉼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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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일터, 질 좋은 일자리를 일궈낸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2019년 울산에서는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안전점검원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100일이 넘도록 진행됐다. 가스 안전점검을 맡은 여성 노동자가 감금과 성추행을 당하고 자살까지 시도한 사건은 여성 노동자들을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만들었다. ‘2인 1조’ 안전점검 시스템 도입을 요구한 이 투쟁은 ‘가구 방문 노동자’들의 안전한 일터에 대한 권리를 사회적으로 각인시켰고, 고객의 성희롱을 방지하는 ‘안전한 노동환경 구축’이 사업주의 의무임을 인식시켰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2019년을 가장 뜨겁게 달군 여성 노동자 투쟁이었다. 이 투쟁은 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대책’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싸움이고, 여성도 비정규직이 아닌 좋은 일자리에서 일할 권리가 있음을 선포하는 ‘여성 일자리의 질을 바꾸는 투쟁’이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이 ‘톨게이트 수납 업무는 없어질 일자리’ 운운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없어질 일자리는 모두 여성 일자리인지’, ‘성차별적 구조조정의 희생양은 왜 항상 여성 노동자여야만 했는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인정, 

이젠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다!


2018년 미투 운동이 촉발한 여성들의 외침은 2019년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대법원 승소를 끌어냈다. ‘위력은 존재했지만 행사되지 않았다’, ‘피해자답지 않다’는 1심의 왜곡된 잣대를 깨고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임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가해자 중심적 판결로 가득한 사법부의 변화는 요원하다. 비뚤어진 이 사회의 프레임을 바꾸려면 앞으로 더 많은 선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강간죄 개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다. 2019년 ‘폭행 또는 협박’을 조건으로 한 현행 강간죄 성립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현행 규정은 ‘피해자는 있되 가해자는 없는’ 모순적인 상황을 양산하고 있다. 이제 피해자에게 ‘어떻게 죽을힘을 다해 저항했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가해자에게 ‘어떻게 동의를 구했는지’, ‘무엇을 근거로 동의 여부를 판단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특히 올해 여성 연예인들의 잇따른 죽음을 통해, 성을 상품화하는 이 야만의 자본주의가 얼마나 여성에게 폭력적인지, 성범죄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어떻게 삶을 견디고 있는지 너무나 처절하게 확인했다. 성차별적 구조로 업무상 위력과 성별 권력을 동시에 쥐여준 사회, 그 사회가 만들어낸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성폭력의 위협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없었다.



돌봄‧가사노동의 국가책임, 나아가 

가사노동의 가치 인정으로


돌봄 서비스를 정부‧지자체가 직접 운영하고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 역시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구상은 2019년 ‘사회서비스원’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실의 변화는 너무나 미미하다. 사회서비스원은 직영 시설 자체가 턱없이 적고, 돌봄 노동자 처우개선 규정조차 없다. 사회서비스원을 정상 궤도에 올리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사회서비스원의 공적 책임과 권한을 명시한 법 제정)조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제도와 예산의 뒷받침 없는 유명무실한 사회서비스원이 국가 책임 돌봄 서비스를 수행할 리 만무하다. 돌봄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역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사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최근 가사노동 알선 플랫폼 업체가 등장하면서 그녀들의 노동은 더 분절화됐고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됐다. 2년 전 발의된 가사 노동자 노동권 보장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사이, 정부는 가사 서비스 플랫폼 업체 “홈스토리”가 신청한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 신청을 수용해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를 조건으로 가사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을 허가했다. 근로기준법 적용이라는 최소한의 조건조차 허용하지 않는 정부와 자본의 태도는, 여성이 수행하는 가사노동을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의 재생산 구조와 연결돼 있다. 가사 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 투쟁과 가사노동의 가치 인정 투쟁은 그렇게 맞닿아있다.


이제 돌봄‧가사노동의 공공서비스로의 전환과, 돌봄‧가사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직접고용 책임을 요구하자. 돌봄‧가사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과 함께, 가사노동의 가치 인정 투쟁으로 나아가자. 가려져 있던 노동을 가시화하고, 재생산의 책임이 가족(그중에서도 여성)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에 있음을 분명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