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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국가가 만들어 낸 예견된 살인

전북 완주 ASA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


홍현진┃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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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9일, 전북 완주 소재 자동차 휠 생산업체인 ASA에서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 ASA라는 회사는 2019년 깃발을 올린 민주노조를 한창 탄압하고 있던 사업장으로, 이번 사망 사고 역시 그 배경에는 사측의 악독한 노조파괴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타이어의 자회사로 출발한 ASA는 한국지엠과 쌍용자동차에 자동차 휠을 납품하고 있으며, 전남 광주에 본사를 둔 업체다. 전북 완주와 김제, 충남 금산 등 3개의 법인으로 분리돼 있지만 실제로는 사용자 1명(대표이사 유동기)이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9년 8월 1일, ASA 완주공장 노동자들은 주 52시간 노동제 적용을 빌미로 한 사측의 임금삭감과 일상적인 현장 갑질, 인원 감축 협박 등에 맞서 스스로 권리를 사수하기 위해 노조를 설립했다. 그런데 노조 설립 후 보름도 지나지 않아 사측은 지회장, 사무장, 부지회장, 수석 부지회장 등 4인을 김제공장과 광주 본사로 부당 전직‧전보 처리했다. 게다가 현장 조합원들에게는 ‘폐업하겠다’고 협박하며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


ASA 사측은 과거 2007년에도 충남 금산공장에 노조가 설립되자 2009년 공장을 폐업한 후 노동자들을 전부 해고시킨 노조파괴 전적을 보유한 사업장이다. 이번에도 사측은 신생 민주노조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면적인 탄압에 나섰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노조창립 보고대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노조 간부들에게 4천여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회장 등 간부 4인 해고와 조합원 2인에 대한 3개월 정직 등 징계를 남발했다.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 전북지부의 교섭요구 공문(8월 19일), 전북 지방노동위원회의 교섭 공고 부착 시정명령(9월 9일)과 수시근로감독에도 불복하며 모든 교섭 절차를 무시하다 뒤늦게 교섭요구사실 공고를 부착했다(9월 30일). 하지만 이때는 이미 한국노총을 상급 단체로 하는 다수의 어용노조를 조직한 뒤였다. 사측은 끝내 어용노조를 대표교섭노조로 인정했다(11월 8일).



노조파괴의 희생자, 이주노동자


이는 11월 중순 금속노조 전북지부 ASA지회가 입수한 ‘노조파괴 시나리오’ 그대로의 수순이었다. 지노위 시정명령과 노동부 근로감독이 있어도 강제력이 없어 시간을 끌 수 있는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절차의 허점을 악용한 전형적인 노조파괴였다. 또한 노동조합 파업 시 이에 대응하는 직장폐쇄와 어용노조 설립, 생산 외주화까지 2012년 유성 - 2013년 이마트 - 2014 갑을오토텍 등에서 확인된 문건들과 동일한 내용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임이 확인됐다. 지난 12월 29일 유명을 달리한 이주노동자 역시 사측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맞춰 투입된 파업 대체 인력으로서, 어용노조 가입을 조건으로 채용한 단기직 노동자였다.


자본이 끊임없이 노조파괴를 자행하는 이유는 당연히 돈 때문이다. ASA 완주공장에서는 아크릴과 알루미늄 분진, 절삭유 같은 발암물질이 제대로 된 배기처리도 없이 흩날린다. 기계로부터 작업자를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펜스와 센서 등 기본 장치도 미비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언제 바꿔 썼는지도 모를 마스크를 형식적으로 착용했다. 노조를 설립하면 현장의 기본적인 안전보건 문제부터 제반의 노동조건까지 개선해야 하고, 자본은 추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그렇기에 모든 자본가는 부당노동행위 등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악착같이 노조를 파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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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 노조파괴 공모자


그렇다면 노‧사를 중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국가권력의 역할은 어떠했나? 노동부는 ASA 완주공장 근로감독을 통해 이번 사망 사건 한 달 전에 이미 산재 은폐 등 40여 건의 안전보건 조치 위반으로 사측엔 3,000여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도처에 죽음이 예견된 공장이었다. 또한, 노조는 노동부에 ‘사측의 단기직 채용은 파업 무력화 및 노조 지배개입 등의 부당노동행위’임을 고발한 상태였고, 최소한의 안전교육조차 이뤄지지 않은 미숙련 노동자들의 현장투입 위험성을 지속해서 경고해왔다.


그런데도 공장은 계속 돌아갔다. 한국어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로 안전교육을 했다는 것이 사측의 뻔뻔한 대답이었고, 책임관리자 한 명 투입되지 않은 공정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노조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특별관리감독 참여 요청을 요구했지만, 노동부는 단칼에 거부했다. 나아가 특별관리감독 전날(1월 6일), ASA 사측에 감독일시와 감독인원‧주체까지 친절하게 보고했고, 사측은 민주노조 조합원이 없는 단체방에 ‘내일 광주청에서 근로감독관 14명이 나온다. 안전보호구 착용하라. 지게차 면허 없는 인원은 운전하지 마라’는 등의 사전대비 지침을 하달했다.


산업재해는 자본과 국가권력이 공범이 되어 만들어내는 명백한 살인이다. 매년 2,000여 명, 매일 5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나라에서 새해 벽두를 앞두고 유명을 달리한 40대 노동자의 죽음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일지 모른다. 그가 이주노동자였던 사실, 그리고 두 달 후면 아들의 결혼식이 예정돼 있었지만 타국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가족에게 돌아가야 하는 안타까운 사연 역시 죽음으로 내몰린 모든 노동자가 갖고 있던 ‘개인사’로 기억이나 될지 모르겠다. 산업재해를 마치 당연한 듯 통계수치로만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살아남은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2020년 새해, 지금 바로 여기서 죽임당하지 않을 권리를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