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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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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2.14 14:50

명절에 대한 단상


세연┃경기



어린 시절 설이나 추석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따뜻하고 즐거웠다. 7남매인 아빠 형제와 그 가족이 명절 전날부터 한집에 모여 복작복작하며 어른들(중에서 여자들)은 음식을 하고, 열 명에 가까운 아이들은 집안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놀았다(남자 어른들은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새 옷도 생기고 용돈도 받고, 풍성한 음식에 놀기만 하면 되니 왜 즐겁지 않을까.


그 와중에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명절 아침 차례를 지내고 밥을 먹을 때다. 차례상이 놓인 안방에는 할머니와 남자 어른들, 그리고 남자 사촌들이 모여 아침을 먹었고, 여자 어른들과 나를 포함한 여자 사촌들은 거실에서 따로 먹었다. 이십 명에 가까운 대식구가 한자리에 앉을 수는 없을 테니 명절 아침뿐 아니라 다른 끼니때도 그랬겠지만, 유난히 아침상의 그 장면이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아침상이 불만스럽고 불편해졌다. 나이가 들수록 그 아침상뿐만 아니라 명절 전체가 불편해졌고, 어른이 돼서는 나만 따로 명절 아침에 큰집으로 가곤 했다. 명절 노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결혼 전까지다.


결혼 후 명절은 불편함을 넘어, 눈 질끈 감고 치러내는 연례행사가 됐다. 얼굴도 모르는 어른들에게 지낼 차례 음식을 만들고, 시도 때도 없이 방문하는 (처음 본) 친척들 음식상을 하루에 몇 번씩 차리고 치우기를 반복했다. 그 속에서 나의 노동은 소외되고, 내 여러 정체성 가운데 ‘며느리’라는 것만이 나를 규정한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여자친구가 언젠가 분노를 토하며 했던 얘기가 있다. 모든 인간관계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게 ‘며느리’들이라고. ‘명절 시댁’에서는 그게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다. <82년생 김지영>의 지영이 명절날 시댁에서 처음 발화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이런 불편부당함을 바꾸기 위해 나는 무얼 했을까? 일단 남편이 나보다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한다. 특히 명절 같은 때에는 더 그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성애 중심 정상가족 제도를 택했을 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지레 포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크고 작은 몇 번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 그래도 여전히 명절은 즐겁지 않다.


더 많은 전투를 치러야 할까? 피곤하고 상처받겠지만, 필요하다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전투로 가부장제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음도 알고 있다. 그래서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가부장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주의를 끝내야만 해결의 여지가 생길 것이다.


내가 꿈꾸는 사회주의 세상에서 명절은 필요 없다. 물론 1년에 한두 번의 긴 연휴는 필요하다. 그 시기에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얼마든지 즐겁게 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