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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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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2.14 15:37

나는 소확행이지만 

사회주의도 좋다


김건수┃경기



최근 『불평등의 세대』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세대 문제를 다룬 책이다. 386세대의 기득권과 그 기득권 때문에 피해를 보는 후배 세대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 책을 보면 386세대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사회의 부와 지위를 독점하고 있다. 대기업 임원부터 청와대까지, 시민사회에서부터 노동조합까지, 바야흐로 386세대 전성시대다.


이 책은 ‘조국 사태’가 촉발한 공정성 논란이 한창일 당시 출판됐다. 당시 의제가 ‘불평등’과 ‘세대’였으니, 한 달 만에 5쇄를 찍을 만하다. 나는 베스트셀러가 된 지 한참 지난 후에야 찾아봤다. 수많은 사람이 ‘세대론’을 주장하는 반면 ‘계급론’은 우리 주변에서 잘 얘기되지 않는 것 같아 ‘세대론’을 살펴보고자 읽었는데, 읽어보니 가관이었다. 그래서 몇 가지 소감을 나누고 싶다.

스포일러이지만, 이 책은 대기업-유노조-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일부를 양보해서 ‘연대임금’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만들자는 제안으로 마무리된다. 그 외에도 고임금 노동자인 386세대가 해고의 위험에 ‘경직된 반응’을 보이지 않도록, 다시 말해 ‘괜히 파업하지 않도록’ 고용보험과 재고용 제도를 강화해서 그들을 설득하자는 제안도 있다. 오히려 청년을 위한 제도는 몇 개의 지원책을 요약하는 것으로 그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불평등의 세대』이지만, 실제로 주장하는 바는 ‘조직노동의 해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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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대신 노동자가 책임져라?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기득권 유지 도구로 이용한다. 임금 인상 등의 명목으로 이 ‘합법적인 기득권’을 자꾸 행사하다 보니, 청년 노동자들을 위해 써야 할 재원이 조직 노동자에게 투여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첫째, 전체 노동자 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직 노동자는 10%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대공장-유노조-정규직은 일부일 뿐이다. 그 일부의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일부를 모은다고 해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둘째, 세대의 책임을 묻는다면서 왜 하필 그중에 노동자들을 콕 집어 책임을 묻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노동자가 만만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노동자의 양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두 가지 모두 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책이 자본의 책임은 전혀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평등을 양산한 주범은 자본인데, 그 책임은 세대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세대 중에서도 유독 노동자의 책임을 묻는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꼴이다.


셋째, 고임금 노동자의 양보로 무엇이, 얼마나 바뀌는가? 우리는 이미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그 미래를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청년들더러 “중동으로 가라”더니, 이제는 모두 광주로 가면 되는 건가 싶다. 그러니까 소수 노동자들의 연대임금으로 마련한 평생 저임금 일자리에 만족하면서 일만 하다가 죽으라는 거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극구 사양’이다.


불평등의 책임을 묻겠다면서, 경제불황과 장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사내유보금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자본가들을 빼먹는다면, 그게 오히려 반칙이고 불공정이다.



누구 때문에 소확행이 됐는데?


자본의 책임을 지워버리는 ‘세대론’ 그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을 수도 있다. 『불평등의 세대』 말고도 청년 문제와 세대 문제를 조망하는 책이 아주 많이 출판된다. 청년 세대를 분석하는 기사와 잡지도 많다. 그럴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누군가는 이에 관해 ‘386세대는 거시이념을 선호하는데, 요즘 청년들은 소확행에 머문다’고 덧붙인다. 1980년 광주 항쟁을 목격한 후 어릴 때부터 독재 타도와 체제 변혁을 꿈꾼 386세대는 꿈도 크게 꾼다나 뭐라나. 네,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IMF를 보고 자라서 꿈도 작게 꿉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생 저임금 일자리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불평등의 세대』가 지적하듯이, 386세대의 ‘대확행’과 청년 세대의 ‘소확행’이 문제다. 청년 세대가 꿀 수 있는 꿈은 작고 작아져 ‘소확행’이 됐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386 진보학자들조차 ‘소확행’이 무슨 대단한 발견인양, “이제 청년들은 소확행이다!”라고 외치며 너도 나도 광주형 일자리며, 노동자 양보론이며, 몇 개의 제도적 보완으로 세대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누구 때문에 소확행 인생인데? 『불평등의 세대』는 청년들이 왜 절망하는지도 모르면서 세대 문제로 책만 엄청 팔아먹었다.


나는 소확행이지만 사회주의도 좋다. 언제까지 소확행으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려면 집도 있어야 하고, 필요하면 차도 있어야 하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여행도 여러 곳 가고 싶은데, 눈앞의 현실은 아득하기만 하다. 노동소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집값에, 구할 수 있는 일자리라곤 저임금-장시간, 불안정-비정규 일자리뿐이다.


또 다른 노동자들의 양보와 타협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주거 공간을 투기 공간으로 전락시킨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 생산의 주체를 임금노예로 전락시킨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 당연한 삶의 권리를 ‘지불해야 하는 상품’으로 치환한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작지만 소소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