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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인터내셔널의 붕괴와 

사회민주주의의 배반

기회주의와 사회 배외주의*에 대한 노동자 당의 임무


레닌전집 읽기 모임



아 벗들이여 당신들 안전한 사람들이여

뭣 때문에 그런 적의를? 우리들이

당신들의 적이란 말인가 부정을 적으로 삼고 있는 우리가?

부정에 항거하는 투사가 패배해도

부정이 옳은 것은 아니잖는가!

우리들의 패배가 증명

하는 것은 다만 하나 우리들이 너무

소수라는 것이다

속물근성에 반대하여 싸우는 사람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기대한다 방관자들에게

적어도 부끄러워할 줄이나 알라고.


-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 / 김남주 역, “객관적인 사람들에 대해서” 중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터지자, 독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각자의 제국주의 정부에 협력하며 노동자들이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전쟁에 찬성했다. 제2 인터내셔널, 즉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표방했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연합체는 스스로의 기회주의와 배반으로 붕괴했다. 레닌은 이 암담한 시기를 회상하며 “환상을 품지 않고, 낙담하지 않으며, 극도로 어려운 과업에 다가서면서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하여 ‘처음부터 시작할’ 힘”을 가져야 한다고 1924년 <프라우다>지**에서 동지들을 격려했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견뎌낸 내분의 참상은 오늘날 우리와 어떻게 연결될까?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전염병 정국, 언론매체는 지금도 당연하다는 듯 ‘방역’과 ‘자국민’, ‘감염’과 ‘외국인’을 양축으로 두고 선 긋기에 바쁘다. 100년 전인 1919년에도 ‘스페인 독감’이라는 전염병이 퍼졌다. 당시 세계 인구의 27%였던 5억 명이 감염됐다. 흑사병 이후 단일 질병으로는 가장 큰 인구변동을 야기한 질병이었다. 1차 세계대전 사망자보다 두 배가량 많은 수의 사람이 스페인 독감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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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병균’으로 본 나치 독일의 탄생

그 배경에도 사회민주당 지도부의 기회주의가 있었다


스페인 독감이 세계를 휩쓸고 간 이듬해인 1920년, ‘병균이나 다름없는’ 타민족을 찍어내자며 ‘독일 민족 혈통의 순수성’을 내건 한 극우정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창당했다. 이 극우정당은 이후 1929년 세계 대공황을 지나, 배외주의적 군수기업화와 제국주의를 교접해 전례 없는 반인륜적 참극을 낳았던 ‘나치 독일’의 전신이었다.


그런데 이 극우정당의 이름은 ‘독일 노동자당’이었다(훗날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으로 개칭).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정체를 속이기 위해 이름만 ‘노동자당’으로 지어 가짜 간판을 내걸었던 것이다.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의 세를 꺾으려는 일념으로 창당한 이 당은, 독일 사회민주당으로부터 대중을 더욱 이탈시키고 반동을 결집하려는 철저한 계략이었다.


이런 극우 파시즘이 당시 독일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반동을 견제하기는커녕 계급적 원칙을 배반하고 알아서 길을 내줬기 때문이었다.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더욱 기회주의에 물들었고, 독일혁명은 패배했다. 사회민주당은 심지어 독일 제국주의 군대와 공모해 리프크네히트와 룩셈부르크 등 독일혁명의 지도자들을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극우 민족주의와 전쟁, 총동원 체제라는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지배계급의 모략 앞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이름만 남아 있던 이 ‘노동자’ 정당은, 다른 가짜 ‘노동자’ 정당에게 맥없이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제2 인터내셔널의 붕괴, 사회민주주의의 배반


1889년에 엥겔스의 제창으로 제2 인터내셔널이 결성된 시기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넘어가던 시기이자, 각국 사회주의 정당이 성장해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고양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엥겔스가 죽은 이후, 제2 인터내셔널의 구심이었던 독일 사회민주당 내부에서 점점 우익 기회주의 경향이 강해졌다. 마침내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자국 정부의 제국주의 전쟁에 협력하게 됐다.


제2 인터내셔널 내부의 여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한다’던 기존의 결의를 폐기하고 사회 배외주의와 ‘조국 방위’론으로 넘어갔다. 이들이 내다 버린 기존의 결의는, 전쟁이 야기하는 정치경제적 위기를 이용해서 인터내셔널의 각 당이 자국 정부의 패전을 촉진하는 투쟁을 벌임으로써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는 전술을 내포한 결의였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이 결의는 제2 인터내셔널 지도부에 의해 배반당했다.


레닌은 이런 배경에서 기회주의 조류에 맞선 투쟁을 계속했다. 1915년 9월에는 스위스 짐머발트에서 소집된 회의를 통해 ‘노동자와 평화를 위한 투쟁을 호소하는’ 반전反戰주의 좌파 사이에서도 내전을 촉구하는 ‘짐머발트 좌파’를 형성했다.


1915년, 레닌은 “이제 누가 누구와 함께하고, 어디로 방향을 잡았는가”를 확인할 때가 되었다며 “배반자인 기회주의자들과 사회 배외주의자들에 대한 전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천에서 화해할 수 없는 균열이 있는 한, 허구적인 ‘통일’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영합한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

그 대척점에 선 혁명적 사회주의


이 무렵 레닌에게 ‘기회주의’와 ‘(의미가 퇴락해버린)사회민주주의’는 사실상 동의어일 수밖에 없었다. 레닌은 “기회주의는 다름 아닌 자유주의 노동자 정치”라고 밝히며 “제2 인터내셔널의 붕괴는 사회주의적 기회주의의 붕괴”라고 못 박았다. 레닌은 “사회주의적 기회주의는 그에 선행한 노동운동 발전의 ‘평화적’ 시기의 산물로서 성장한 것”이라고 보았고, 결국 전쟁이 조성한 위기에서 “평화를 추상적으로 설교하며 노동자계급을 속이는 문제”와 “인민을 기만하는 말에 불과”한 조국 방위 지지자들, 그리고 사회 배외주의 조류를 비판했다.


레닌이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의 대척점에서 견지하려 한 혁명적 사회주의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정치적으로 파산한 제2 인터내셔널을 떨쳐내고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국제적 단결체인 제3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표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모든 국제적인 혁명적 대중행동을 지지해야 하며, 인터내셔널 내에서 사회 배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분자들을 결집시켜야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임무는 혁명적 발전이 급속하게 전개되든 위기가 길게 지속되든 장기적 일상적 작업을 방기하지 않고, 지금까지의 계급투쟁 방법들을 그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대중의 혁명적 투쟁의 정신으로 의회투쟁과 경제투쟁 모두를 기회주의에 대항하도록 지도하는 것, 이것이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임무다.”



일상이 투쟁인 이 체제에서

‘코로나’로 일상마저 무너졌다


자유주의자들이 득세하는 2020년 오늘, 일명 ‘코로나 쇼크’로 세계 체감경기는 2008년 경제위기 직후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번 달에는 월세를 덜 받겠다’는 건물주, ‘무급휴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회사원의 일화가 미담처럼 추켜세워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거리가 한산하다. 마스크도 동이 났다. 당분간 출근도 외출도 자제하라고, 몸이 아프면 자가격리를 하라고 한다. 일상이 잠시 무너졌다. 바꿔 말하자면, ‘일상’의 조건들을 되물어 볼 계기가 생긴 것이다.


우리에게 애초부터 안온한 일상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옭아맸던 환상 아닌가? 월세를 덜 받는 건물주를 칭송하기보다, 당장의 주거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과 잉여노동인구가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구조를 봐야 하지 않는가? 무급휴가를 당연시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기보다, 일주일이라도 임금노동에 의존하지 않으면 삶을 지탱하기 어려운 부조리를 먼저 규탄해야 하지 않는가?


노동자계급에게 일상은 그 자체로 투쟁이며 전선이고 보루다. 이번 집단감염 확산으로 피해를 오롯이 떠안은 사람들을 보자. 저임금-불안정-비정규직 노동자, 중증장애인 시설에 갇혀 있거나 활동지원사와 접촉조차 할 수 없는 지역의 장애인, 폐쇄병동의 환자, 일할 수 없게 된 상황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저소득층 등등. 이들의 일상과 건강은 무너지고 있다. 더는 잃을 것이 얼마 없다. 노동자계급을 ‘민족’, ‘국경’, ‘지역’으로 가르고 방역 단위로 가두면서, 기만적인 ‘단결’을 빌미로 공포만 조장하는 기회주의적 조류와 국수주의 언론에 넘어가선 안 된다.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를 되새기며, 지금 당장 일상의 조건을 뿌리째 되물어 볼 때다. 그러지 못할 때 치르게 될 대가는 역사가 이미 보여준 바 있다.



[함께 읽을 레닌의 글]

레닌전집 59권(“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양효식 역, 아고라, 2017



* 사회 배외주의: ‘조국 방위’라는 표어를 내걸고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면서, 겉으로는 맑스주의를 거론하며 자신들의 배반을 은폐하던 우익 사회민주주의.


** <프라우다>: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러시아어로 ‘진실’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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