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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을 향한 길

두산중공업 공기업화를 요구하자


남영란┃부산



지난 3월 26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경영 정상화와 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두산중공업에 긴급운영자금 1조 원 대출을 약정했다. 4일 뒤인 3월 30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두산중공업은 ‘2023년까지 신산업 수주 비중을 50%까지 늘리겠다’, ‘신사업 본격화에 앞서 안정적인 수익구조 유지를 위해 기존사업에서 매출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1조 원 자금지원이 구조조정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노동조합의 우려와 함께, 탈석탄‧탈핵을 전제하지 않는 경영안에 대한 환경단체의 비판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준비되지 않은 선언적인 탈핵‧탈석탄 에너지 전환 과정은 관련 산업 노동자들에게는 구조조정과 생존권에 대한 위협으로 등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탈핵‧탈석탄 흐름에 역행하려는 움직임을 강화시키고, 심지어는 에너지 전환을 좌초시키기도 한다.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은 에너지 전환이 맞닥뜨릴 이런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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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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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 홈페이지]




“정의로운 전환”은 1970년대 미국 석유‧화학‧원자력 노조(Oil, Chemical and Atomic Workers, OCAW)의 토니 마조치가 처음 제안했다. “노동자를 위한 슈퍼펀드”를 통해 석유‧화학‧원자력 노동자들이 지속가능한 경제체제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제안의 내용이었다. 마조치의 “슈퍼펀드” 제안은 이후 캐나다노동조합연맹(Canadian Labours Congress, CLC)에 의해 “△공정함(노동자 및 공동체에 대한 정당한 처우) △재고용 또는 대체 고용(임금, 혜택, 노동기간의 손실 없는 고용 지속) △보상(고용의 지속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정당한 보상) △지속가능한 생산 △프로그램(발생하는 환경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적절한 프로그램)”이라는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각국 노동조합이 기후변화를 주요 의제로 설정하면서, “정의로운 전환”의 의미 또한 확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5년 출범한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가 에너지 민영화‧시장화가 아닌 ‘에너지 시스템의 민주화와 사회공공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기후정의운동에서 제기하는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까지 변화시켜야 하며, 그 과정에서 에너지 전환을 동반하는 것이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고민으로 나가고 있다. ‘기후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라는 문제의식이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탈핵‧탈석탄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모습은 ‘환경 vs 일자리’라는 대립 구도다. ‘핵발전과 화력발전 일자리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일자리를 늘리자’는 제안은 어쨌든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전제한다. 특히나 재생에너지 비중이 미미한 가운데 기존 에너지 산업 일자리를 친환경에너지 산업 일자리로 전환하는 것은 일단은 구조조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노동조합이 ‘기존 에너지산업 유지’를 요구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기존 에너지 산업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어 온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노동조합이 에너지 전환의 주체가 아니라 철저히 대상으로 전락한 상황을 변화시켜야 한다. 우선은 일터에서의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에 대한 제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착취와 수탈로 성장해온 체제에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구조조정을 그저 지연시키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대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대량생산-대량소비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성 증가가 곧 고용축소로 이어진다면, 그와 반대로 생산성 증가가 노동시간 단축으로 귀결하는 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했던 고 김용균,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을 보자. 민영화‧외주화로 발전소 일자리는 불안정‧위험 일자리로 채워졌다. ‘효율성과 무한경쟁’을 앞세운 이 체제를 바꾸는 게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만들어갈 “정의로운 전환”은 파괴된 공공성을 회복하고 확장하며, 그에 걸맞은 노동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다시 두산중공업으로 돌아가 보자. 이른바 ‘경영정상화’가 결국 구조조정이라는 화살로 노동자들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노동조합의 판단은 틀리지 않는다. 탈핵‧탈석탄 전제 없이 두산중공업에 1조 원의 자금을 지원한 게 부당하다는 규탄 또한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지 않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은 두산중공업이라는 ‘사기업’에겐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20년 전 알짜기업이었던 “한국중공업”을 민영화해 헐값에 두산그룹에 매각한 직후 벌어진 일이 바로 구조조정과 노동조합 탄압이었다. 이 과정에서 배달호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두산중공업 자본은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일 수 없다. 민영화됐던 두산중공업은 이제 다시 공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어 공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실현할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두산중공업지회와 사내하청 노동자들, 그리고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함께 이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과 맞물려 에너지 전환과 고용문제를 결합하는 것이 두산중공업에 대한 해법이다. 구조조정의 칼을 숨겨둔 지원이 아니라, 공기업화를 통해 전환의 새로운 모델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두산중공업 노동자들이 제기하며 싸워가야 할 길, “정의로운 전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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