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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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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5.15 17:41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보여준 

실천과 모순


지수┃사회운동위원회 여성사업팀



* <변혁정치>는 앞으로 “사회주의×페미니즘” 연재를 통해 그간 페미니즘운동의 궤적을 살펴보고, 지금 우리에게 어떤 페미니즘이 필요한지, 어떤 의제를 통한 실천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한 여성살해, 미투운동을 계기로 전면 가시화된 성폭력, 불법촬영 디지털 성범죄와 n번방 성착취 영상…. 그간 여성들이 겪던 불안과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페미니즘은 이제 여성들에게 생존을 위한 무기로 떠올랐다.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설명하기 위해 1960~7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다시 소환했다.


그간 한국에서 섹스‧젠더‧섹슈얼리티 이슈는 전면화하거나 대중적 운동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등장한 TERF(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즘)를 ‘급진주의 페미니즘 일반’과 동일시하는 오류도 생겨났다(TERF”에 대해서는 <변혁정치> 105호 기사 “TERF(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즘)를 ‘운동’으로 승인할 수 없다” 참조). 하지만 이 오류는 68혁명의 기운 속에서 여성 억압의 근원을 뿌리째 뒤바꿀 실천을 고민하고, 여성의 성적 권리와 성적 위험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과 실험의 장으로 기능했던 급진주의 페미니즘 운동의 의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한다.



신좌파운동에서 배태된 급진주의 페미니즘


1960~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출현한 배경에는 프랑스 68혁명의 영향을 받은 ‘성 혁명’과 ‘급진주의’ 전통, 그리고 운동진영의 남성 중심성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비판하며 신좌파운동과 시민권운동‧반전(反戰)운동이 급부상했지만, 그 속에서 성차별주의가 드러나고 좌파 조직 내 여성과 여성 관련 이슈가 주변화되기도 했다. 이는 운동에 함께했던 여성들을 분노케 했다. 여성운동이 전체운동에서 ‘동원되는 위치’에 머물러 있다는 여성들의 각성은 여성의 ‘공통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억압을 뒤바꾸기 위해 ‘독자적’ 이해관계와 목적을 가진 여성운동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촉진했다.


또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가장 큰 의제였던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여성 참정권 실현과 고등교육 기회 부여)’만으로는 여성의 지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 착목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여성의 정치적 권리와 교육 기회의 균등, 법적 지위가 일정하게 진전한 상태였지만, 일상에 뿌리 깊게 스며든 여성 억압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지속하고 있었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억압이 단지 제도적 개혁이나 여성의 주류사회 통합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가부장제’라는 구조적 뿌리에서 발생함에 주목하면서, 이를 전변시킬 여성 주체들의 급진적 이론과 실천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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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토양이 된 68혁명. [사진: Socialist Alternative(사회주의 대안)]



‘가부장제’를 소환, 여성을 억압된 ‘성 계급’으로 규정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제도화된 지배체계이자 ‘내적 식민화의 장치’, ‘정치적 제도’로 개념화(케이트 밀렛)했다. 또한 카스트 제도와 유사하게 ‘성에 기초한 계급제도’로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이를 정당화‧영구화했다고 지적(파이어스톤)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여성억압의 근원으로 소환한 ‘가부장제’ 개념은 초역사적 남성 지배를 상정하면서, 여성 억압의 단일성에 기반한 자매애를 강조했다. 남성계급과 여성계급 사이의 지배와 착취라는 근본적‧본질적 억압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기에, ‘여성 억압의 근원인 가부장적 체계’ 안에서는 진정한 성 평등이 불가능하다고, 진정한 해방은 ‘남성의 억압을 제거하는 급진적인 질서 재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이러한 ‘성 계급’ 개념은 계급 적대에 관한 맑스주의 규정을 여성-남성 관계에 대입해 ‘성 간() 적대’로 재규정한 것인데, 이는 ‘남성 일반’을 억압의 원인으로 놓고 적대시하는 실천을 낳았으며, 사회변혁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제약하는 ‘분리주의’ 관점으로 이어졌다. 또한 ‘여성에 대한 보편적‧초역사적 억압 체계로서의 가부장제’ 이론이나 ‘동일한 경험과 정체성에 토대를 두는 자매애’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유색인종 페미니즘‧퀴어 정치학의 등장과 더불어 비판과 재구성 혹은 해체의 대상이 됐다.



‘성’을 정치적 투쟁 영역으로 확장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신좌파의 슬로건을 적극 수용해, ‘성’과 ‘재생산’ 등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하던 문제를 정치 영역으로 확장했다. 이들은 가족, 결혼, 사랑, 이성애 규범, 강간, 낙태죄,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등을 이슈화하면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무성적으로 취급되던 ‘여성의 성’에 착목했고,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보지 못했던 ‘사적 영역에서 여성의 불평등’, 여성의 ‘성적 욕망’과 ‘성적 억압’의 문제를 드러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을 뒤바꾸려는 정치적 행위를 자극했고, 이후 다양한 실천의 동인이 됐다.


한편 개인적 변화를 강조하는 풍토와 보수주의의 반격으로 급진주의가 퇴조하면서, ‘여성적’ 가치를 긍정하고 그에 힘을 싣는 문화운동‧여성공동체 운동 등 ‘문화 페미니즘’이 등장했다. 이와 더불어 ‘강제적 이성애가 여성 억압의 뿌리’라는 관점에서 비()성애적으로 레즈비언을 선택한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이 떠올랐다. 이들은 남성의 권력과 공격성에 대한 심리학적‧생물학적 설명을 통해 점차 여성만의 본질적인 특징을 강조하는 ‘본질주의’로 나아갔다. 이들은 남성성과 공격성을 등치시키며 ‘성 간 적대’를 심화시켰고, 성폭력과 포르노의 위험을 강조하면서 ‘성적 욕망’보다는 ‘성적 위험’으로 강조점을 이동시켰다. 페미니즘 운동은 점차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한 정치적 행위보다 여성의 의식 고양을 통한 ‘개인의 문화적 변화’ 강조, ‘자기해방에 대한 강조’를 중심으로 한 실천으로 이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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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이 일던 1970년, 베트남전 반대와 평등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여성들. [사진: Socialist Alternative(사회주의 대안)]



한국의 급진주의 페미니즘


1990년대 중반 한국에서 ‘영(young)페미니스트 그룹’의 등장은 미국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유사한 배경, 곧 여성 문제를 계급이나 민족운동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기존 운동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기존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 속에서 ‘수평적 운동’의 조직방식, ‘일상의 정치’, ‘문화 운동’, ‘반()성폭력’과 ‘성 욕망’ 등 섹슈얼리티(성 문화, 성폭력, 성 정체성 등)를 중심으로 한 ‘성 정치’를 구현했다. 그러나 이들은 섹슈얼리티에 착목하면서도 여성들 사이의 차이와 그 안에서의 권력 문제를 제기했고, 이는 미국 급진주의 페미니즘과는 다른 맥락 속에 있었다(실제 이들은 여성들 사이의 다양성과 차이, 소수자 여성에 대한 식민화 문제를 제기하면서 소수자운동, 문화운동, 평화운동 등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최근 스스로 ‘래디컬 페미니즘’을 표방하며 등장한 TERF(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즘)는 이와 달리 미국의 문화 페미니즘이나 정치적 레즈비어니즘과 일정하게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은 ‘성 간 적대’와 ‘성적 위험’을 강조하고, 무엇보다 ‘생물학적 여성’을 남성 폭력과 이성애 질서의 ‘성적 피해자’로 위치시키는 입장을 보인다. 이들에게는 ‘여성’ 정체성을 본질화하고 저항의 주체로 호명할 생물학적 ‘여성’ 규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들은 생물학적 ‘여성’ 범주를 통해 결국 성별 이분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귀결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여성의 ‘공통적 이해’보다 더 많은 ‘계급적 차이’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공통적 이해’에 착목했지만, 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더 많은 ‘차이’를 보여줬다.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와 승무 여성노동자, 그리고 필리핀 가사노동자의 이해는 동일하지 않았다. 착취하는 위치의 여성과 착취당하는 여성에게는 ‘여성’이라는 공통의 이해보다 더 큰 ‘계급적 차이’가 존재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철저한 계급사회고, 성과 계급, 인종, 민족의 차이를 활용한 착취는 더 많은 초과이윤을 자본에 선사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은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 저임금, 성과 출산에 대한 통제로 자본을 눈부시게 성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빈곤은 여성을 예속시키는 물질적 토대로 기능했다.


그러나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들 간의 차이, 다른 계급과 인종의 여성들이 서로에 대해 가지는 지배와 권력의 문제를 설명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도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서구 중산층 백인 여성의 이해를 보편화하는 경향 때문에 비판받았다. ‘여성 공통의 이해’나 ‘여성 정체성’에만 기반해서는 계급‧인종‧지역‧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맥락에서 여성의 차이가 구성되고 작동하는 맥락을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여성의 공통된 억압인 ‘성적 폭력’ 역시 모든 여성에게 동일하게 발생하지 않았다. 자원이 적은 여성일수록 더 많은 성적 폭력에 노출됐다. ‘여성’이라는 범주는 ‘성적 억압과 폭력’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많은 차이를 내포하는 범주였다. 또한 ‘강간문화’를 중심으로 한 ‘성 정치’는 ‘공격적인 남성=가해자’, ‘수동적인 여성=피해자’라는 구도를 형성하면서, 결국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보수적 성 개념과 전형적인 사회적 통념으로 회귀했다. 여성의 성적 권리가 더는 성 보수주의로 회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성’이 단지 ‘폭력’의 문제로만 연결되지 않게 할 ‘해방의 기획’이 필요하다.



사회변혁의 관점과 만나는 

역동적인 페미니즘 운동


미국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90년대 한국 영페미니스트의 출현이 기존 운동의 토양에서 비롯한 반면, 최근 한국에서 부상하는 페미니즘은 기존 운동세력과 무관하게 그간 누적된 개개인의 피해 경험이 폭발하는 양상 속에서 등장했다. 이들의 미래 구상은 사회변혁의 전망 속에 있지 않았기에, ‘개개인의 실천’을 통해 가부장적 질서에 도전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기 어려웠다. 소수 여성의 성공 신화를 내세운 ‘능력주의’ 속에서, 자본주의 착취와 가부장제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여성해방의 상상력’은 힘을 잃었다.


페미니즘은 고정되지 않은, 정치적 실천을 바탕으로 변화‧발전한 역동적인 운동이다. 사회변혁의 관점과 만나는 역동적인 페미니즘 운동은 변혁운동진영이 여성해방을 위한 실천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남성을 적대세력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분리주의’를 극복하고, 우리의 저항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내재한 억압과 착취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투쟁 속에 함께 서 있음을, 여성과 남성 공통의 위험에 대항하기 위한 투쟁이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실천 속에서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