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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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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5.1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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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X조 원


매년 재벌 사내유보금 추산 결과를 받아들 때마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가령 이런 것이다. 30대 재벌 사내유보금 총계가 이제 1천조 원에 육박하다 보니, 각 계열사의 사내유보금이 수십~수백억 원 늘어난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심지어 개별 기업의 잉여금이 수천억 원 불어나도, 주로 ‘조 단위’로 발표하는 사내유보금 총액에서는 소수점 이하의 값일 뿐이다. 실제 사내유보금 계산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 정도는 ‘늘어나지도 않은’ 것처럼 보일 법하다.


재무제표에서 스스로의 현실로 돌아오면, 계산 작업을 할 때 유의미한 값으로 여기지도 않던 ‘0.X조 원’은 정반대 의미로 현실감이 전혀 없는 숫자가 된다. 시급 1만 원을 기준으로 월 209만 원씩 번다고 가정할 때, 거의 4천 년을 일해야 가까스로 1천억 원이라는 액수와 만날 수 있다. 이렇듯 여기에서 ‘0.1’이라는 숫자는 누구에게는 골백번 다시 태어나도 닿을 수 없는 허공 위의 무언가다. 그런데 당장 올해 배당금으로만 삼성 이건희와 이재용이 각각 4,700억과 1,400억, 현대차 정몽구가 900억 원을 챙겼다는 사실을 보면, 누군가에게는 그저 가만히 있어도 1년(혹은 그조차도 불필요하다) 만에 쥘 수 있는 ‘손쉬운’ 숫자이기도 하다.


올해 사내유보금 총액을 두고 ‘작년보다 얼마 늘지 않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재무제표의 숫자와 현실의 숫자는 이처럼 같은 값이라도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재난의 한복판에서, 여전히 재벌은 우리가 감도 잡을 수 없는 규모의 이윤을 축적했다. 이 사회에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이 막대한 부를 ‘누구를 위해, 누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소수의 자본가를 위해 이 부를 낭비하는 게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를 위해 사용하는 것, 바로 우리가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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