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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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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사회주의자에겐 화폐론이 필요하다

- 마르크스주의 화폐론 정립을 위한 소고(1)


홍석만┃참세상연구소



* 편집자: 2008년 위기 때의 ‘양적 완화’가 이제는 ‘순한 맛’처럼 느껴질 정도다. 코로나 사태를 경유하며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자본주의 국가들이 쏟아내는 재정‧통화정책의 규모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가늠할 수도 없는 수천조 원의 돈이 시장에 뿌려진다고 한다. 소수의 주장이었던 MMT(Modern Monetary Theory, 현대화폐이론)는 주류경제학이나 대중매체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가 됐고, 금융시장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한가한 교과서 얘기일 뿐이라는 듯 중앙은행에 지금보다도 더 많은 화폐 발행을 독촉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삶의 붕괴가 현실화하는 와중에 막대한 화폐가 풀리고 있는 지금, 사회주의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요구를 대중 앞에 제시할 것인가?


마르크스주의 화폐론은 바로 지금 이 현실의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릴 귀중한 단초다. <변혁정치>는 “오늘도 맑습니다” 코너에서 2회에 걸쳐 마르크스주의 화폐론과 현재 위기에서의 적용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화폐론, 중요한 이유


자본주의 경제는 상품경제이면서 화폐경제다.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발전할수록 화폐와 신용 제도도 그 이상으로 발전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봤듯이 상품생산의 세계화보다 금융의 세계화는 더 견고하게 짜여 있고, 부동 자산을 유동화하는 금융화를 통해 신용의 팽창을 전무후무한 형태로 확대했다. 또한, 팽창된 신용위기가 반복되면서 양적 완화는 물론이고 새로운 재정‧통화정책을 동원해 위기를 지연시키면서도 모순은 더 확대‧심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달러화의 금 태환 중지(‘태환’은 ‘형태를 바꾼다’라는 뜻으로, 본래 지폐는 언제든 금과 교환해주는 일종의 증서였으나, 후술하듯 1971년부터 미국은 달러화의 금 태환을 중지시킴)에 버금가는 화폐 자체의 변화, 즉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의 등장도 눈앞에 두고 있다. 제도적 발전을 놓고 보면 화폐와 금융 부문보다 빠르고 다양하게 변하는 곳이 없을 정도다.


다른 한편, 화폐와 신용 제도는 현재 자본주의 위기와 이행의 물질적 기초를 확인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화폐론의 현대적 정립 없이는 현재 자본주의 변화를 간파할 수 없으며, 작금의 위기를 통해 자본주의가 어디로 가는지도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 “신용 제도는 생산력의 물질적 발전과 세계시장의 창조를 촉진하는데, 이러한 것들을 새로운 생산 형태의 물질적 기초로서 일정한 수준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사적 사명이다. 동시에 신용은 이 모순의 격렬한 폭발, 즉 공황과 낡은 생산양식을 해체하는 요소들을 촉진한다.”(마르크스, 『자본론』 3권, 548쪽)


또한 신고전파나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변화‧발달하는 화폐 및 신용 제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반면, 마르크스주의 화폐론은 이를 가장 잘 해명하는 이론이다. ‘노동생산물로서 화폐(상품화폐론)’의 가치 및 화폐의 퇴장, 거래수단을 넘어서 자본으로서의 화폐 및 이자 낳는 자본, 공황기의 화폐 수요 및 화폐 가치의 변동은 주류경제학이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자본주의적 화폐 현상을 본질적으로 통찰하는 데 중요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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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론은 사회주의 정당의 필수요소


그런데 마르크스의 화폐‧신용이론은 시대적‧분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자본론』의 경우 이 내용은 자본의 일반적 순환 과정에서의 화폐와 신용에 대한 분석으로 제한돼 있고, 특히 국가 신용은 분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화폐이론을 정립하려면 현대 화폐제도의 변화‧발전에 조응하는 마르크스주의 화폐이론의 성장도 반드시 요구된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화폐이론은 당 또는 정치조직이 갖춰야 할 필수요소다. 특히 사회주의 건설을 주장하려면, 화폐‧신용 제도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구체성을 확보하고 재정 및 통화정책 등을 통해 과도기(이행기)의 수단을 정립해야 한다. 현대의 복잡하고도 변화무쌍한 화폐‧신용 제도 속에서 어디에 문제가 있고 무엇을 통제해야 할지,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지하면 사회주의를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제시하기 어렵다. ‘은행 국유화’나 ‘금융에 대한 사회적 통제’ 수준의 추상적인 문구로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게다가 사회주의자에게 화폐이론이 없으면, 정작 ‘은행 국유화’나 ‘사회적 통제’ 같은 주장을 실현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할지 모르고 허둥댈 가능성이 높다. 20세기 초 사회주의 혁명에 막 성공한 사회주의자들처럼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거나 경제를 심각한 침체로 빠뜨릴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주의 사회에서 화폐‧신용 제도를 폐지하거나 대체할 것인지’, ‘유통을 매개할 수단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른 가치의 표현 형태와 양식은 무엇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등의 문제도 화폐론 정립의 중요한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이 글에서는 마르크스 화폐이론의 기본적인 원칙을 확인하고, 몇 가지 쟁점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고자 한다.



화폐의 가치: 마르크스의 설명


마르크스적으로 화폐는 ‘금’이다. 역사적으로 금(또는 은)이 생산물의 교환을 매개하면서 보편적인 등가물이 됐고, 이에 따라 화폐는 금이라는 상품의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화폐의 가치는 금을 생산하는 노동력의 가치이며, 금 1단위의 가치는 금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으로 표현된다. ‘화폐의 가치가 금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의 가치’라는 말은 화폐 또한 상품이며(상품화폐), 화폐 가치의 변화는 금 생산의 조건과 노동력 가치의 변동, 즉 금 유입량에 따라 변동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가치척도와 유통수단으로서 금은 가지고 다니기도 힘들었고 매번 교환 때마다 무게를 달아야 하는 엄청난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가 가치표준을 정한 ‘금화’가 등장했다. 이 금화는 가령 ‘1g의 금화 = 1g의 금’이라는 표준을 의미했고, 실제 무게와 가치도 같았다. 그런데 금화는 유통되면서 닳아 없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금화의 실제 무게는 표준으로 정했던 금의 무게를 따라갈 수 없었다. 또는 애초부터 가령 ‘1g의 금화 = 10g의 금’이라고 표준을 설정함으로써 실제 금과는 다른 무게의 금화로 해당 금량의 가치를 가지도록 했고, 심지어 구리 같은 주화도 주화 자체의 금속 가치가 아니라 일정량의 금 가치를 가지도록 통용시켰다. 이처럼 금화(또는 주화)는 가치척도로서 금의 가치를 그대로 표상했고, 마르크스는 이를 화폐의 ‘관념화’라 부르며 화폐제도의 변천을 설명한다(『자본론』 1권 3편 3장, 123쪽).


화폐이자 노동생산물인 금이 금화로 관념화했다면, 그 금화 역시 유통비용 문제 때문에 다른 형태로 변했다. 금은 은행에 보관해두고, 이와 교환할 수 있는 증서인 ‘지폐’를 유통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금본위제’는 여러 굴곡을 거치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 달러화만이 금과 교환될 수 있는 ‘금환본위제’로 바뀌었다가, 1971년 미국이 달러의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 각국 화폐는 금이나 다른 무엇으로도 교환해주지 않는 불태환 화폐(fiat money)가 됐으며, 법률로써 강제 통용을 보장하는 최종 지급결제수단인 법정 통화(legal tender)만이 화폐가 됐다.


이에 따라 화폐의 가치도 ‘금의 가치(금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 가치) → 이를 반영한 금화의 가치 → 이를 상징한 금 태환 지폐의 가치 → 달러화의 가치(달러만 금으로 교환됐다)와 달러 교환 비율’로 바뀌었다. 미국이 달러화의 금 태환을 정지시키기 전까지는 어쨌든 화폐의 가치는 ‘금 생산의 노동력 가치’에 직접적으로, 관념적으로, 상징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금화에서 ‘금과 교환이 가능한 증서(지폐)’로 넘어오면서 화폐 자체의 물리적 가치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화폐는 금 생산의 노동력 가치를 상징했고 금의 가치변화가 화폐 가치에 영향을 줬다(『자본론』에서도 국가가 강제 통용력을 부여한 불환 지폐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고, 이 불환 지폐도 유통에 필요한 금량을 상징한다고 분석한다. 『자본론』 1권, 162~164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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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가 저술한 <자본론> 1권 초판. [사진: wikipedia]



현대 화폐의 가치는?


그러나 1971년 미국이 달러화의 금 태환을 정지시킴으로써, 화폐는 ‘금’과의 상징적인 관계마저 청산했다. 또한 중앙은행제도를 확립하고 부분지급준비제도(은행이 고객 예금의 일부만을 즉시 현금 전환 가능하도록 남겨두고 나머지는 대출 등에 활용하는 것)와 관리통화제도(관리 당국이 금 보유량의 제약을 받지 않고 통화 공급량을 조정하는 제도)를 시행하면서, 불태환 화폐는 더 이상 ‘금 생산의 노동력 가치’를 반영하지 않았다. 상품으로서 금의 가격은 화폐 가치와는 독립적으로 결정됐고, 금값의 변동이 화폐 가치에 영향을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런 불태환 화폐가 (노동력) 가치 없이 발행된 것은 아니다. 금이나 금화 등 금본위제하에서 화폐는 모두 금의 가치 즉 금 생산의 노동력 가치를 상징했지만, 현재의 불태환 체제에서 가치척도이자 유통수단인 화폐는 금이 아닌 다른 노동생산물의 노동력 가치를 상징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현금(現金)’이라고 부르지만 그 이름과 달리 더 이상 금으로 교환해주지 않는 화폐인 법정 화폐의 가치는 중앙은행의 ‘리저브(reserve, 준비자산)’ 구성과 변동에 달려 있다. 화폐 발행은 회계상 중앙은행의 부채에 해당하지만, 곧 이를 통해 정부나 시중은행에 대출해주거나 국채‧외화채권 등을 매입함으로써 자산을 증가시킨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공급할 때 정부나 시중은행에 그냥 주는 게 아니다. 빌려주거나(대출금‧대출채권), 국채를 사거나, 기타 유동자산을 매입하고 그만큼의 화폐를 공급한다. 즉, 화폐의 가치는 중앙은행 리저브의 가치를 상징한다. 중앙은행은 화폐를 발행(공급)하면서 금 대신에 리저브를 쌓았다. 금본위제 시기까지 금이 리저브였다면, 이제는 다양한 금융‧실물자산이 리저브로 구성된다.


각국 중앙은행의 리저브가 화폐 가치의 기초가 되면서, 리저브가 상징하는 생산물의 노동력 가치는 다양해졌다. 신자유주의 위기 이전에 대부분 국가의 리저브는 (시중은행의 대출금과 예치금을 제외하면) 자국 국채가 주를 이뤘다. 한국의 경우에는 국채 이외에 주로 달러로 표시된 외화자산이나 금, IMF의 특별인출권인 SDR(Special Drawing Right: 담보 없이 외화를 인출할 수 있는 권리)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위기에 대응하면서 한국은행이나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은 회사채와 상업용 MBS(Commercial Mortgage Backed Security, 상업용 부동산 저당증권.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해준 은행이 해당 부동산에 대한 저당권을 담보로 다시 채권을 발행한 것) 등을 자산 매입 대상으로 설정했고, 이로써 국채뿐만 아니라 민간채권까지 리저브로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해당 채권 수익률이 대표하는 노동력 가치를 상징한다. 리저브 구성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국채는 국가의 조세 능력을 결정하는 해당 국가의 평균적 노동력 가치와 생산력을 상징한다. 따라서 현재의 화폐 가치는 구체적으로 중앙은행 리저브 구성 자산의 노동력 가치를 따르고, 일반적으로 해당 국가의 평균적인 노동력 가치를 상징한다.



세계화폐와 화폐가치


한편, 금 태환이 정지된 불태환 화폐는 ‘금’이라는 상품화폐의 역할이 중지된 것일 뿐만 아니라 ‘세계화폐’로서 금의 역할도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세계의 모든 화폐가 일반적으로 금이나 금화, 혹은 금 태환 지폐였을 때에는 금 생산의 국내 노동력 가치 또는 금과 화폐의 교환 비율이 화폐의 가치를 결정했다. 하지만 불태환 화폐의 가치는 리저브의 가치와 리저브 구성을 둘러싼 국내외 금융시장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특히 각국의 생산조건이 다르고 노동력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상품의 가격 즉 화폐의 가치가 다르다. 환율은 자국 화폐와 세계화폐(현재는 달러화) 간의 교환 비율이며, 각국의 평균적인 노동력 가치의 평가율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들어 변동환율제(환율이 일정 수준으로 고정되지 않고 외환시장의 수급에 따라 변동하는 것)로 돌아서고 생산의 세계화로 교역과 무역량이 급증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리저브 구성은 더욱 다양해졌는데, (기축통화국이 아닌 경우) 이 가운데 환율을 안정화하기 위해 세계화폐로 기능하는 달러화 표시 채권 등의 리저브 구성 비율이 높아졌다(이것이 바로 ‘외환보유고’다).


국고채와 함께 외화(주로 달러화) 표시 채권이 주요 리저브 구성이 됐다는 것은 달러화 가치와 미국 국채 등이 자국 통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자국 국채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부채율과 더불어, 달러와 해당국 통화의 교환 비율(즉, 환율) 등이 화폐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특히 개방경제하에서 리저브 구성이 국채‧외화채‧회사채‧MBS 등 금융채로 구성되고 국가부채율‧환율 등 금융시장의 주요 작동 요인이 화폐가치 결정에 영향을 미침에 따라, 화폐 공급은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에 종속됐다. 화폐 공급은 제국주의적인 금융질서 속으로 제한됐고, 이를 둘러싸고 정치적 힘이 작용하는 투쟁의 영역이 됐다.



제국주의적 질서와 양적 완화


미국 등 기축통화국 대부분은 자국 국채나 자국 통화 표시 채권 등을 리저브로 삼고 있고, 기축통화국이므로 외환시장의 영향을 적게 받기 때문에 통화 공급의 제한이 적다. 미국은 지난 2008년 경제위기에서 교과서에도 없는 ‘양적 완화’라는 수단으로 통화를 공급했는데, 미국 연준은 지난 100년 동안 발행한 돈(본원통화)과 같은 액수를 단 2년 만에 풀었고, 2014년까지 그 4배를 풀었다. 그런데도 달러화 가치는 1/2이나 1/5로 줄어들지 않고 가치변동 없이 기능하고 있다. 미국 달러가 미국 국채와 교환되며 국가부채가 아무리 늘어나도, 미국 국채의 안정성은 미국의 지배력이 줄어들지 않는 한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


반면, 당시 한국 같은 신흥국이 어떤 형태로라도 양적 완화를 하게 되면 바로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해당국 내에 투자돼 있던 외국 자금이 화폐가치 하락을 우려해 자산을 팔고 기축통화(주로 달러화)로 환전해 먼저 빠져나간다. 이렇게 외화가 바깥으로 이탈하면서 환율이 폭등해 화폐가치가 추락하고, 그럴수록 외화는 더욱 부족해져 결국 외환위기에 빠지게 된다. 가령 2010년 남유럽 경제위기가 터졌을 때, 양적 완화는커녕 재정지출 증가조차 거부되며 긴축이 강요됐다.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에 대해 ‘복지 삭감 등 세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어떤 자금 지원도 못 한다’고 강조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그리스 정부는 복지 삭감 등 고강도 긴축을 시행했고, 그리스 국민들은 경제위기 속에서 복지 축소로 엄청난 고통을 감내했다. 하지만 곧이어 이탈리아와 스페인에까지 위기가 번지자, 유럽중앙은행은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 조건 없이 국가 부채 한도를 늘려주고 자금도 지원했다.


이처럼 화폐 공급은 세계금융시장과 제국주의적 질서 속에서 제한적으로 운영된다. 현재는 미국이 ‘룰 메이커’로 작동하며 매 시기마다 통화 공급의 기준과 한계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위기 때에는 미국과 일본, 유럽 등 기축통화국만이 양적 완화를 마음대로 진행했다. 2020년 위기에서는 팬더믹으로 인한 세계금융시장의 위기 조건이 동일하고 주요국이 동시에 양적 완화를 포함한 재정‧통화 팽창에 나서자, 다수의 신흥국에서도 양적 완화가 용인되고 있다. 폴란드, 콜롬비아, 필리핀, 남아공, 체코 등 신흥국 중앙은행도 3월 중순부터 잇달아 대규모 양적 완화를 선언했다. 한국은행도 RP(Repurchase agreement, 환매조건부 채권: 일정 기간 후 다시 매입할 것을 조건으로 발행된 채권. 한국은행은 시중은행에 RP를 판매해 통화를 흡수하거나, 시중은행이 보유한 RP를 매입함으로써 통화를 내보내는 등 통화량 조절 수단으로 활용) 무제한 매입으로 양적 완화를 개시했다. 예전 같으면 인플레이션과 외환위기 발생 우려 때문에 상상도 못 하던 일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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