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변혁정치

> 변혁정치

기획┃사회주의 대중화를 토론하자


사회주의자의 목표는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권력 기구 수립’이다

- 노동해방투쟁연대‧사회변혁노동자당 공동주최 토론회 후기


오**┃토론회 참가자


* 편집자: 지난 5월 9일, 변혁당은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의 일환으로 노동해방투쟁연대와 공동주최 토론회를 개최한바 있다(“노동자 투쟁과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운동”, <변혁정치> 106호 기사 참조). 이 토론회에 참가했던 한 동지가 자신의 의견과 제안을 담은 토론회 후기를 작성해 <변혁정치>에 게재할 수 있을지 문의했고, <변혁정치>는 이 동지의 기고를 싣기로 했다. 다만 본 기고에는 변혁당의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에 대한 제기와 의견도 포함돼 있어, 그에 대해 변혁당 집행위원장 이승철 동지가 집필한 답변 기사를 함께 게재한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대중화하는 데 동지들의 고민을 더욱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필자 요청에 따라 본 기고는 익명으로 처리했음을 양해 부탁드린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국유화와 계획경제, 민주주의 및 인권의 확대 등 사회주의 정책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이를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권력’의 문제다. 자본가계급의 권력 기구인 국회 등을 해산하고,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각각의 현장을 기반으로 한 직접적인 노동자민중의 대표기관을 수립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잡는 게 핵심 과제일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변혁당이 ‘사회주의 대중화’의 일환으로 선거를 대하는 관점에 이의가 있다. 변혁당이 5월 9일 공동주최 토론회에 제출했던 발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기존 진보정당들은… 기존 보수정당들에 맞서 노선과 정책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무원칙하고 얄팍한 정치공학적 방법으로 의석을 챙겨보려다 거꾸로 당하기를 되풀이하는 것 아닌가? 집권여당인 민주당조차 진보로 구분되는 한국 정치구도에서 개혁 또는 애매한 진보로서는 기존 정당과의 차이를 분명히 할 수 없다.(토론회 자료집 22쪽)” 그런데 이 글의 의도는 ‘변혁당은 보수정당들에 맞서 노선과 정책을 분명히 하여 애매하지 않은 진보로서 기존 정당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기존 정당들은 사회주의자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사회주의자들은 국회에서 분탕질이나 일삼는 기존 정당들과의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혁명’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혁명은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통해 가능하며, 투쟁 속에서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의 권력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자본주의하에서 투쟁의 목표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근절하거나 고용불안 등을 개선하기 위한 법‧제도 개혁은 필요하며, 그러한 목표의 하나로 국유화와 계획경제를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존 정당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여 ‘표’를 얻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법‧제도 개선 투쟁을 하는 이유는 그 투쟁을 통해 노동자 대중의 사회주의적 의식화와 조직화가 가능하며, 바로 그 투쟁 속에서 새로운 권력 기구도 건설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을 구분 짓고, 노동자들의 ‘경제 투쟁’ 성과를 ‘정치 투쟁’으로 연결시켜 선거에서 ‘표’를 얻는 것, 그렇게 국회의원 뱃지를 다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목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반영하듯 변혁당은 강령에서 이렇게 명시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도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노동자권력을 수립하는 과정은 노동자총파업과 전민중적 항쟁의 결합으로 이뤄질 것이다.”


108_37.jpg

△ 노동해방투쟁연대와 사회변혁노동자당의 공동주최 토론회 모습.



선거에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한국에서도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노동자권력을 수립하는 과정은 노동자총파업과 전민중적 항쟁의 결합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변혁당의 강령처럼 노동자권력이 투쟁 속에서 건설되는 것이라면, 왜 변혁당이 굳이 2022년 대선을 목표로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건설하자고 하는지 의문이다.


사회주의자 혹은 사회주의 정당에게 선거라는 공간은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정부와 국회의 친자본-반노동자적 성격을 폭로하고, 이에 맞선 투쟁과 노동자 권력의 필요성을 선전‧선동하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현재 대중의 광범위한 계급투쟁이 전개되고 있지는 못한 시기인 만큼, 선거라는 공간을 통해 사회주의적 선전‧선동을 모색하려는 점은 지지하지만, 그것이 기존 정당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여 ‘국회에 입성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처럼 대중적 계급투쟁이 광범하게 벌어지지 못하는 시기에 사회주의자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현재 산발적으로 곳곳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노력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대안의 부재로 고민하고 있는 선진 활동가들과 노동자 대중에게 사회주의적 전망을 알려내는 활동을 진행해야 한다. 선거 또한 그러한 방법의 하나로 활용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