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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재벌은 위기를 먹고 자란다


코로나 대차대조표,

국민 부채로 재벌 자산 늘렸다


장혜경┃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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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촉발한 경제위기는 극복되지 않고 있다. 6월 8일 세계은행(WB)은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5.2%로 하락할 것이라 전망했다. WB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3배가량 가파른 경기침체’라며 최악의 경우 세계경제가 -8%까지 역성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WB는 1인당 소득이 3.6% 감소할 것이며, 이는 수백만 명을 극도의 빈곤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위기와 민생 파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도 지금까지 총 250조 원 규모의 코로나 위기극복대책을 내놓고 집행하고 있다. 지난 6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반드시 깨겠다. 오히려 위기를 불평등을 줄이는 기회로 삼겠다”고 발언했다. 사회 안전망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사람 우선의 가치와 포용국가”의 기반을 강력히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깨고 있는가?


위 발언을 볼 때, 문재인 정부도 위기의 여파가 결코 공평하지 않으며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게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 ‘극복’ 공식임을 익히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 대책은 과연 그 공식을 깨고 있는가? ‘사람 우선 가치를 실현하는 포용국가 건설’이 정부 정책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정치적 수사와 실제 정책은 언제가 괴리가 있었으므로.


결론부터 말한다면, 대통령의 수사와는 반대로 현재 정부 대책은 불평등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키우고 있다. 한국 사회 불평등을 가져온 핵심 원인은 자본의 지배, 특히 한국판 독점자본인 재벌이 한국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이런 재벌의 힘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노골적인 자본(재벌) 편향성을 띠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기업구호 긴급자금’과 ‘한국판 양적 완화*

대기업 살리기에 시동 건 정부


정부는 3월부터 발표한 코로나19 대책을 통해 자본 살리기, 특히 재벌 살리기를 노골화했다. 지난 3월 24일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서는 “기업도산을 막겠다”며 100조 원 규모의 “기업구호 긴급자금”을 조성해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 이 조치의 특징은 이전까지 주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을 지원했다면, 이때부터 재벌대기업도 본격적으로 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이 대책 발표와 함께 금융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대기업도 지원… 피 말리는 자구 노력 요구하진 않겠다.”


주목할 것은, 이 조치와 연동해 한국은행이 ‘무제한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을 결정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올 4~6월까지 3개월간(이후 연장 가능) RP를 제약 없이 매입함으로써 금융기관에 한도 없이 자금을 공급, 금융기관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려 나선 것이다. 무제한 RP 매입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조치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도 양적 완화에 돌입하게 됐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RP 매입 대상에 은행뿐 아니라 신한금융투자‧현대차증권‧KB투자증권 등 재벌‧대형 증권사 11곳을 추가로 참여시켜, 노골적으로 재벌‧대형 금융사 지원에 나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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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저신용등급 회사채와 CP 매입의 수혜자: 재벌


이후 정부는 4월 22일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추가 대책을 내놨다. △소상공인 금융지원 확대(+10조 원) △저신용등급 포함 회사채‧CP(기업어음) 매입(+20조 원), △코로나 피해 대응 P-CBO*** 공급 추가 확대(+5조 원)를 결정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판 양적 완화’는 회사채까지 매입하는 것으로 진화하는 한편, 기업 지원 액수도 ‘기업구호 긴급자금’ 100조 원에 더해 총 135조 원 규모로 늘었다.


이를 집행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5월 20일, 저신용등급 포함 회사채와 CP(기업어음)를 매입할 10조 원 규모(필요시 20조 원으로 확대)의 특수목적기구(SPV: Special Purpose Vehicle) 설립을 결정했다. SPV 구성으로 이제 시장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A등급 이하 저신용등급 회사채의 차환 발행(새로 돈을 꿔서 먼저 꾼 것을 갚음. 일종의 ‘돌려막기’)이 가능하게 됐다. 이에 따라 신용등급이 BBB~A등급 사이에 있는(신용등급이 BBB 밑으로 떨어지면 ‘투기등급’으로 분류됨) 중공업(현대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건설(SK건설, 한화건설), 쌍용양회 등 재벌 대기업의 자금 사정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PV의 기금 총액 10조 원 가운데 8조 원은 한국은행이 직접 대출하고, 나머지 2조 원은 산업은행이 대출과 출자(각 1조 원씩. 산업은행 출자는 정부 출자를 토대로 함)로 조성한다. 이는 부도가 날 수도 있는 저신용등급 회사채의 신용위험을 정부와 국책은행이 결국 재정으로 감당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국은행으로까지도 위기 전이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뜻한다. 총괄하자면, 결국 국민이 위험을 최종 부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원 대상 기업에 ‘고용유지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경영개선 노력’만 부과할 계획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주식‧채권시장 안정화 방안 중 하나인 P-CBO 발행 지원도 혜택은 재벌로 향한다. 신용보증기금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CJ CGV(영화관), 태평양물산(의류 제조), 이랜드리테일(유통) 등 재벌 대기업이 총 5,040억 원을 우선 지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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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조건 없는 ‘기간산업안정기금’으로 재벌 지원 강화


앞서 거론한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는 7개 기간산업(항공・해운・자동차・조선・기계・전력・통신) 우선 지원을 위한 “기간산업안정기금(이하 ‘기안기금’)” 40조 원 조성 계획도 나왔다. 한국의 기간산업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재벌이라는 점에서, 기안기금 40조 원은 거의 통째로 재벌기업 지원에 쓰인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5월 28일 기안기금 출범식에서 “135조 원의 기업 지원 틀 안에서 기업들을 모두 지원해야 하는데, 중요한 기업에 대해선 40조 원 기안기금이라는 별도의 트랙을 뒀다”고 설명했다.


기안기금은 재벌 지원책답게 일시적인 유동성 지원뿐만 아니라 출자와 지급 보증 등 가능한 모든 지원 방식을 총망라하고 있다. 4월 29일 국회를 통과해 5월 20일 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거쳐 결정된 <기안기금 운용방안>을 보면, 친재벌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지원 대상은 ‘차입금 5천억 원‧고용인원 300인 이상’ 기업만 해당되며, 협력업체에는 고작 1조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이조차 ‘예외적인 경우’에 한함). 이에 근거하면 항공사의 경우 아시아나‧대한항공 등 양대 국적사를 비롯해 저가항공사 가운데서는 제주항공과 에어부산 2곳이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저가항공 5개사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지원금 지급 조건도 ‘전체 고용의 90%를 6개월 간 유지’하는 것이어서, 10% 범위에서는(이 역시 사정에 따라 확대 가능)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나항공 다단계 하청업체인 아시아나KO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투쟁이 보여주듯이, 하청업체 노동자의 고용안정에 대해선 완전 무대책이다.


결국 기안기금은 ‘빚 많은 대기업 중심 지원’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더욱이 출자 형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데 대해 ‘국유화하자는 것이냐, 경영 간섭이다’라는 자본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해, 정부는 출자 시 의결권 없는 주식인 우선주만 취득하기로 했다(<변혁정치> 107호 기사 “자본가들의 무능함이 극에 달한 지금, 국유화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참조).


기안기금은 산업은행에 설치하고, 재원 역시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으로 마련하며, 이 채권에 대해 정부가 원리금 상환 보증을 선다. 결국 재벌은 이번에도 어떤 희생(?)도 없이 국민 부담으로 40조 원을 꿀꺽하게 된 셈이다. 실제 기안기금 지원 대상 1호는 대표적 악덕 재벌 중 하나인 대한항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한항공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서 1조 2천억 원을 지원받았지만, 기안기금에서 1조 원 안팎을 추가로 지원받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 우선 가치를 실현하는 포용국가’?

재벌 우선 가치를 계승하는 재벌공화국!


정부는 코로나19를 빌미로 한 ‘일반적’ 지원 외에도, 두산중공업에 대해 총 4조 원 가까운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등 재벌기업에 대한 별도의 특별 지원도 하고 있다. 결국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깨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수사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포함 모든 노동자에 대한 해고 금지 조치도 없이 이뤄지는 무조건적인 자본 살리기, 재벌이 장악한 기간산업에 출자까지 하면서도 국유화는커녕 의결권 행사조차 포기하는 공적 자금 퍼주기, ‘전국민 고용보험제’ 실시 약속을 뒤집으며 특수고용 노동자를 적용 대상에서 빼버린 정부와 국회,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재벌 청부 입법을 예고한 노동부….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따라서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뭔가 얻어낼 것을 기대한다면,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은 재연될 것이다. 진정 이 공식을 깨려면,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기업 생존 논리에 갇힌 방어적 투쟁을 벗어나야 한다. ‘기업과 경제는 노동자와 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관점하에, 총고용 유지를 넘어 “민중을 위한 재정 투입-불안정노동 철폐-재벌 사내유보금과 범죄수익 환수-공적 자금 투입 기간산업 국유화”까지 요구하는 공세적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 양적 완화(QE: Quantitative Easing) :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효과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중앙은행이 채권‧증권 매입 등을 통해 직접 시중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


** 환매조건부채권(RP: Repurchase agreement):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 확정 금리를 보태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 한국은행은 RP를 매입해 시중에 통화량을 풀거나, RP를 판매해 시중 통화량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통화량 조절.


*** P-CBO(Primary Collateralized Bond Obligation: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 신용등급이 낮아 채권시장에서 회사채를 직접 발행하기 어려운 기업에 대해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을 제공해 신용등급을 높여준 후 해당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증권. 이를 통해 신용도가 낮은 기업도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됨. 원래는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제도였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대기업에까지 지원범위를 확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