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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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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0.06.15 19:04

계급환원론을 넘어서


지수┃사회운동위원회 여성사업팀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을 모든 사회적 억압에 앞선 기본모순으로 본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전제하며, 성별 분리와 성별 적대적 접근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주된 이슈로 자리 잡으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일부 좌파진영의 비판적 입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전체 페미니즘으로 일반화하는 과도한 해석을 내놓으면서 ‘페미니즘’과 ‘여성해방론’을 개념적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콜론타이의 저작을 번역하면서 ‘맑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은 페미니즘과 다르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그러나 좌파진영 일부에서 보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선 긋기’는 계급해방의 중요성만을 주장하며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이를 변화시키려는 일상적 노력에 둔감했던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반성적 평가를 전제하지 않은 ‘계급환원론’적 입장에 서 있다.



계급해방이 곧바로 

가부장적 억압과 성적 불평등의 극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계급환원론(이하 ‘환원론’)은 ‘가부장제’라는 틀을 통해 사회를 분석하는 데 강한 비판을 제기해왔다. 가부장제 개념의 사용이 ‘초역사적 여성억압의 보편성과 독자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의 주관적인 태도’이며, 여성해방운동에서 이 개념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대립 관계를 설정해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것이다. 나아가 가부장제 개념이 ‘계급억압과 여성억압의 관계를 병렬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사회주의운동과 여성해방운동 또한 서로 병렬적인 운동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이미 유기적으로 결합했고,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강화해왔다. 가부장제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게 해준 동력이었다. 여성의 부불노동(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노동)은 저임금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고, 출산과 돌봄을 개인의 책임 - 특히 여성의 책임으로 규정하면서 여성의 성과 노동을 통제할 수 있었다. 가부장제와 결합한 자본주의는 여성의 성과 출산을 통제해 노동력 생산의 의무를 떠넘기고, 모성을 자연화(사회적‧역사적‧문화적인 현상을 마치 자연적‧본성적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것)하면서 돌봄과 가사노동을 전담하게 하고, 재생산노동의 가치를 폄훼하면서 생산노동에서도 여성의 노동력 가치를 저평가했다. 여성의 성을 대상화하고 남성의 성욕만을 자연화하면서 성폭력에 관대한 법‧제도와 관행을 만들고, 가정폭력을 감수하면서까지도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제하면서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체제의 위기를 넘겨왔다.


‘역사적 가부장제’ 개념을 통해 우리는 현존하는 ‘남성 중심적 사회구조’를 설명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여성억압을 더 잘 드러낼 수 있었다. 역사 속에서 가부장제는 지배적인 생산양식에 조응해 여성억압을 강화해왔다. 역사유물론을 통해 여성억압의 기원을 분석한 엥겔스의 업적을 통해 확인했듯이, ‘사유재산의 발생’은 부권(父權)의 경제적 지배력을 바탕으로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탄생시켰다. 이후 가부장제는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를 거치며 단순한 이데올로기나 상부구조를 넘어 사회경제 구조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환원론은 여성억압의 원인이 사유재산제도에 있기 때문에 결국 ‘계급해방이 되면 여성도 해방된다’고 주장한다. 성별 노동분업과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의 이중고, 낙태죄와 성폭력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의 문제는 ‘계급해방 이후’의 문제로 넘겨졌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끝내기 위한 방안은 여성이 계급운동에 복무하는 것이었고, 가부장제 또는 여성 문제를 제기하는 독자적인 운동은 터부시하는 결과로 드러났다. 계급의 선차성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억압은 부차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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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유물론을 통해 여성억압의 기원을 분석했던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그의 저작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초판 표지. [사진: wikipedia]



자본주의 폐절 이후에도 

소비에트는 왜 여성해방을 실현하지 못했나


러시아혁명 초기 단행된 여성해방을 위한 혁명적 조치들로 여성의 정치적‧법률적‧경제적 여건은 크게 변했다. 참정권 보장 등 여성의 정치적 권리는 체제의 전변과 함께 즉각적으로 쟁취됐고, 이혼법과 가족법을 통해 여성의 독립적 재산권이 명시됐다. 여성들의 공적 노동 진출로 여성의 경제력이 상승했고, 공동 육아기관과 공동 취사장 등 가사노동 사회화를 위한 기구들의 설립이 이를 도왔다. 낙태죄 폐지와 유급 출산휴가 도입 등 재생산권리를 위한 조치들도 함께 시행됐다. 러시아혁명 이후 단행된 조치들을 통해 적어도 사회주의 사회가 여성해방을 위한 가장 진보적인 체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의 동등한 법적 지위, 경제적 독립,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조치는 그간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제기했던 과제를 초월하는 것이자, 당시 서유럽의 여성‧가족 관련 법률보다 훨씬 더 앞선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해방을 위한 적극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여성들은 온전히 해방되지 못했다. 성별 노동분업에 입각한 차별적 고용이 유지되며 실제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노동자보다 적었다. 가사노동 사회화는 여성의 공적 노동 진출을 위한 기반이 됐지만, 사회화되지 않고 남은 가사노동의 영역은 여전히 여성의 것으로 남았다. 여전히 뿌리 깊었던 성별 노동분업과 여성의 성적 역할, 모성을 자연화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일소하기 위한 노력은 충분치 못했다. 혁명 이후에도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은 계속돼야 했지만, 제도화된 기구 외에 독자적 여성운동의 흐름은 이어지지 못했다.


1920년 내전이 끝난 뒤, 남성들을 위해 여성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받았다. 특히 스탈린 집권 후 여성‧가족 정책은 보수적으로 선회했고, 다시금 여성들에게 ‘어머니 역할’을 강제하면서 전통적 모성이 찬양받았다. 낙태 금지 포고령을 통해 임신중지를 불법화하고 강제적 친(親)출산정책을 펴는 등 여성 정책이 보수적으로 후퇴한 경험은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한 국가에서조차 생산력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수탈이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결국 자본주의에서 작동하는 가부장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본주의 폐절 이후에도 여성해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맑스주의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를 극복했지만,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비판에 답하지 못했다


역사적 맥락에서 맑스주의자들의 여성론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했다. 여성억압의 해법이 사적 소유를 폐지하는 데 있음을 밝히면서, 체제 내 입법 투쟁에 머물렀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엥겔스는 역사유물론을 통해 여성억압의 근원을 밝히고 ‘여성의 사회적 노동 복귀’를 여성해방의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이후 러시아혁명 과정에서 드러난 ‘여성의 공적 노동 진출’과 ‘가사노동 사회화’라는 여성 정책의 핵심 방향을 제시했다. ‘여성의 생산노동 참여’와 ‘여성 노동자 권리보장’을 주요하게 주장했던 클라라 체트킨은 콜론타이와 함께 “국제 여성의 날” 제정 등을 주도했고, 러시아혁명 이후 제노텔(여성부)에 참여한 콜론타이는 가사노동 사회화와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 여성의 공적 노동 참여, 모성보호를 중심으로 한 적극적 조치들을 내놓는 것으로 그의 고민을 현실화해냈다(<변혁정치> 104호 기사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참조). 이들은 맑스주의에 입각한 여성해방론을 제시했고,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가사노동 사회화, 여성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실천적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가부장제에 대한 착목이 부재했고, 거시적 혁명과 일상생활 혁명을 분리하며, 계급 문제와 여성 문제를 선후의 문제로 여겼던 20세기 사회주의운동은 여성 문제를 계급 문제에 종속시키고 부문운동으로 취급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그간 사회주의운동 안에서 환원론적 경향이 드러낸 입장과 실천의 한계, 운동진영 내 가부장성에 대한 비판에서 태동했다(<변혁정치> 106호 기사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보여준 실천과 모순” 참조). ‘계급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는 여성억압’에 관해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던지는 문제제기에 환원론자들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성과 사랑, 모성과 임신‧출산, 결혼과 가족제도, 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 여성 대표성과 여성 주체화 등 여성의 삶의 영역 전반에서 환원론자들의 대안과 실천은 그간 어떻게 드러났는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억압을 깨고자 대중적 저항을 시작한 여성들에게 어떤 실천적 무기를 제공했는가?


여성억압과 폭력에 분노한 여성들에게 ‘여성억압의 본질은 계급 문제이니 노동해방 세상이 오면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불법 카메라로 여성의 몸을 촬영하고 성착취 영상을 돌려보는 남성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절대 안 된다고 외치는 정규직노조,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수십 년 동안 존재해왔다는 사실, 여성에게 강요되는 일상에서의 셀 수 없는 감정노동, 여성의 역할로 당연하게 요구되는 돌봄노동, 맑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성폭력과 조직적 2차 가해, 성별 권력화된 문화…. 환원론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분노한 여성들과 우리가 어떤 입장과 실천으로 만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출하지 못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문제제기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우리가 만들어야 할 대안적 사회주의’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해준다. ‘계급해방 뒤에 당연히 따라오는 여성해방’이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이데올로기에 맞서 어떤 투쟁을 만들어낼 것인지 답해야 여성해방을 꿈꾸는 페미니즘운동 주체들과도 만나갈 수 있다. 낙태죄 폐지 투쟁을 통해,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투쟁을 통해, 미투운동 등 성폭력을 일소하기 위한 투쟁을 통해 우리는 이미 공동의 실천을 함께하고 있다. 페미니즘과의 인위적 선 긋기가 아니라 실천 속에서 만나고 교차하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여성해방은 사회주의 지향 속에서’, ‘진정한 사회주의는 여성해방의 실현 속에서’ 가능함을 운동 속에서 함께 공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